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헌철 특파원의 워싱턴 워치] 언론재벌 블룸버그, 美 민주당 경선 ‘폭풍의 핵’ 등장하나… 바이든 초반 부진에 대안 급부상 78세 고령 약점
신헌철 기자
입력 : 2020.03.04 10:36:34
수정 : 2020.03.07 21:11:14
세계 최강국 미국의 46대 대통령을 뽑는 11월 선거가 점점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사실 지난해까지도 민주당 경선은 미국 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눈에 띄는 참신한 후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절대 강자도 없는 그저 그런 후보군이었다. 하지만 2월 3일 아이오와주 코커스를 시작으로 경선이 막을 올리자 뜻밖의 흐름이 형성됐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아이오와주에서 4위, 뉴햄프셔주에서 5위로 추락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8)이라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조기 경선지를 아예 포기하고 14개주에서 동시 경선이 치러지는 3월 3일 ‘슈퍼 화요일’에야 등판하는 블룸버그가 과연 샌더스 의원에 맞서 민주당 중도 세력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관심과 견제를 동시에 받는 것일까.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블룸버그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작은 회사에서 사서로 일했던 부친은 재산을 물려줄 환경은 아니었다. 블룸버그는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그는 이후 월스트리트에 진출해 ‘살로먼 브라더스’라는 투자회사에서 주식 거래와 시스템 개발 등을 담당했다. 1981년 살로먼 브라더스의 주인이 바뀌면서 블룸버그는 해고됐다. 하지만 반전의 계기는 강제퇴직 위로금으로 받은 1000만달러어치 주식이었다.
블룸버그는 이 돈으로 금융회사들에게 실시간 데이터를 제공하는 단말기를 만드는 ‘IMS’란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1983년 메릴린치를 첫 고객으로 시작해 빠르게 블루오션을 개척해 나갔다. 1987년에는 회사 이름을 ‘블룸버그 L.P.’로 바꿨고 1990년까지 8000개의 단말기를 월스트리트에 깔며 돈방석에 올랐다. 1990년대에 ‘블룸버그 뉴스’라는 통신사까지 만들어 단말기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키웠다.
2015년 현재 전 세계에 블룸버그 단말기는 32만5000개가 설치돼 있고 회선당 연간 2만4000달러의 사용료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 L.P.는 고용 인원 2만 명, 연매출 100억달러를 넘는 세계 최대 금융정보 회사가 됐다. 이 회사의 지분 88%를 보유한 그의 재산은 포브스 추정치를 기준으로 628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74조원에 달한다. 전 세계 9번째 부자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
원래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2001년 뉴욕시장 출마를 위해 당적을 공화당으로 바꿨다. 루돌프 줄리아니의 뒤를 이어 뉴욕시장이 된 그는 2002년부터 2013년 말까지 총 3번 당선돼 12년간 재직했다. 2007년 무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했고 2018년에야 다시 민주당원이 됐다. 시장으로 일할 때 연봉 1달러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지만 선거 때마다 7000만달러가 넘는 자금을 뿌렸다.
정계를 떠난 뒤엔 민주당의 막후 후원자이자 각종 사회단체에 막대한 기부를 하는 ‘큰손’으로 지냈다. 2016년 대선 때도 출마설이 나왔으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지를 선언했다. 이번 대선에도 애초 출마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낙마를 위해 자금만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돌연 변심해 지난해 11월 말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약 석 달 동안 그가 TV와 소셜미디어 광고 등에 뿌린 돈은 4억달러를 넘어섰다. 요즘 미국 주요 언론의 홈페이지와 케이블 채널은 블룸버그 선거 광고로 도배돼 있다. 지난 2월 초 미국 최대 스포츠 축제인 미식축구 ‘슈퍼볼’에도 60초짜리 중간 광고에 130억원을 쏟아 부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 국민들은 돈으로 권력을 사는 일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로스 패로라는 기업인이 1992년과 1996년 두 차례 출마해 큰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두 차례 선거에서 패로가 쓴 돈은 1억4300만달러였다. 트럼프 대통령도 상당한 자산가지만 그가 4년 전에 쓴 자기 돈은 7000만달러에 그쳤다.
그의 사생활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베일에 가려져왔다. 1993년 이혼한 수전 브라운-메이어와 사이에 자녀 2명이 있다. 차녀 조지나는 유명한 승마 선수였다. 현재 파트너인 다이애나 테일러(64)와는 2000년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다. 재산 문제를 의식해 정식 혼인관계를 맺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다이애나는 명문 컬럼비아대 MBA 출신으로 주로 금융권에서 일했다. 만약 블룸버그가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퍼스트레이디’가 될 듯하다.
물론 블룸버그 전 시장이 오는 7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대선후보로 지명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당내 경선 승리를 위한 1차 조건은 중도 후보들의 ‘교통정리’다. 현재 민주당 경선 구도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으로 대표되는 진보 후보와 나머지 중도 후보 간의 대결이다. 초반 기세를 올렸지만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은 슈퍼 화요일을 지나며 기세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은 더 위험한 처지다. 블룸버그 캠프의 구상은 샌더스, 바이든, 블룸버그 등의 ‘3파전’으로 경선 구도가 압축되고 곧이어 바이든 전 부통령까지 탈락하는 것이다. 일단 슈퍼 화요일 지역 중에는 대의원 415명이 배정된 캘리포니아주, 228명인 텍사스주, 110명인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3곳이 핵심 변수다. 민주당 최종 대선후보가 되려면 대의원 1991명을 확보해야 한다. 블룸버그 선거캠프가 대의원 배정 수가 적은 조기경선 지역을 아예 건너뛰고 대형주에 집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블룸버그의 본선 경쟁력은 주요 민주당 후보들과 비교해 약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2년간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을 이끌었던 행정 경험, ‘화수분’과 같은 정치자금, 트럼프 대통령과 겹치는 지지기반 등은 그가 대권 향배를 쥐고 있는 핵심 경합주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의미한다.
조지프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지난달 미국 퀴니피액대 전국 여론조사를 보면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50% 대 43%로 앞서고, 샌더스 의원 역시 51% 대 43%로 우세했다. 블룸버그 또한 51% 대 42%로 앞섰다. 반면 워런 의원이나 부티지지 시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경쟁할 경우 지지율 격차는 더 좁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캠페인 메시지는 간명하다. ‘미국 재건(Rebuild America)’이라는 모토 하에 총기규제 강화, 기후변화 대응, 보편적 건강보험 도입 등을 내세운다. TV 광고를 통해 핵심 메시지만 반복 전달하면서 ‘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반대로 블룸버그 전 시장의 최대 약점은 고령과 금권 선거 논란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4살 연상이다. 블룸버그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돼 재선까지 8년간 대통령직에 머무른다면 마지막 해에는 87세가 된다. 블룸버그는 ‘슈퍼팩(Super PAC)’으로 불리는 기업들의 정치자금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풀뿌리 소액 후원도 전혀 받지 않고 있다. 오직 자신의 돈으로만 끝까지 선거를 치르겠다는 얘기지만 일각에선 돈으로 권력을 사려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블룸버그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