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 특파원의 일본열도 통신] 기후변화 피해 늘고 있는 일본, 국민생선 꽁치 급감하고 태풍 피해 커져
정욱 기자
입력 : 2020.02.04 17:02:33
수정 : 2020.02.04 17:14:14
# 태평양과 도쿄만을 잇는 바닷길의 입구에 위치한 치바현 다테야마시 하사마.
항구에서 300m가량 떨어진 바닷속이 지난 연말연시 화제가 됐다. 대형 산호들이 빠르게 증가한 영상이 언론을 타면서다. 이곳에 산호가 등장한 것은 지난 2007년 11월. 20㎝ 정도 원형 산호 2개가 발견됐지만 2009년 바닷물 수온이 하락하면서 모두 죽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시적인 일로 여겼지만 일 년 만에 오산이었음이 드러났다. 2010년부터 산호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크기도 직경 60~90㎝로 커졌다.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도 이곳에서 수중 촬영에 나선 수중사진 작가인 오자키 코지 씨는 “숫자도 크게 늘고 사이즈도 너무 커져서 깜짝 놀랐다”고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높아진 수온에 산호들이 번성하기 시작한 바닷속에선 해초들이 사라지고 있다.
# 시코쿠 에히메현의 최대 공항인 마쓰야마 공항에선 대형 귤 주스 폭포가 관광객을 맞는다.
시코쿠 에히메현은 일본에서도 알아주는 귤 생산지다. 여전히 에히메현 귤을 찾는 수요자는 많지만 생산자는 점점 줄고 있다. 기온이 올라서다. 지난 100년 사이 마쓰야마시의 평균 기온은 1.8도 올랐다. 덕분에 겨울철 추운 날씨로 귤이 어는 경우는 줄었지만 품질이 예전 같지 않다. 지역 농가의 주민은 “날이 추워지지 않으면서 귤 과실과 껍질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현상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며 “상품 가치가 없어 폐기하는 양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브랜드가치 유지를 위해 품질이 떨어지는 농산물은 저가 판매 대신 폐기처분하는 경우도 많다.
아예 다른 농작물로 눈길을 돌리는 생산자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열대식물인 아보카도다. 현재는 90% 이상을 멕시코에서 수입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마쓰야마시에서도 아보카도 생산을 장려할 정도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일본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들이 날로 늘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이 언론을 통해 대거 등장하면서 일본 사회의 충격도 날로 커지고 있다. 어설픈 대응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이나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등의 영향도 있지만 일반인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꽁치다.
대표적인 겨울철 국민생선 꽁치 어획량이 급감했다. 지난해 어획량은 4만517t에 그치며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60년 이후 59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지난해 어획량은 2018년에 비해서는 무려 66.7%나 줄었다. 일본 전국꽁치협회에서는 지난해 어획량을 발표하며 “천재지변급 어획량 감소”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10년 전인 2009년엔 어획량이 30만t에 달했다.
평소엔 9월부터 꽁치가 잡혔지만 지난해에는 9~10월 중순까지 어획량이 2018년의 10% 수준으로 떨어진 영향이 컸다. 지난해 10월 말 이후엔 어획량이 늘었다지만 대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수온이 상승하면서 어장이 이동한 데다 수년간 지속된 중국 어선들의 남획까지 겹치면서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어획량이 줄자 당연히 가격이 뛰었다. 산지 도매가격은 10㎏당 3160엔으로 2018년 같은 기간에 비해 70%가량 뛰었다. 일본 최대 수산시장인 도쿄 도요스 시장에서 한때 ㎏당 1000엔까지 치솟으면서 2018년에 비해 배에 거래되기도 했다. 일반 식당에서는 늦가을 대표 메뉴였던 꽁치회나 꽁치구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꽁치 통조림 가공업체들도 어려움이 늘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는 “가공업체 중에서는 적자를 보면서도 생산에 나섰다 아예 도산하는 곳도 생기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다.
꽁치 어획량 감소에 놀란 언론들이 사례를 찾다보니 일본 전역에서 기후변화 사례들이 쏟아졌다. 남북으로 길게 퍼진 일본의 특성상 다양한 기후가 존재한다. 위도만 놓고 보자면 홋카이도의 북쪽 끝은 중국 하얼빈과 비슷하며 오키나와현의 남쪽 끝은 대만 중부 지역과 비슷하다. 다양한 기후만큼이나 생각지도 못했던 곳의 사례들이 알려지며 기후변화가 이미 다가온 미래였음이 확인된 것. 여기에 지난해 잇따른 재난이 기후 온난화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도 한몫했다.
일본 중부 나가노현의 신칸센 열차가 태풍 하기비스가 몰고 온 폭우로 흙탕물에 잠겨 있다.
농수산물 가격이 오르고 태평양 섬이 물에 더 잠기는 정도로만 여겼던 기후변화에 대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까지 느끼게 된 것.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10월 초 일본 열도를 덮친 태풍 하기비스다. 중북부의 나가노현 등에 기습적인 폭우를 뿌렸다. 예상을 큰 폭으로 넘는 강수량으로 제방이 무너진 후 여전히 피해복구를 진행 중이다. 당시 차량기지가 물에 잠기면서 침수된 신칸센 10량의 장부가격만 118억엔에 달해 한국서도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태풍 때문이라 여겼지만 앞으로 더 자주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장기 추세로 보자면 일본 내에서 하루에 1㎜ 이상이라도 비가 내리는 날은 감소하고 있지만, 하루 100㎜ 이상 퍼붓는 날은 증가 추세다. 도쿄신문은 기상학자들 사이에선 ‘일기의 양극화’라는 평가까지 나온다고 지적했다. 하기비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도쿄 인근 온천관광지인 하코네에서는 하루에 922.5㎜의 비가 내리며 관측사상 1일 최대 강수량을 기록했다.
하기비스보다 한 달 전에 일본을 강타한 파사이는 또 다른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강풍을 동반한 파사이는 지바현 일대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불러왔다.
당시 강풍으로 인한 가옥 파괴 등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위기는 태풍이 떠난 뒤에 등장했다. 한여름에 정전이 이어지면서 열중증(일사병, 열사병처럼 고온으로 인해 체온조절에 이상이 생기는 증상) 환자가 급증했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인 9월 10일. 지바현 대부분 지역이 35도 이상을 기록하면서 이날 하루에만 지바현에서 열중증으로 응급이송된 환자가 240명에 달했다.
최근 5년간 9월 한 달 동안 열중증 응급이송 환자(60~185명)를 단 하루 만에 훌쩍 뛰어넘은 셈이다. 특히나 고령화와 맞물리면서 피해는 더 컸고 이런 상황은 날로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 정부에서도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지만 기후변화의 특성상 특정 국가가 노력한다고 단기간에 개선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불안감만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