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주석 국빈방문… 미얀마는 ‘환영’ 속 ‘경계감’ 시진핑, 지정학적 린치핀 미얀마 껴안기
문수인 기자
입력 : 2020.03.04 11:00:35
수정 : 2020.03.04 11:01:05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리더십이 흔들리며 곤경에 처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지만 그의 연초 행보 중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미얀마 국빈 방문이다. 시 주석이 동남아의 한 국가를 의례적으로 방문한 것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아세안 내 여러 국가를 돌면서 미얀마를 찾은 것이 아니라 미얀마 단독 방문이었고, 중국 국가주석으로 2001년 장쩌민 전 주석 이후 19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다.
시 주석의 이번 미얀마 방문은 양국 수교 70주년을 기회로 이뤄졌다. 미얀마 방문에 앞서 시 주석은 현지 언론 기고문을 통해 “양국은 지난 70년간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호존중과 지지를 통해 모범적인 공동 발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미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활로를 미얀마에서 찾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 미얀마는 아세안 내에서도 중국에게 중요한 국가다. 외교전문 잡지 디플로멧은 미얀마를 “중국의 지리정치적 야심의 린치핀”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곧 시 주석의 트레이드마크인 일대일로 정책에서도 미얀마는 핵심적인 국가란 이야기다.
시진핑 국가주석(왼쪽)이 지난 1월 18일 수도 네피도의 대통령궁에서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미얀마의 지정학적 가치는 크게 2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인도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목이라는 점과, 중국의 입장에서 새로운 자원 운송로 개척의 최적지라는 점이다. 중국이 인도양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잠재적 경쟁자인 인도와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신규 자원 운송로 확보는 미국뿐만 아니라 아세안 역내 국가들과도 경쟁을 해야 하는 남중국해 문제의 우회로를 확보한다는 뜻이다. 인도양 역시 중국이 걸프만에서 수입해 오는 원유의 주요 수송로다. 인도는 친중보다는 친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인도와의 대립은 중국이 미국과의 또 다른 대치전선을 만든다는 의미도 된다. 이에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6개 경제회랑에서 미얀마를 포함하는 축(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을 설정해 놓고 공을 들이고 있다. 이번 시 주석의 방문도 이런 맥락에서 진행됐고, 중국 측은 이 같은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시 주석은 미얀마의 실질적 정부 수반인 아웅 산 수치 국가 고문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건설이 일대일로 사업의 “우선순위 중의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이에 양국은 일대일로의 핵심 사업들과 관련된 인프라 건설 투자협약을 이번에 대거 체결했다. 차우크퓨 항만 프로젝트를 포함해 중국~인도양 철도 건설, 락카인 주(州) 심해항 건설, 국경지대 특별경제구역, 수도 양곤의 도시 프로젝트 등 총 33건의 사업 추진에 대해 양국은 합의를 했다. 이 중 핵심은 역시 차우크퓨 항만 개발이다. 중국-미얀마 경제회랑의 핵심 축이기도 하다. 인도양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항구 확보가 필수적이고, 자원의 육상 운송길 출발지로서도 항구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차우크퓨 일대도 가스 등 자원이 많다.
미얀마의 경제수도 양곤에서 400㎞ 북서쪽에 있는 차우크퓨 항만 개발을 위한 중국과 미얀마의 협약은 2009년 시 주석이 부총리로 미얀마를 처음 방문했을 때 이뤄졌다. 이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에서 미얀마가 하나의 축이 된 이후 양측은 차우크퓨 항만에서 출발해 미얀마 내 무세와 만달레이를 거쳐 쿤밍에 이르는 철도를 건설키로 합의했다. 이때가 2017년이다. 하지만 사업 진척은 그동안 다른 회랑들에 비해 그리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동안 중국은 또 다른 육상 일대일로인 파키스탄과의 경제회랑에 많은 공을 들였다.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전략적 요충지로 삼아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그 결과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은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섰다. 이 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중국은 미얀마 회랑 구축에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중국의 행보는 미얀마에게 반갑다.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중국이 미얀마의 아픈 곳을 감싸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군부에서 민간 정부로 역사적 정권 이양을 이뤄낸 후 인권 문제에 발목을 잡혀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미트소네 댐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 주민들
핵심은 미얀마 내 소수민족인 로힝야의 학살 문제인데, 이 건으로 인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 산 수치 국가고문은 로힝야 학살 문제를 방조했다는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에 피소된 상태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수치 고문이 소수민족 탄압에 앞장섰다는 의혹은 군부독재에서 벗어나 민간 정권이 들어선 미얀마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그 결과 한때 신시장으로 거론됐던 미얀마는 국제사회의 투자 손길에서 점점 벗어났고, 국가는 활력을 잃어버린 상태다.
이런 미얀마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로힝야 문제가 불거진 후 중재역할을 자청하면서 ‘미얀마 편들기’에 적극적이었고, 대형 투자 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 미국 등 서방 국제사회가 미얀마를 비판하기에 바빴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에 윈민 대통령은 이번 시 주석과의 만남에서 “로힝야족 등 문제에서 중국의 지지와 이해에 감사하고 미얀마 국내 평화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중국의 로힝야 문제에 대한 이 같은 스탠스는 미얀마의 실세 그룹인 군부까지 바꿔 놓았다. 군부는 그동안 중국의 미얀마 내 투자 움직임에 대해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다면서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민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사령관이 “로힝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팽배하지만 중국은 (우리를) 지지해왔다”면서 “중국 투자가 전략적으로 중요해 환영한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미얀마 군부는 중국이 자국 내 소수민족과의 평화 협상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등 내정 간섭까지 하려 한다는 의구심도 종종 보여왔다. 그렇다고 미얀마가 중국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한편에서는 예의 경계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시 주석의 미얀마 방문을 계기로 양국이 인프라 분야에서 대거 추진 협약을 체결했지만, 소위 눈길을 끌 만한 대규모 신규 투자 건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그 예다. 실제 이번 양국 투자 협약은 기존에 해오던 것을 강화하는 수준에 그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양국 협약의 핵심인 차우크퓨 개발도 그동안 계속 해오던 것을 더 강화하는 수준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미얀마가 중국에게 투자 건으로 더 이상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은연중에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이 이번에 미얀마로부터 미트소네 댐 건설 재추진에 대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한 것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이라와디 강에 건설하는 대규모 수력발전소인 이 댐은 2011년 건설이 중단됐지만, 중국은 끊임없이 공사 재개를 미얀마에 요구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시 주석의 방문을 계기로 댐 건설 재추진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끝내 성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미얀마와 중국이 신규 프로젝트 투자 건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배경에는 최근 일대일로 투자국들이 처한 상황을 의식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중국~파키스탄 회랑의 중요 국가인 파키스탄의 경우 일대일로에 참여했다 약 6조원의 빚에 허덕이고 있고, 스리랑카·지부티 등 다른 국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사업 추진과정에서 중국의 이익만을 챙기는 행태에 관련국들이 반발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쿤밍에서 비엔티안을 거쳐 방콕까지 추진되는 고속철 건설과정에서 중국은 태국 측과 이익분배 건을 두고 다퉈 사업추진이 상당히 미뤄진 적이 있다. 이런 점들을 미얀마가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곤에 있는 국제위기그룹의 리처드 호시 애널리스트는 “이번 시 주석의 방문 결과에 대한 전체적 인상은 미얀마가 중국의 투자에 상당히 주의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