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트럼프, 멀어지는 재선 고지 | 인종시위·코로나19… 트럼프 경합주 6곳 뒤져, 국정지지율 40% 아래로… 민주 바이든 15%P 앞서
신헌철 기자
입력 : 2020.07.28 16:16:47
수정 : 2020.07.28 16:16:5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임 대통령에 그쳤던 지미 카터와 ‘아버지 부시’의 길로 향해가는 듯하다. 지난달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최대 15%포인트 차로 뒤졌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국 지지율보다 더 큰 문제는 대선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핵심 경합주에서도 밀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 대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미국 선거전문 매체인 ‘270투윈’을 참고하면 실시간으로 변하는 판세를 살펴볼 수 있다.
7월 중순을 기준으로 이 매체는 바이든이 선거인단 278명, 트럼프는 204명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했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한 현재 시점의 예상치이기 때문에 실제로 확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각주에 배정된 전체 선거인단 538명 가운데 과반인 270명을 따내야 한다.
조지프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CNBC 방송이 지난달 발표한 6개 핵심 경합주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모두 앞섰고 격차는 평균 6%포인트였다. 노스캐롤라이나만 오차범위 안에 놓였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위스콘신은 물론 플로리다에서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실제 선거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이 6개 경합주 가운데 절반만 가져가도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인 다수는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전국 지지율에서 트럼프가 뒤져도 당선 가능성은 바이든보다 높다고 여겼다. 2016년에도 여론조사에서 시종 뒤처지다가 경합주를 싹쓸이해 최종 승리를 가져갔던 학습효과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평가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국민의 불신이 극도로 치솟았고 인종시위 대처 과정의 편협성에 대한 실망감도 확산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여론조사는 조작된 것”이라며 지지층에게 불신을 조장하고 있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4년 전 7월 중순을 기준으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당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여론조사 평균으로 1%포인트가량 앞섰지만 현재 바이든 후보는 평균 9%포인트나 앞서고 있다. 당시 거의 모든 여론조사 기관과 전문가들이 힐러리 당선을 예상한 것은 지속적으로 리드를 유지했기 때문이지만 격차 자체가 컸던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역대 대선을 돌아보면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10% 이상을 앞섰던 사례는 빌 클린턴이 이겼던 1992년과 1996년 대선,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한 1980년과 1984년 대선 등 모두 4번 있었다. 물론 실제 선거에서도 이들이 넉넉한 승리를 거뒀다. 1980년대 이후 ‘깜짝 승리’라고 부를 만한 선거는 2016년 대선이 사실상 유일했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새 대선캠프 선거대책 본부장으로 임명된 빌 스테피언
▶바이든과 양자대결 격차 15%P로 더 벌어져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층에게 94% 이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콘크리트 지지층’도 흔들리고 있다. 미국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연구소가 발표한 7월 월례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지지한다는 답변은 36%,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60%를 각각 기록했다. 같은 기관의 지난 4월 조사 때는 지지율이 45%에 달했다.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는 지표는 양자대결 선호도와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있다. 이 중에 국정 지지율은 공화당 지지층의 이탈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의 양자대결에서도 최대 15%포인트 차이로 뒤졌다. 퀴니피액대 월례조사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52%, 트럼프 대통령은 37%의 지지를 얻었다. 지난달 같은 조사에서 격차가 8%였으나 상황이 더욱 악화된 셈이다.
민주당은 여론조사 결과에 환호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남아 있다. 바이든은 올해 초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하며 낭떠러지 끝까지 몰렸다가 흑인 몰표 덕분에 남부 지역에서 기사회생했다. 이후 강력한 경쟁자이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코로나19 사태 속에 일찍 사퇴하면서 손쉽게 대선후보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대부분의 대통령에게 8년간 권력을 줬던 미국의 정치문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고한 보수 지지층 등을 감안하면 본선 승리를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인종차별 시위라는 대형 이슈가 동시에 터지면서 ‘어부지리’로 지지율이 치솟았다.
과거 민주당은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와 같은 신진 정치인을 내세워 집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뚜렷한 색깔이 없는 노회한 정치인 바이든을 ‘차선책’으로 택했다. 바이든의 선거 전략은 공격보다는 수비에 치중하고 있다는 평가다. 바이든은 서른 살에 상원의원에 첫 당선돼 내리 7선을 했고 8년간 부통령을 지낸 거물이다. 그러나 77세라는 고령에다 무려 50년간 정치에 몸담은 데서 오는 기득권 이미지가 약점이다. 오랜 정치 경력에도 불구하고 ‘팬덤’이 없고 ‘카리스마’도 약하다.
바이든 전 부통령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선택도 있다. 그는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를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에 발표하겠다고 밝혀둔 상태다. 이미 여성 부통령 후보를 지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인종시위 이후 유색인종, 특히 흑인 후보가 유력해졌다는 평가다.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이 지명도는 높지만 캘리포니아주 출신으로 선거인단 획득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택하기도 쉽지 않다.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데다 유엔 주재 미국대사 시절 리비아 벵가지 피습을 우발적 사건이라고 말했다가 설화에 휘말렸던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몇몇 신인 정치인들도 거론되지만 자칫 2008년 대선 때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사라 페일린 알래스카주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가 표만 깎아먹은 전례를 답습할 수 있다.
통상 3회 열리는 TV 토론도 바이든에게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는 늘 ‘실수(Gaffe)’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선택을 고민하면 흑인도 아니다” “백인 아이들처럼 재능 있다” “나는 2020년 상원의원 후보”라는 등의 말실수가 빈번하다. 선거가 석 달 남은 상황을 감안하면 아직 바이든 승리를 100% 장담하긴 이르다. 트럼프는 백인 지지층에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전략을 택해 또 한 번 역전극을 노리고 있다. 또 지난달 재선캠프 본부장이던 브래드 파스케일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젊은 피’ 빌 스테피언(42)을 앉혔다. 트럼프는 “경제가 나아지고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우리는 크게 승리할 것”이라고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