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Walking] 강원도 하조대&해파랑길 39코스 복잡한 세상, 잠시 안녕~!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3.11 15:53:27
수정 : 2022.03.11 15:54:26
“여기까지 왔으면 저기 저 전망대는 올라갔다 가야지, 무슨 소리야. 빨리 와요. 애들 깨기 전에 한 바퀴 돌고 가자고.”
평일 오전 8시. 이제 막 떠오른 해돋이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중년부부가 하조대 전망대에 오르며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게 애들하고 같이 오자니까 아침부터 난리예요. 깨면 배고플 텐데.”
아내의 푸념을 남편이 가로막는다.
“생각해봐. 애들 태어나고 우리 둘이 해돋이 본 게 처음일걸. 안 그래요? 기왕 나왔으니 요기 둘레길 한 바퀴 돌고 가자고. 한 30분이면 될 거야.”
‘우리 둘이 처음’이란 말이 통했는지 나무 데크로 짜인 계단을 올라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선 부부의 품이 그림 같다.
“남편하고 둘이 나와도 보고 좋네. 애들 깨면 전화하겠지 뭐. 힘들어도 조금만 참자, 남편.”
무심히 바다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그래 복잡한 세상 잠시 안녕이다~!”
사실 하조대 전망대에 오른 건 길을 잘못 든 탓이다. 새벽에 출발해 ‘해파랑길 39코스’를 걷기 위해 경포대로 가려했는데 내비게이션만 믿고 직진하다 길이 꼬였다. 어찌하여 눈에 들어온 이정표에 하조대가 보였고, 잠시 쉴 겸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어쩌면 이 모든 게 신의 계시였을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이 눈이 시릴 만큼 쨍하다.
나무 데크로 하조대를 빙 둘러 완성한 산책길도 숨은 명소다.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하광정리 산3번지 일대에 자리한 하조대(河趙臺)는 암석해안이다. 해변에 기암절벽이 솟고 노송이 걸쳐져 있어 첫눈에 감탄사가 터지는 곳이다.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 하조대라 불렸다는데, 그만큼 풍광이 뛰어나 2009년에 명승 제68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래. 길 좀 잘못 들었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나도 복잡한 세상 잠시 안녕이다.’
하조대 둘레길
▶가는 겨울이 아쉬워 잠시 눈에 담은 정취
하조대 둘레길을 뒤로하고 경포대로 향했다. 차로 20여 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사천진항에서 안목항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 39코스는 ‘사천’ ‘순포’ ‘순긋’ ‘사근진’ ‘경포’ ‘강문’ ‘송정’ ‘안목’ 해변이 이어진 바닷길이다. 늦겨울과 초봄 사이, 겨울을 보내기 아쉬워 이 시기에 이곳을 찾으면 찬 바닷바람과 한결 따뜻해진 햇살이 어우러져 걷기 딱 좋은 상황이 연출된다. 목적지를 사천진항이 아니라 경포대로 잡은 건 나름 맞춤 코스를 만든 건데, 해파랑길 39코스는 16.1㎞ 거리로 예상 완주 시간이 5시간 30분이나 된다. 경포해수욕장에서 출발하면 거리나 완주 시간을 적어도 반으로 줄일 수 있는데, 하루 동안 걷기에 적지 않은 양이지만 평지가 이어져 큰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
오랜만에 들어선 경포해수욕장은 평일임에도 찾는 이들이 꽤 많았다. 해변 바로 앞에 자리한 몇몇 특급호텔 덕분인지 해수욕장 초입 도로가 세련되게 정비됐는데, 그럼에도 해변가에 주차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해변과 도로의 분위기가 거짓말 조금 보태 도시와 시골이랄까. 그럼에도 기어코 해변을 찾는 건 역시 복잡한 세상과 안녕하고 싶어서겠지….
하조대 전망대길
경포해변의 데크길을 따라 걷다 아치형의 강문솟대다리를 건너면 강문해변이 펼쳐진다. 두 해변을 이어주는 다리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등장하는데, 정철은 이곳의 주변 경관을 보고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풍광을 골고루 갖춘 곳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라며 감탄했다. 예나 지금이나 다리 위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다리 아래 놓인 방파제에도 풍경을 즐기는 이들이 그득하다. 강문해변은 경포에 비하면 앞뒤 폭이 좁은데, 길 하나를 건너면 식당과 레스토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동해바다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인데, 어느 곳을 가도 나름의 뷰가 일품이다. 해변에서 10여 분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있는 수심 5~30m의 수중 다이빙 포인트는 봄부터 가을까지 스킨스쿠버 동호인들이 꾸준히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강문해변 솟대다리
▶끝없이 이어지는 해송군락
걷는 방향을 바꿀 필요 없이 계속 전진하면 송정해변이 펼쳐진다. 이곳은 꼭 한번 들러야 할 산책 코스 중 하나다. 길이 700여m의 해변으로 나서기 위해선 반드시 소나무 숲을 거쳐야 하는데 어찌나 넓고 정비가 잘 돼 있는지 ‘딴봉마을 산책로’라는 나름의 산책 코스도 갖추고 있다.
고려 충숙왕의 사위 최문한(崔文漢)이 송도에서 강릉으로 올 때 소나무 8그루를 갖고 와 이곳에 심어 팔송정이라 했고, 이후 송정이라 부르게 됐다. 8그루의 소나무는 셀 수 없이 많은 후손을 만들었다. 이 코스는 해변보다 소나무 숲길이 정겹고 걷기 편하다. 어찌나 숲이 깔끔하고 깨끗한지 걷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송정해변의 해송 산책길
숲을 나와 조금만 이동하면 해파랑길 39코스의 마지막 목적지 안목해변에 도착한다. 전국적인 유명세가 대단한 강릉의 커피거리다. 예전보다 해변가에 건물이 많아졌는데, 온갖 커피 브랜드가 서로 맛과 향을 겨루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당연히 찾는 이들도 많아 평일이나 휴일 모두 많은 이들이 오고 간다.
안목은 남대천 하구의 반대편에 자리한 남항진에서 송정으로 가는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란 뜻이다. 해변 바로 옆에 항구가 있어 봄에는 미역, 여름에는 가자미와 광어, 오징어 등이 많이 잡힌다. 강릉항요트마리나에 갖가지 요트가 정박해 있는 모습도 이국적이다.
안목해변 커피거리
강릉항 요트마리나
▷해파랑길 39코스 Tip
해파랑길 39코스는 ‘솔바람다리’에서 ‘허균허난설헌기념관’ ‘경포대’ ‘사천진해변’ 순으로 총 16.1㎞, 약 5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길이다. 남항진항에서 경포대를 거쳐 사천진해변으로 거슬러 오르는 코스는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 227번을 이용해 남항진 정류장에 하차 후 도보로 약 460m 정도 걷다보면 시작된다.
시작점인 솔바람다리는 강릉항과 남항진을 연결하는 다리로 아치 형태로 이뤄져 있다. 밤이면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릉시 초당동에 자리한 허균허난설헌기념관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문학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이다. 이곳에서는 조선시대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최고의 여류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허난설헌 남매의 작품과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도착지인 사천진해변은 경사가 완만하고 모래가 고와 조개잡이를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