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LUXMEN>이 ‘매경LUXMEN 올해의 기업인상’ 10주년을 기념해 역대 수상자들을 모시고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 첫 번째 인물로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 쏠리드 대표를 모셨습니다.
한국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 남성캐주얼의 시초, 한국인 최초의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매경LUXMEN 기업인상을 수상한 첫 여성 기업인까지,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를 향한 수식어는 늘 최초요, 최고다. 35년 전 ‘솔리드 옴므’를 론칭하며 국내 남성복 시장에 캐주얼 열풍을 몰고 온 그는 2002년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WOOYOUNGMI(우영미)’로 활동하며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현재 우영미는 디오르, 프라다, 발렌시아가 등 세계적인 명품과 경쟁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2020년엔 프랑스 3대 백화점 중 하나인 르 봉 마르셰 남성관에서 매출 1위를 기록하며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 현재 쏠리드가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는 ‘솔리드 옴므’와 ‘우영미’. 파리 패션계에서 ‘마담 우’로 통하는 그의 행보는 이 두 브랜드와 함께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2016년에 기업인상을 수상하셨으니 6년이 지났습니다.
▷ 벌써 그렇게 됐나요? 아, 참 빨라요. 놀랍긴 하네요.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어요. 우선 국내 하이패션 브랜드 중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브랜드가 거의 없었는데, 제대로 시작하게 됐어요. 뭐랄까, 이제 막 꽃을 피우는 시기랄까. 아직 활짝 핀 건 아니지만 이제 막 본격화된 느낌이에요. 프랑스 파리에서 명품 브랜드와 경쟁한다는 소식에 패션에 관심 없던 이들도 ‘우영미’란 브랜드를 인지하게 됐어요. 한국을 대표할 만한 패션 브랜드가 없었는데, 저희가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알아봐주세요. 제가 재미있게 느끼는 건 요즘 젊은 세대들이 저희 브랜드에 열광한다는 사실이에요. 기성세대의 반응과는 좀 달라요.
▶ MZ세대에게 신(新)명품으로 다가섰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의식하고 디자인하신 겁니까.
▷ 제가 생각하는 남성상은 늘 영맨이었어요. 요즘 그 영맨들이 굉장히 선진화됐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저희 세대만 해도 유럽 브랜드에 대한 일종의 사대주의라고 할까. 무조건 유럽 것이 좋은 것이었거든요.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좋다는 거죠. 소비자만 그런 게 아니라 심지어 옷을 유통하는 백화점의 바이어분들도 그런 인식이 깊게 깔려 있었어요. 예를 들어 저희 매출이 훨씬 좋은데도 MD 개편 때 좋은 자리는 늘 유럽 브랜드로 채우는, 그건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꼭 “너희는 한국 브랜드 아니냐”라는 말을 하곤 하죠. 왜냐고요? 기성세대거든요. 그럴 때마다 사실 괴리감을 느끼곤 했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한국 브랜드라서, ‘Made in Korea’라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해요. 저희 옷을 입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고 ‘국뽕’이라던데, 아, 이거 써도 되는 말이죠?(웃음)
▶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전개한다는 건 그만큼 이름이 많이 불린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어떠십니까.
▷ 글쎄…. 요즘은 우영미가 제 이름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이건 그냥 브랜드구나. 그렇게 느끼죠. 제 이름은 저를 의미하는, 그러니까 유일무이한 존재잖아요. 사실 그런 의미로 브랜드화하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독립된 존재로 느껴지더군요.
▶ 일각에선 국내 스타들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던데요.
▷ 최근에 월드컵이 열렸잖아요. 손흥민 선수도 그렇고 이번에 김민재 선수도 저희 옷을 입고 인터뷰하는 걸 봤어요.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BTS뿐만 아니라 이정재 씨를 비롯한 배우, 가수 분들이 저희 옷을 좋아해주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알고 봤더니 옷 브랜드가 ‘우영미’였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약간의 팬심이 형성됐다고 할까요.
▶ 함께 개화기를 맞은 셈이네요.
▷ 그래요. 서로 시너지를 내는 든든함이 있어요. 패션은 문화를 대변하거든요. 함께 개화됐다는 말씀, 참 좋네요. 한국의 문화 르네상스라고 할까. 요즘은 외국인들이 먼저 한국 문화에 대해 많이 물어요. 예전엔 전혀 그러지 않았거든요. 일단 한국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은 <기생충>이 어떠니, <오징어 게임>이 어땠느니 참 많이 얘기하고 물어요. 자긴 BTS의 어떤 곡을 좋아하고 어제 손흥민 선수가 너무 잘했고, 자연스럽게 이런 대화가 오갑니다. 그냥 느끼기에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 자연스레 문화 전도사 역할도 하고 계시는군요.
▷ 한국에 오고 싶다, 한국에 가면 근사할 것 같다고 해요. 한국이 다 좋아 보이는 거죠. 하이패션 브랜드도 있다는 사실에 더 놀라고 좋아합니다. 옷은 소비재잖아요. 하이패션 브랜드는 아주 고가의 좋은 소비재인데, 단 하나라도 이런 브랜드가 있다는 것만으로 그 문화가 굉장히 업그레이드된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한때 일본에서 연필만 사도 좋을 것 같았던, 그 시기에 여러 일본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그 역할을 했었지요.
▶ 현재의 문화 르네상스가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 제 생각에 한국은 굉장히 트렌디해요. 빨리 받아들이고 빨리 버립니다. 그런 면에서 원래 우리가 갖고 있던 문화에 트렌디한 무엇이 합쳐지면 엄청난 폭발이 있을 거예요. 지금보다 파괴력 있는 문화강국이 될 겁니다.
▶ 요즘 눈여겨보시는 트렌드라면.
▷ 전 어느 한 가지만 보진 않아요. 오히려 요즘 트렌드는 다양성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거 아닐까요.
▶ 최근 서울 구의동에 새로운 사옥 ‘하우스 우영미’를 오픈했습니다. 행사 당일에 “그동안 전장에 맨몸으로 나섰는데, 이제 갑옷을 입고 전열을 갖췄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패션 하우스’라는 개념이 좀 낯설 텐데,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말은 아니에요. 사실 그동안 국내에 패션 디자인 하우스라고 할 만한 브랜드가 없었어요. 일단 하이패션 디자이너가 별로 없었는데, 기업화된 비즈니스 패션이라기보다 디자이너의 하우스, 혹은 스튜디오란 개념이죠. 그냥… 그동안 전쟁에 나섰는데 칼을 제대로 갈지 못하고 나갔달까. 이제 좀 갖추고 나니까 좀 더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고. 그래서 아마 그런 표현을 했던 것 같아요.
▶ 패션 피플들이 한국에 오면 들러야 할 핫 스폿이 생긴 건가요.
▷ 해외에선 감사하게도 한국 패션을 얘기할 때 ‘우영미’라는 브랜드를 먼저 말하곤 해요. 실제로 외국서 온 패션 피플들이 신사동에 있는 저희 플래그십 스토어 ‘멘메이드 우영미’에 들르곤 합니다. 꼭 가봐야 하는 투어, 이런 걸 꼽을 때 늘 이름이 오른다고 해요. 앞으로 그런 식으로 자리 잡지 않을까요.
▶ 한국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의 파리의상조합 정회원 등 국내 최초란 타이틀이 많습니다. 그건 어찌 보면 패션 분야의 발전이 더디다는 방증이기도 한데요.
▷ 그래요. 한국의 소비 수준이 높고 매스미디어나 인터넷 발달이 트렌디한 데 반해 패션이란 콘텐츠는 그러질 못했어요. 웹툰이나 음악, 영화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패션은 그러한 공식을 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안타깝죠. 명품 그룹들의 가치가 증명하듯 패션은 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한 고부가가치 산업이거든요. 저를 포함한 모든 디자이너와 패션 기업에 책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활동할 젊은 세대들에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겠지요.
▶ 월드컵 기간 중에 손흥민 부자에 대한 얘기가 화두였는데요. 패션계엔 우영미 모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따님(정유경 디자이너)과 함께 작업하신다고.
▷ 저는 디자이너로 일하고 딸은 마케팅 브랜드 전략을 짜고 있어요. 하이패션 분야는 브랜드 전략이 정말 중요해요. 장기적인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손발이 잘 맞아요. 5년째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우스 우영미’를 만들 때도 늘 마주보면서 이런 거 하고 싶다, 이렇게 해보자, 얘기하고 그랬던 거죠.
▶ 기업인상 수상 당시 “2025년까지 세계 주요 도시에 100개의 매장을 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 2025년이요? 아, 아마도 굳이 물으셔서 그렇게 답한 것 같은데.(웃음) 그때 즈음이면 될 수도 있겠네요. 현재 ‘우영미’와 ‘솔리드 옴므’가 단독 매장으로 진출한 곳도 있고 스폿으로 가있는 경우도 있는데, 60여 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좀 더 분발하면 되지 않을까요.
▶ 6년 전과 현재의 목표가 다를 법도 한데요.
▷ 아니요. 전 사실 양적으로 얼마만큼 키우겠다는 목표는 없어요. 100개를 꼭 채워야겠다는 욕심도 없고…. 2020년과 2021년에 남성복 외에 여성복과 주얼리 라인을 더한 게 일종의 외연 확장이랄 수 있는데, 하이패션은 외형(매출)보다 그 브랜드를 얼마나 잘 만들어내는지가 더 중요해요. 그러니 뭐 천상 디자이너인 거죠.(웃음)
▶ 그럼에도 매출에 대한 관심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 쏠리드는 2021년에 72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31.9%나 성장한 실적인데, 2022년에는 좀 더 성장했어요. 약 1000억원정도 될 것 같습니다. 브랜드는 처음에 제대로 안착하면 그 생명력이 무궁무진해집니다. 유럽에는 100년 넘은 브랜드들도 많잖아요. 그만큼 콘텐츠가 강화되면 장기적으로 굉장한 빛을 발할 수 있는 게 바로 브랜드예요. 이제 시작이죠.
▶ 진정한 럭셔리라면.
▷ 지금까지 말씀드린 게 럭셔리 아닐까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는….
▶ 앞으로 6년 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 아, 6년이나 뒤의 일을.(웃음) 아마도 계속 두 브랜드를 잘 키워나가는 일에 집중하고 있겠지요. 디자이너로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She is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졸업했다. 제4회 매경LUXMEN 기업인상 여성기업인상을 수상했다.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패션디자이너다. 최근 서울 구의동에 새로운 사옥 ‘하우스 우영미’를 오픈했다. 현재 쏠리드 대표이자 패션디자이너로 ‘WOOYOUNGMI’와 ‘솔리드 옴므’를 이끌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8호 (2023년 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