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코로나19’ 통제의 역풍, 中 공산당 체제 위기 변수로 떠올라
김대기 기자
입력 : 2020.03.04 10:49:24
수정 : 2020.03.05 14:31:31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중국 공산당 체제에 큰 위기 변수로 떠올랐다.”
지난 2월 1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1980년대 중반 소련 공산당이 체르노빌 사고로 직면한 체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며 이같이 진단했다. 체르노빌 사고가 터진 1986년 4월 당시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사태 은폐와 축소에 급급했고, 결국 그 여파로 소련은 해체의 길을 걸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언론을 강하게 통제하고 사태를 은폐·축소한 중국 공산당의 행보와 닮았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의 확산 추세와 살상력은 발병 보고 시점으로부터 두 달이 채 안 돼 지난 2002~2003년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위력을 훌쩍 뛰어넘었다.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는 동안 중국 보건당국은 사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지 못한 채 오히려 그대로 답습하는 행태를 보이며 팬데믹(pandemic·대유행병)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중국 안팎에서는 중국 당국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범한 3대 실책으로 ▲미흡한 초기 대응 ▲강력한 언론 통제 ▲사태의 은폐 조작 등을 꼽고 있다.
중국 장쑤성 우시의 한 공장에서 방호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방호복을 제작하고 있다.
중국 우한 화난수산시장에서 최초 코로나19 환자가 보고된 시점은 지난해 12월 8일이었다. 이어 코로나19 경보가 내려진 것은 22일이 지난 작년 12월 30일이었다. 우한시 중심병원 의사인 리원량 씨는 폐렴 의심환자를 진료하는 도중 이 환자가 사스바이러스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인 것을 확인했다. 리 씨는 자신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을 통해 폐렴 환자 확진 소식을 외부로 알렸다. 하지만 우한시 보건당국은 ‘원인 모를’ 폐렴 경고 통지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다음날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27명이나 보고되자 부랴부랴 화난수산시장 전면 폐쇄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우한시 정부에게 감염 대응보다는 여론 통제가 우선이었다. 중국 우한 공안국은 1월 3일 리 씨를 비롯한 의료인 8명을 괴담 유포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한 달이 지나서야 중국 최고 인민법원의 무죄 선고로 혐의를 벗었지만 중국 당국의 여론 통제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난 사례였다.
중국의 안일한 대처는 새해가 밝은 뒤 3주가량 더 이어졌다. 지난 1월 11일 코로나19로 첫 사망자가 발생했는데도 우한시 정부는 같은 달 18일 춘제(설) 맞이 4만 명 운집 행사를 허가했다. 이 무렵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20명을 넘어서고 사망자가 2명이나 나왔는데도 우한시 정부는 별다른 강력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중국 중앙정부가 후베이성 밖으로 빠르게 번지는 코로나19 사태를 인지하고 1월 20일이 돼서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중국 당국의 본격적인 대응 조치는 시 주석의 불호령을 계기로 쏟아졌다. 1월 23일 우한시를 대상으로 전면 봉쇄령을 내리고 병원 신축과 의료 지원 등에 나섰지만 한 번 뚫린 중국의 방역망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1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발표하고, 중국 당국 역시 코로나19 확산 제어를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2월 중순도 안 돼 코로나19 확진자는 6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무려 1300명을 돌파했다. 중국 안팎에서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사스의 데자뷔로 보고 있다. 사스 대유행 때도 후진타오 전 주석이 직접 나서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야 당국이 일사분란하게 대응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또 사스 당시 엿보였던 철저한 언론 통제는 17년이 지난 오늘날 변함없이 중국 사회에서 재현됐다. 사스는 2002년 11월 광둥성 포산 지역에서 처음 발병됐지만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발병 45일 후인 2003년 1월 말이었다. 심지어 중국 당국이 사스 확산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시점은 발병 5개월 후의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코로나19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시진핑 주석이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라”고 지시했지만 되레 역풍을 맞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명문 칭화대 법대 교수인 쉬장룬은 최근 여러 해외 웹사이트에 글을 게재하면서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한 이유는 중국에서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가 말살됐기 때문”이라며 “독재 하에서 중국의 정치시스템은 무너졌다”고 비판했다. 인권변호사인 쉬즈융도 2월 4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역전쟁, 홍콩 시위, 코로나19 확산 등 주요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시진핑 선생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외부에 알렸다가 오히려 괴담 유포자로 몰려 체포까지 당했던 의사 리원량이 코로나19 감염으로 투병하다 2월 7일 새벽 사망하자 민심은 더욱 동요하고 있다. 중국 지식인 수백 명은 2월 1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표현의 자유 보장’ 등 5대 요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서에 서명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중국 당국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2월 12일 코로나19 발병지인 중국 후베이성에서 하루 동안 사망자 242명, 신규 확진자 1만4840명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일이 발생했다. 특히 이날 신규 확진자의 경우 전날 수치(1638명)와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이해하기 힘든 숫자여서 중국 보건당국의 ‘고무줄 통계’에 대한 불신이 고조됐다. 일각에서는 중국 당국이 그동안 은폐해온 사망자와 신규 확진자를 한꺼번에 반영하면서 정상궤도를 벗어난 통계치가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중국 내 신규 확진자가 하루 사이 갑작스레 폭증한 이유에 대해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후베이성이 분류 기준을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새롭게 채택한 확진 기준인 ‘임상진단병례’에 따라 발열과 호흡기 이상 증세를 보인 환자가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폐렴 증상을 보일 경우, 임상 의사가 코로나19로 확진판정을 내리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홍콩 SCMP는 “우한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확실한데도 확진 판정을 받지 못했거나 일반 폐렴 환자로 분류되는 환자가 많아 중국 보건당국의 공식 통계를 믿을 수 없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국 민심의 분노가 들끓고 있는 데다 전염병 여파로 올해 중국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돼 시 주석의 리더십 위기가 가중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장밍 중국 사회과학원 국제투자연구실 주임은 “1분기 중국 경제성장률이 5%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며 ‘바오우(保五·5%대 성장률 사수)’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올해 1분기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8%로 제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