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승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꿈의 직장’에서 멀어지고 있는 구글·페이스북 등 ‘빅 테크’, 잇따른 불미스런 사태에 미국 대학 내 ‘테크래시’ 현상
장용승 기자
입력 : 2020.02.03 16:12:17
수정 : 2020.02.03 16:18:05
구글, 페이스북….
미국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이자 4차 산업혁명 주도 세력이다.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이러한 ‘빅 테크(Big Tech)’ 회사들은 남부럽지 않은 보수에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유로운 일터 문화가 정착돼 있어 ‘꿈의 직장’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이러한 ‘빅 테크’ 회사들에 대한 선호도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에서 이들 기업이 상위권에서 밀려나고 있다. 심지어 ‘빅 테크’ 회사들에 대한 반감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2020년 들어 1월 12일자 주말판에 ‘캠퍼스 테크래시(Techlash)’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게재했다.
미국 주요 대학에서 ‘빅 테크’ 취업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테크래시’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와 ‘백래시(Backlash·반발)’를 합친 말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에 대한 반발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벨체 도구르 대학원생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캠퍼스에서 분명히 대화가 달라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페이스북에서 일한다고 하면 ‘대단하다. 너는 정말 똑똑하겠구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제 학생들이 페이스북에 들어간다고 하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할 정도로 과거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많은 학생들에게 ‘빅 테크’ 회사에 대한 취업은 ‘번영의 티켓’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실리콘밸리의 좋은 자리를 제안 받더라도 과거처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는 분위기가 됐다고 NYT는 분석했다.
이와 관련 미국 내 재직자들이 꼽은 ‘일하기 가장 좋은 기업’ 순위에서도 구글, 페이스북 등은 ‘톱10’에 들지 못했다.
미국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구인·구직 웹사이트 ‘글래스도어’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년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에서 1위는 소프트웨어 업체 허브스폿이 차지했다. 2위는 컨설팅회사 베인앤드컴퍼니였다. 이어 전자서명 업체 다큐사인이 3위, 패스트푸드 업체 인앤아웃 버거가 4위에 올랐다. 이에 비해 구글과 페이스북은 각각 11위, 23위에 그쳤다. 이밖에 또 다른 미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21위, 애플은 84위에 머물렀다. 이처럼 ‘꿈의 직장’으로 통하던 ‘빅 테크’ 회사들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진 이유는 이들 회사들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태가 잇따라 터졌기 때문이다. 이 사태로 인해 회사 경영진들과 직원들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들 회사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업체인 페이스북은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지난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로부터 50억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이번 벌금은 FTC가 정보기술(IT) 기업에 부과한 것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FTC는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사생활 보호 준수 여부를 보고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저커버그는 준법감시인과 함께 분기마다 회사가 사생활 보호 프로그램을 잘 준수하고 있다는 인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도 그렇지만 페이스북은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다른 소셜미디어들과 달리 정치 광고를 허용한 것을 놓고 내부 반발이 나타났다. 정치인들이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비판 논리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인 구글은 최근 몇 년 동안 성희롱·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임원의 신병 처리 문제, 군과의 공동사업, 중국의 검열 체계에 맞춰 설계된 검색엔진 개발 등으로 내부 잡음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 전 구글 수석부사장은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뒤 퇴사하면서 900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전 세계 구글 직원 수천 명이 파업에 나선 바 있다.
이와 관련 CNN은 지난해 11월 “구글과 직원 간 갈등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구글이 직원 4명을 해고한 것을 놓고 내부 반발이 거셌다. 이들 중 한 명은 구글이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에 협력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처분을 받았다고 일부 직원들은 주장했다. 구글은 직원 4명이 데이터 보안 관련 규정을 어겨 해고했다고 밝혔지만 구글 직원 200여 명이 항의 집회를 여는 등 경영진과 직원들 간 갈등이 불거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남녀 직원들이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 등에 항의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업체 팰런티어(Palantir)에 대해선 학생들의 취업 거부 사태가 나타났을 정도다. 비즈니스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하버드대, 예일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등 미국 명문대 17개 소속 학생 1200여 명은 팰런티어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협력하고 있다는 이유로 회사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서명 운동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반(反)이민정책에 대항하겠다는 취지로 ‘팰런티어가 ICE와의 협력을 중단할 때까지 팰런티어에 채용 지원서를 내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외쳤다.
이처럼 ‘빅 테크’ 회사들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태가 터지면서 기업 이미지도 실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퓨 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술 기업들이 미국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에 대한 응답률은 2015년 71%에서 2019년 50%로 떨어졌다. 이러한 ‘빅 테크’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의 영향으로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뉴욕 제2본사’ 계획을 철회하기까지도 했다.
아마존은 2018년 11월 제2본사(HQ2) 부지로 뉴욕 퀸스 롱아일랜드시티와 워싱턴DC 인근 내셔널랜딩 2곳을 각각 선정했지만 2019년 들어 롱아일랜시티 계획을 접었다. ‘부자 기업’인 아마존에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보다 낙후한 지하철 개선 등 인프라스트럭처와 공공 서비스에 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일부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지역사회에서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기업들로 손꼽힌다. 앞으로도 전 세계 수많은 인재들이 이 회사들의 취업문을 두드릴 것이다. 다만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노출된 문제에 대해 ‘빅 테크’ 회사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꿈의 직장’ 명성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빅 테크’ 회사들이 어떤 개선책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