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美 코로나 ‘2차 대유행’ 원인은 마스크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정치적 갈라치기로 마스크 적기 대응 더욱 늦어져
박용범 기자
입력 : 2020.07.28 16:32:46
수정 : 2020.07.28 16:33:01
지난 6월 하순 뉴욕 현지에 부임하면서 목격한 일이다.
인천국제공항과 뉴욕 JFK공항이 승객이 90% 이상 격감해서 전례 없이 한산한 것은 공통적이었다. 두 공항 모두 마치 공항 터미널을 전세 내고 쓰는 것처럼 적막감이 흘렀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 시에는 최소 3번 발열 체크를 요구받았다. 문진표를 작성하지 않으면 탑승권을 받고 짐을 부치는 체크인 수속을 할 수 없었다. 인천공항에는 마스크는 물론 장갑, 페이스 실드까지 한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JFK공항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입국 시 발열 체크는 전혀 하지 않았다. 공항 직원들은 마지못해 마스크를 쓴 표정이었다.
▶현지에서 보니 마스크 중요성 인식 너무 낮아
마스크는 코가 드러나지 않게 착용해야 하지만 입 주변으로 내려서 코가 노출되게 착용한 사람도 꽤 보였다. 이렇게 공항 직원들이 느슨하게 대처하다보니 입국 절차를 진행하는 승객 중에도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이 꽤 보였다. 뉴욕 맨해튼과 가까운 뉴저지 일대에서는 더욱 믿기 어려운 모습들을 봤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산책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 마스크를 쓴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슈퍼 등 실내 시설에 들어갈 때는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지만 마스크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쓴다는 인식이 강해보였다. 이 지역이 서울과 달리 인구밀도가 낮은 영향이 있겠지만 마스크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가 다르다고 느껴졌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본인이 환자임을 표시해서, 다른 사람의 접근을 가능한 막겠다는 의미로 쓰이는 ‘사회적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건강 상태에 별 문제가 없다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것이 미국 문화였다. 한국에서는 미세먼지 사태 등을 겪으며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언어’가 있었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미국이 이렇게 마스크 착용을 소홀히 한 대가를 뒤늦게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과 미국에서 첫 확진자는 각각 지난 1월 하순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확인됐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을 어느 정도 철저하게 했는지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리게 됐다. 인구 대비 확진자 수를 보면, 한국은 인구 1만 명당 3명을 밑돌지만 미국은 인구 1만 명당 100명을 넘어섰다. 100명이 모인 곳에서 환자 1명은 있다는 얘기다. 뉴욕과 같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이 비율이 훨씬 높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마스크 착용이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첫 번째 예방 대책이라고 강조했지만 미국인들의 사회적 언어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매우 늦었지만 미국에서 마스크에 대한 ‘사회적 언어’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지난 7월 16일 맨해튼 타임스퀘어, 콜럼버스서클, 유엔본부 등 3개 지역에서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 여부를 살펴보았다. 3개 지역을 선택한 것은 각각 관광객·고객 대면 근로자, 사무직 근로자, 관공서 근로자 비율이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10명 중에 8명은 도보로 이동 중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거의 없는 맨해튼이지만, 타임스퀘어에서는 다른 지역과 달리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였다. 특히 센트럴파크, 워싱턴스퀘어, 유니온스퀘어 등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는 공원 지역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맨해튼 중심부는 서울 도심권 이상으로 밀집도가 높은 곳인데 아직도 마스크 착용률이 이 정도라니 길거리를 걷는 것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지하철과 같이 폐쇄된 지하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맨해튼에서 일하고 있는 한 주재원은 “3~4월에는 맨해튼 길거리에서 마스크 쓴 사람 비율이 절반도 안됐다”며 “지금은 매우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3~4월에는 한국에서처럼 마스크 공급 부족으로 마스크를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었다. 하지만 7월에 현장에서 확인해본 결과 CVS, 월그린스(Walgreens) 등 주요 약국·편의점 체인에서 일회용 덴탈 마스크를 쉽게 살 수 있었다. 1장당 가격은 0.5~1달러 선이다. 이렇게 수급 문제가 해결됐는데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착용에 소극적이다.
이렇다보니 ‘노드스트롬 랙(Nordstrom Rack)’과 같은 일부 백화점에서는 무료로 일회용 덴탈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었다. 워싱턴스퀘어 공원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대사(Social Distancing Ambassador)’ 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사람이 일회용 덴탈 마스크를 갖고 다니며 무료로 나눠주는 모습이 목격됐다. 무료로까지 주면서 착용을 권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이끌고 있는 로버트 레드필드 국장은 지난 7월 14일 미국의학협회저널과 인터뷰에서 “모든 미국인이 마스크를 착용하면 코로나19 팬데믹은 4, 6, 8주 안에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CDC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도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고 강조해왔지만 미국인,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게 이런 권고는 ‘마이동풍’이었다. 마스크 착용 문화가 조기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도 적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마스크 착용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11일 메릴랜드주 월터 리드 군의료센터를 위문 방문한 자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공식석상에서 공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여러 정치적 이유로 경제활동 재개가 우선 필요하다며 방역을 소홀히 했다가 재선 가능성이 흔들리자 뒤늦게 이렇게 나선 것이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은 “미국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은 문화가 아니라 리더십 때문이었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비판했다.
유통업체 등 민간 분야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도 늦은 감이 있다. 월마트는 7월 15일에 발표한 성명을 통해 5일 뒤부터 미국 내 모든 매장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에 약 5000여 개 매장을 갖고 있는 월마트는 그간 각 주(州)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규정에 따라 마스크 착용을 실시했지만 의무화된 매장이 3분의 2에 그쳤었다. 미국 전역에 약 2800여 개 매장을 갖고 있는 미국 최대 식료품 전문 체인 ‘크로거(Kroger)’는 같은 날 전 매장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매우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조치다. 특히 이번 코로나19는 취약계층에 더 큰 피해를 야기했다. NYT가 CDC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흑인 감염률이 백인의 3배에 달했다. 미증유의 상황일수록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해야 취약계층을 더 지켜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새삼 깨우치게 하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