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독자들에겐 무슨 뜻인지 파악도 쉽지 않은 말이지만 지금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다.
간단히 말하자면 부부가 서로 다른 성을 쓸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허용해주자는 얘기다. 이 정도 설명으로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우리와는 너무 달라서다.
일본의 경우 결혼을 하면 부부가 동일한 성을 써야만 한다. 선택은 불가능하다. 전 세계에서도 법으로 규정하는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설명이다(미국 등은 관행적으로 남편 성을 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인이 남편의 성을 따라가지만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남편이든 부인이든 어느 한쪽의 성으로 통일을 해야 하는 셈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날로 높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란 생각을 갖는 것은 일본인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일본 당대표 토론회에서 ‘선택적 부부 별성’에 대한 찬반 질의가 나왔을 때의 모습.
아베 신조 총리(가운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당 대표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결혼 전 성을 쓸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지난 2015년엔 부부간 동성 규정은 합헌이란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최근에서야 일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희망자에 한해 여권이나 운전면허증 등에 결혼 전 성을 괄호 안에 병기토록 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 허용일 뿐이다. 원칙은 달라진 것이 없다. 신분증에 적혀있다고는 하지만 계좌를 개설하거나 계약을 할 때 결혼 전 성을 쓰는 것은 제약이 많다.
이혼 경력이 있을 경우엔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가령 A란 성으로 살다 B란 성을 가진 남성과 결혼했다 이혼 후 C란 성을 가진 남성과 결혼한 여성을 생각해보자. 현재 성이 C다 보니 A나 B란 성으로 남아있는 자료나 계좌, 계약서 등을 쓸 때마다 자신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한다.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선택적 부부 별성제다.
원하는 사람은 부부가 다른 성을 쓰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본의 제2야당인 국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가 법 개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여론의 반응도 나쁘지 않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부부 별성제를 찬성한다는 의견은 69%에 달했다. 반대 의견은 24%에 그쳤다. 여성들의 찬성 비율은 71%로 남성(66%)에 비해 더 높았다. 50대 이하에서는 찬성 비율이 더 높았고 60대 이상에선 반대가 높았다. 50대 이하 여성에선 찬성 비율이 80%를 넘었다. 2016년만 하더라도 부부 별성 찬성과 반대가 각각 47%와 46%로 비슷했던 것이 2017년엔 찬성이 58%로 반대(37%)와 차이가 벌어졌다.
부부 별성제 도입에 따라 행정에 혼선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일본 언론 등에 따르면 법 개정에 필요한 예산이나 추가적인 행정 업무 등도 거의 없다. 원래 성을 그대로 쓰는 것뿐이라서다. 이미 도쿄를 비롯한 각 지자체 의회에서도 부부 별성제 법제화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연립여당의 한 축인 공명당을 비롯해 대부분의 야당이 찬성하고 있다.
유일한 반대는 최대 정당인 자민당이다. 표면상으론 신중하자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절대 불가란 것이 자민당 주류의 분위기다.
여성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다 보니 대부분 자민당 내 여성 의원들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일례로 2월 초엔 국회에서 부부 별성제 도입을 주장하는 다마키 대표의 연설에 대해 자민당의 한 여성의원이 “같은 성 쓰기 싫으면 결혼 안하면 될 것 아니냐”고 고함을 질렀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발언을 한 사람이 스기타 미오 자민당 여성 의원이란 것은 당시 화면 등을 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너무나도 뻔한 일이지만 스기타 의원이나 자민당에서는 끝까지 “그런 발언이 있었던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확인을 거부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민당이 여론의 비판을 각오하면서도 당 차원에서 보호하는 것만 봐도 당 핵심세력들의 의중을 확인할 수 있다.
자민당의 핵심 지지층인 보수 세력들의 반발이 너무 거세서다. 아베 신조 정권의 핵심 지원 조직이기도 한 일본회의도 부부 별성제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아베 총리나 정부 주요 각료들이 앞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자민당에서는 국회 회기 때마다 소속 의원 명의로 ‘선택적 부부 별성 법제화 반대에 대한 청원’을 내고 있다.
명분은 가족 간 일체감 유지 및 가족 해체 방지다. 부부가 다른 성을 쓰면 일본의 전통 가치를 무너뜨리고 가족 해체를 불러올 것이란 얘기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자민당 야마타니 에리코 참의원 의원이 제기한 청원이다. 야마타니 의원은 “가족이란 동일한 성을 쓰는 방식을 통해 가족 간 일체감을 유지하는 일본식 가정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마타니 의원의 주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부부간 별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가족 간 공동체 의식보다 개인의 기호를 더 선호하고 그만큼 가족제도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부 별성제를 찬성하는 쪽에선 “한국이나 중국 등 부부가 성이 다른 나라는 가족이 모두 해체됐느냐”라며 공세를 펴고 있지만 보수 세력들은 귀를 닫고 있다. 2020년에도 여전히 경직적인 구조가 깨지지 않고 있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