“어머 너 몇 살이니? 힘들지 않아?”
정상에서 내려오던 이들이 비탈진 길에 멈춰서서 신기한 듯, 아니 듣기에 따라선 애처롭게 묻는다.
“올해 두 돌 됐어요. 해봐. 할머니가 나이 알려줬잖아.”
얼핏 올려다보니 젊은 할머니가 어린 아가와 거북이걸음이다. 오가는 이들의 눈에 족히 40°는 돼 보이는 비탈길을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생경하고 위태롭게 보였을까. “파이팅”이란 응원 뒤에 “오늘 집에 가면 정말 푹 자겠다”란 걱정이 뒤 따른다. 그랬거나 저랬거나 아이는 그야말로 신이 났다. 길가에 핀 들꽃이 신기한지 가다 말고 한참을 바라본다. 할머니의 눈에도 잠시 쉬는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이번엔 안고 길을 나선다.
“조금만 더 오르면 깜짝 놀랄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네. 한번 가볼까? 힘들면 얘기하고.”
그 모습이 잠시 걱정스러워 걷는 속도를 늦췄다. 그런데 잠깐, 산을 오르는 무리 중 어린 아이들이 꽤 눈에 띈다. ‘이거 괜찮은 건가.’ 혼자 고개를 갸웃할 무렵 저 위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파른 길이 끝까지 이어져요. 미끄러지면 구를 수 있어요. 꼭 잡아요오오오~!”
그럼 그렇지. 아무리 낮은 산도 산은 산이거늘. 포항 곤륜산에 올랐다. 해발 177m의 작은 동산이지만 정상에 마련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서면 동해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첫손에 꼽히는 곳이다.
곤륜산은 2019년 활공장을 개장한 후 포항에 가면 꼭 한번 들러야 할 핫플레이스가 됐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려는 이들을 위해 입구에서 활공장까지 차가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냈는데, 일반인들도 출입할 수 있어 풍경을 즐기려는 이들이 하나둘 늘었다. 물론 지금처럼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르게 된 데는 SNS의 영향이 컸다. 20~30분만 오르면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영상이 뭇사람들의 걸음을 이끌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경사가 꽤 가파르다. 발목이 앞으로 기울 만큼 가파른 길이 정상까지 이어진다. 웬만한 성인 걸음이라면 약 25분 후 정상에 도착하지만 산과 친하지 않던 이들은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마실 물 한 병은 기본이다. 그런데 쉴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게 문제다. 이쯤 알려진 곳이면 벤치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전혀 없다. 곳곳에 6월부터 9월까지 ‘곤륜산 등산로 정비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플래카드가 있는데, 여전히 진행 중이다(11월 첫째 주 현재). 어떤 산책로가 완성될진 모르지만 이 정도 가파른 길이라면 앉아서 쉴 공간이 먼저다. 산을 찾는 이들도 옷차림부터 신발까지 제대로 신경 써야 한다. 30여 분간 산을 오르며 온몸을 흐른 땀은 정상에 오르자마자 식는다. 정상의 바닷바람은 그야말로 거칠고 매섭다. 길이 콘크리트로 마감됐다지만 편한 운동화 또한 필수다.
정상에 마련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 오르자 앞뒤가 탁 트였다. 높은 건물이나 앞을 가린 산, 그 어느 것도 시야를 막지 않는다. 중앙은 너른 바다가, 오른쪽은 웅장한 영일만 산업단지, 왼쪽은 아기자기한 칠포항이 한손에 잡힐 듯 나열돼 있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오래도록 풍경을 감상하고 싶지만 겨울의 바닷바람은 그 바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산 입구 주변 마트에 들러 물어보니 “일출 명소이긴 한데, 한겨울엔 중무장하고 오르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더라도 사진 한 장을 포기할 순 없다. 정상을 찾는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럴 심산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아예 그럴듯한 카메라를 이고 맨 이들도 여럿이다. 그래서인지 인조 잔디가 깔린 활공장 곳곳엔 SNS에서 봤음직한 포즈로 바다를 바라보는 이들이 그득하다. 이 또한 색다른 풍광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1호 (2024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