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운영한 회사를 매각하고 나서야 몸이 많이 상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부랴부랴 영양제를 챙겨 먹으려고 공부를 시작하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마그네슘 하나만 해도 여러 종류에다 다른 영양제랑 함께 복용하면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같은 질문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신인식 필라이즈 대표는 2013년 국내 최초 호텔예약 플랫폼 데일리호텔을 출시해 2019년 엑시트(Exit)에 성공한 모바일 O2O 서비스의 1세대 창업가다. 회사를 매각한 이후 인수 후 통합(PMI) 작업을 마친 2020년까지 8년간 대표를 지내고 휴식기를 보내면서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져 새로운 플랫폼을 구상했다고 한다.
“같이 창업한 윤정원 부대표님과 서로 영양제를 권해주다가 문득 ‘성별, 체중, 체질이 다른데 같은 영양제를 먹는 것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실제 나이, 성별, 체중, 기저질환, 복용 중인 의약품, 알레르기, 흡연이나 운동 등 생활 습관의 차이로 인해 각 개인에게 필요한 영양성분의 종류도, 함량 기준도 다르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의식을 못하고 섭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필라이즈는 개인의 특성에 맞춘 초개인화 헬스테크로 건강수명을 늘려,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이다. 사명은 약이라는 뜻의 ‘Pill’ 과 분석하다라는 뜻의 ‘Analyze’의 합성어로 ‘약을 개인에 맞게 분석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건강기능식품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에, 개인에게 맞는 건강기능식품을 손쉽게 분석하고, 검색하고, 복용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셀프 메디케이션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주요 목표다.
신인식 필라이즈 대표
제품 원산지·색소 첨가 여부·부작용 등 한눈에
필라이즈는 신인식 대표와 뜻을 같이한 윤정원 부대표(전 데일리호텔 CMO)에 이어 번개장터 창업자 채효철 CTO가 뭉쳐 창업팀을 구성했다. 영양제와 부작용 가능성이 큰 주의 영양제를 구분하여 알려준다. 2만 개 이상의 국내외 영양제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원료의 원산지, 향료 및 색소의 첨가 여부, 영양제 함량이 적절한지도 파악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건강기능식품이 범람하면서, 영양제의 과도한 오남용과 부작용 문제도 드러나고 있다. 개인의 서로 다른 건강 상태에 맞는 건강기능식품을 분석하고, 검색하고, 복용을 관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소비자의 수요도 날로 높아지는 추세다.
필라이즈는 개인의 건강데이터 분석과 맞춤형 정보 제공 플랫폼을 결합한 ‘셀프 메디케이션 플랫폼’을 선보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흡연자인 남성이 눈 건강에 좋은 영양제를 검색하면, 루테인이 포함된 영양제는 섭취 주의 영양제로 표시된다. 루테인은 식약처에서도 흡연자의 폐암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섭취를 자중할 것을 권고한 성분이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내용을 개개인이 모두 숙지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 맞춤형 최적의 영양제 조합과 복용법까지
“필라이즈는 마케팅에 현혹되지 않고, 정말로 본인에게 알맞은 영양제를 찾아서 지속해서 복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영양제별 성분분석을 통해 점수를 환산합니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유로모니터 기준으로 2021년 6조3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며, 한국건기식협회에 따르면 2030년에 25조원까지 팽창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기능식품의 종류도 지속적으로 늘어 2019년 기준 2만6342개가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시장에서 신인식 대표의 목표는 사용자들이 마케팅보다 성분에 의해 건강기능식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라이즈는 자체 구축한 AI 엔진을 통해 각 개인이 일일이 성분을 체크할 필요 없이 자신의 건강 상태만 입력하면 주의 영양제와 추천 영양제를 구분해주는 기능을 선보였다. 흡연자라면 쉽게 부족해질 수 있는 비타민C와 비타민D가 충분한 함량으로 들어간 제품은 추천 영양제라고 표시를 해주는 식이다. 향후 개인의 건강검진 정보와 유전자검사 정보 등 데이터를 보안해 보다 정교한 시스템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필라이즈는 창업팀 구성과 동시에 실리콘밸리 VC인 스트롱벤처스의 리드로, 패스트벤처스, 넥스트랜스, 프라이머, 마일스톤벤처파트너스 등 유수의 투자기관들로부터 시드투자 30억원을 유치한 바 있다. 개인 맞춤 건강기능식품의 분석, 검색, 복용 관리를 돕는 ‘국가대표 셀프 메디케이션 서비스’가 되는 것이 목표라는 신인식 대표를 만나봤다.
▶3월 서비스를 내셨는데 초기 반응은 어떤가요?
▷내부적으로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은 상당히 좋습니다. 가입자와 활성사용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어서 6개월 안에 10만 명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회사 매각 이후 여러 가지 아이템을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
▷1년 좀 넘게 쉬는 동안 여러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벤처캐피털(VC) 투자를 전문적으로 할지, 사업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공부를 더 할 수도 있었는데, 역시 스스로 창업하고 사업하는 게 가장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힘들지만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게 또 의미가 있으니까.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엑시트 이후 몸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자연스레 영양제를 알아보다가 ‘체격도 다르고 성별도 다른데 나한테도 좋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시장도 커지고 있고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환경에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직전에 엑시트를 해서 업계에서는 예지력을 칭찬하는 이야기도 많은데?
▷예상 절대 못하죠.(웃음) 당시에는 업계가 완전 호황기였고 여행 시장 자체는 계속 커지고 있었죠. 다만 경쟁이 엄청 치열해지는 시기였어요. 저희는 호텔 쪽에 특화되어 있었고 다른 서비스들도 각자 포지션이 있었는데 점차 여행과 액티비티, 항공 등 종합 플랫폼으로 트렌드가 변했어요. 야놀자가 버티컬적으로 인수합병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하고 수평적으로도 확장을 계속하고 있던 시기라서 좋은 파트너로 같이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결정하게 됐죠.
▶창업 이후 필라이즈 서비스 출시까지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지난해 7월 처음 창업했을 때는 윤정원 부대표랑 저랑 둘뿐이었어요. 팀을 만드는 데 5개월 정도 소요됐고 실제 서비스를 제대로 만든 시간은 3개월 정도 됐습니다. 저희 엔진이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서비스 개발과 5개 정도 특허도 출원했어요. 경험도 많이 도움 됐지만 정말 필요한 인력을 구성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인원은 10명인데 한 분 한 분 업계에서 유력한 분들을 차례로 모셨어요. 기술개발, 영양학 분야, 디자인 관련 완전한 팀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필라이즈의 AI를 위한 기초데이터는 어떤 것이 있나요?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들이 많은데 정제된 방식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제공됩니다. 저희는 그걸 어떻게 분류할지 체계를 새로 잡아가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제품의 경우 성분과 원산지 데이터를 보면 이게 중국산일 수도 있고 미국산일 수도 있고, 부형제 색소 등 원료에 대한 정보, 그다음에 제품에 대한 정보들 이렇게 기본적인 데이터들을 확보합니다. 다음으로 이러한 성분이 어떤 기저질환이나 알레르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건강 특성, 복용 약물에 따라서 다 분류하기도 하죠.
▶기술 관련 특허는 어떤 내용인가요?
▷개인의 상태에 따라 기저질환 알레르기 건강 특성, 복용 약물, 건강검진 10년 치 데이터를 들고 와서 거기에 맞게 영양 성분을 분석하거든요. 특정 영양성분은 사람마다 섭취하면 좋은 게 있고 주의해야 될 게 있습니다. 개인이 그걸 다 파악하지 못하니까 이러한 내용을 가장 효율적으로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이 필라이즈가 가진 특허의 중심입니다.
▶기본적인 연령대나 성별 체중에 따라 추천하는 오픈마켓 알고리즘과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시스템에 더해 개인의 건강 상태와 관련한 데이터 레이어(층)를 쌓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건강검진 데이터와 유전자 데이터라든지 병원 진료 기록들을 통해서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를 추가해 나갈 예정입니다. 처방받은 약들을 약학 코드로 다 분류하고 있거든요. 그 데이터 레이어가 계속 축적되어 맞춤형 건강관리가 가능하도록 알고리즘을 구축해 나가고 있습니다.
▶B2B 서비스도 기획하고 있는지?
▷약국에 가면 받는 질문이 ‘어떤 약을 복용하세요?’ ‘어떤 기저 질환이 있으세요?’ ‘알레르기는 어떠세요?’ 등입니다. 이런 시간이 1분이 안 됩니다. 사실 이를 물어보고 약을 추천해야 하는데 한 개인이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파악하고 연산하기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결국은 기술로 해결해야 되는데, 저희가 만드는 엔진 자체가 그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감한 이야기지만 맞춤형 추천 플랫폼이 특정 제품에 대한 광고로 신뢰를 잃기도 하는데요?
▷저희는 기본적으로 수익화를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핵심 코어를 초개인화로 두고 있어요. 여기 지금 저희 세 명이 있는데, A라는 영양제를 세 명한테 다 줄 수는 없거든요. 사람들과 데이터가 많아질수록 답을 찾는 솔루션도 정교해질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면 그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들은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수익모델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것 같은데요?
▷필라이즈 서비스도 현재 추천해 주는 상품들이 있는데, 구매채널이 또 문제가 됩니다. 바로 플랫폼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가 편의성에 중요한 요소거든요. 추천은 받았는데 구매채널을 찾기 어려우면 불편할 수 있잖아요. 그러한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수익모델이 나올 수도 있고, 선택하고 구매하는 과정을 단순화해 지속적인 섭취를 돕는 데도 역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라이즈가 다른 플랫폼과 차별화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저희가 풀고자 하는 문제는 영양제를 선택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에는 요즘 이 성분이 좋다더라, 누가 이걸 많이 먹는다는 등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그런데 당장 루테인 같은 경우만 해도 흡연자는 섭취하면 안 좋다는 연구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그런 걸 모르고 누가 선물해 주니까, 루테인 선물을 많이 하니까 그냥 먹게 되죠. 저희는 영양제가 몸에 맞는지, 진짜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하고 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첫 번째 가치입니다. 다른 서비스가 구독이나 PB에 집중하는 것과 방향이나 결이 다른 거죠.
▶이제 첫 번째 서비스를 내놓으셨는데 추가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서비스는?
▷필라이즈의 미션 방향은 초기에는 영양제,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의 건강수명을 늘려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건강한 상태의 수명을 늘리는 거죠. 성인병 등을 건강할 때부터 잘 관리하도록 돕는 플랫폼의 방향으로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작이 영양제 플랫폼인데, 여기서 셀프 메디케이션 플랫폼으로 확장하려고 해요. 아직 저희도 고심 중이지만, 식단이나 운동 같은 분야로도 확장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He is
카이스트 전산학부 석사과정을 중퇴하고 삼성SDS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 호텔예약 전문 플랫폼 데일리호텔을 창업하고 2019년 야놀자에 매각했다. 2021년 초개인화 헬스테크 스타트업 필라이즈를 창업해 올해 3월 서비스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