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역사적 논란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가보니 “끌려간 한국인에 대한 가혹행위 없었다” 반복
정욱 기자
입력 : 2020.07.28 16:48:34
수정 : 2020.07.28 16:48:55
“당시 대사가 뭘 몰라서 그런 말을 했다.”
7월 초 방문한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이하 센터)에서 만난 가이드 나가무라 요이치 씨는 군함도로 유명한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탄광에서 가혹행위나 차별은 없었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센터는 군함도를 비롯한 일본 근대 산업화 관련 23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유네스코에 설립을 약속한 곳이다.
‘대사의 말’이란 2015년 세계문화유산 지정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가 센터 설립을 약속하며 한 발언이다. 사토 당시 대사는 “1940년대 여러 장소에서 수많은 한국인 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일했다”며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한 정보센터 등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지금도 클릭 한 번이면 외무성 홈페이지서 확인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산업유산정보센터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였다.
재단법인 산업유산국민회의 관계자들이 지난 3월 31일 일본 도쿄도 신주쿠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에 마련된 산업유산정보센터 앞에서 개관을 기념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센터는 3월 개관식을 가졌지만 코로나19로 인해 6월 15일이 돼서야 일반 공개가 시작됐다. 일반 공개 후에도 하루 3회, 회당 최대 5명으로 인원을 한정해 예약제로 진행된다. 센터 측에선 기자가 방문한 날(7월 1일) 전후로 한국 언론 관계자를 초청했다고 밝혔다. 관심사가 군함도 등에 몰릴 것을 고려해 하시마초중등 동창회장 이시가와 동 씨 등 해설을 담당할 추가 인사들도 배치했다. 관람 시간 내내 나가무라 씨를 비롯한 안내 인력과 경비 인력이 동행했다.
국내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대로 센터에서 사토 전 대사가 약속했던 희생자를 위한 추모를 찾기는 힘들었다. 희생자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 것은 입구에 세워진 세계산업유산 등록 연표의 맨 아래 사토 전 대사의 발언이 일본어와 영어로 적힌 정도였다. 일부러 확인하기 전에는 쉽게 지나칠 수밖에 없는 위치다. 사토 전 대사의 발언과 달리 현장 가이드로 나선 이들의 말을 듣다보면 이곳이 희생자를 위한 공간인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시가와 씨는 센터 내 관련자료 서가에 꽂혀 있는 재일조선인들의 군함도 관련 증언록에 대해 “신뢰하기 힘든 말로 가득 찬 책”이라고 비난했다. 서가에 꽂힌 책 중에서 강제노동 등에 대한 증언이 담긴 책은 이 한 권뿐이었다. 이시가와 씨는 군함도 내 가혹한 노동에 대한 증언을 해온 구연철 씨에 대해서도 “군함도에 살았다는 사람들 중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의혹을 제기하기에 바빴다. 나가무라 씨는 “구 씨와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다양한 경로로 했다”며 “한번 만나서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보고 싶으니 꼭 보도해 달라”고 말했다.
도쿄 신주쿠구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설치된 ‘산업유산정보센터’
일본 정부도 설립 취지와 딴판인 점을 의식해서인지 센터 관련 사항은 위탁 운영 중인 ‘산업유산 국민회의’가 주도하고 있다며 발을 빼고 있다. 관련 예산이 모두 일본 정부에서 나오고 센터가 들어선 공간 역시 일본 총무성 별관이지만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옹색한 설명의 배경을 파고들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가토 고코 센터장이다. 군함도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확신하게 됐다. “강제 노역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1959년생으로 게이오대학 국문과 학생시절부터 산업유산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영국, 독일, 호주 등 해외 사례까지 모아 1999년 <산업유산: 지역과 시민의 역사로의 여행>이란 책을 내놨다. 이 책을 계기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삼았다.
초기엔 일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12년 말 아베 신조 총리 재집권 후다. 가토 센터장의 아버지인 가토 무쓰키 전 농림수산상이 아베 총리의 부친인 아베 신타로 전 외상과 친분이 깊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아베 총리와 왕래가 잦았고 지금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토 센터장은 가토 가쓰노부 후생상의 처제다. 형부와 성이 같은 것은 가토 후생상이 결혼과 함께 처가의 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가토 후생상이 아베 내각에서 중용된 것은 장인의 후광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역시 아베 총리가 가토 센터장의 부탁을 들어준 것이란 게 일본 언론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가토 센터장이 아베 총리에게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요청을 한 것은 고이즈미 정권에서 관방장관으로 일하던 지난 200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이어지던 가토 센터장의 요청이 받아들여져 정부 차원에서 검토가 이뤄졌지만 당시 실무 부처에서는 반대했다. 마에가와 기헤이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은 실무부처의 반대와 관련해 주간아사히와 인터뷰에서 “산업유산의 경우 필연적으로 한국, 중국 등을 비롯해 주변국의 반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예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무부처에서는 나가사키 교회군 및 천주교 관련 유산 등 종교시설을 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안을 마련했지만 총리관저에서는 가토 센터장의 의견대로 산업유산을 밀어붙였다. 가토 센터장은 이를 추진할 ‘산업유산 국민회의’를 거창하게 꾸렸다. (나가사키와 아마쿠사지역의 천주교 시설 등은 201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가토 고코 산업유산정보센터장
산업유산 등록을 위해 총리실에선 이즈미 히로토 보조관이 참여했다. 그는 지금도 총리보좌관으로 아베 총리 지근거리를 지키는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가토 센터장은 세계문화유산 등록(2015년 7월 5일) 수일 전에 내각관방참여(산업유산 등록 및 관광 진흥 담당)에 이름을 올렸다. 사토 대사가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발언을 할 때 양옆에는 이즈미 보좌관과 가토 센터장이 앉아 있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아베 총리와 주변 인물들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우경화라고만 말하기엔 찜찜함이 남는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과정과 이후 행보에서 보여주듯 이들의 행보는 더 대담해지고 있다. 이들만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센터 가이드까지 나서서 “한국은 증거를 제시하라”며 펼치는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과거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기록, 교육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