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금싸라기 普洱茶 의 세계] 200g에 300만원에도 없어서 못 사는…고수보이차의 성지 ‘라오반장’을 가다
입력 : 2020.02.03 14:33:22
수정 : 2022.06.09 14:47:31
고수보이차의 성지 ‘라오반장’ 마을은 아무나 막 들어갈 수 없다. 마을 입구에서 일일이 검사해 라오반장 마을 내에 살고 있는 차농이 1명이라도 있어야 그를 따라 들어갈 수 있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 로마네 콩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유명하다. ‘○○산 로마네 콩티가 경매에서 ○억원에 팔렸다더라’라는 스토리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부르고뉴 와인은 가장 비싼 와인 랭킹을 매기면 늘 톱10 안에 이름을 가장 많이 올린다. 그 이유는 프랑스가 1936년에 제정한 부르고뉴 와인 등급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아니라 아예 포도밭에 등급을 고정해 놨다. 생산량이 동일하니 찾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희소성’과 ‘중국인의 묻지마 투자’ 덕분에 ‘부르고뉴 와인은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지금 보이차가 딱 그렇다. 보이차는 중국 윈난(운남)성에서 만들어내는 차에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다. 중국 정부는 보이차를 ‘윈난 지역 대엽종 차나무 잎을 쇄청한 원료로 만든 생차와 숙차’라고 정의했다. 윈난성 중에서도 작금의 최고 보이차 산지는 멍하이(맹해)현에 위치한 부랑산(포랑산), 그중에서도 ‘라오반장(노반장)’이다. ‘라오반장’이라는 이름만 붙어있으면 라오반장 지역의 찻잎이 몇 퍼센트 들어갔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편(357g) 가격이 수십만원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라오반장 지역의 1700년 된 차나무 단주(한 나무에서 딴 잎으로만 만든 차)는 200g에 300만원을 호가해도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보이차, 그 중에서도 수령 수백~수천 년 된 고수차가 큰 인기를 끌면서 최근 중국 정부는 오래된 차나무는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며 거둬들이는 중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1700년 된 차나무 관리권을 중국 정부에 이양했다는 A씨는 “이제 해당 나무 단주차는 더 이상 시중에서 구할 수 없게 됐다. 향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남은 차를 팔지 않고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귀띔한다. A씨는 또 “말이 관리지 해당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를 중국 최고위층이 알음알음 나눠 가진다는 소문도 돈다”고도 덧붙였다.
보이차의 성지 부랑산 라오반장에 가기 위해서는 하루를 꼬박 투자해야 한다.
중국 서부 대개발의 관문이라 불리는 쓰촨성 아래, 왼쪽은 바로 티베트와 맞대어 있는 곳, 중국이라기보다는 동남아 분위기를 더욱 물씬 풍기는 윈난성 성도 쿤밍이 첫 시작점이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을 날아가야 나오는 쿤밍행 비행기에는 유독 동남아인이 많이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베트남·태국·라오스, 서남쪽으로는 미얀마·인도와 접해있다는 쿤밍 창수이 공항은 국제항공편의 80%가 동남아행이다. 버스나 고속철도를 타고 이들 국가로 가는 동남아인도 부지기수다. 쿤밍이 종착점이 아니다. 국내선 터미널로 가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1시간 남짓 날아 도착한 징홍 공항. 드디어 멍하이현이 속해있는 시솽반나다. 12월 중순 쿤밍 최고기온이 14~15도인 반면, 시솽반나는 27~28도까지 올라간다. 계절이 없고 그저 우기와 건기만 있다는 곳. 25개 소수민족이 산다는 곳.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못 살던 지역에서 지금은 연간 수십억대 수입을 올리는 차농까지 등장한 그곳이다.
▶‘윈난 지역 차나무 잎’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보이차’ 이름 붙일 수 있어
차 산지에 들어가려 시솽반나에 온 수많은 사람들로 붐빈다는 멍하이현에 가기 위해 시솽반나 공항에서 차를 타고 1시간가량 또 달린다. 국경에 인접한 멍하이현에 들어가기 직전, 모든 통행자는 여권을 검사받는다. 그렇게 꼬박 10시간 넘게 걸려 들어온 멍하이현은 온통 공사장과 차(tea)로 채워져 있다. 거리에는 발에 차이는 게 수많은 차관이고, 성장하는 경제에 걸맞게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멍하이현 마 현장은 “보이차가 40만 명 인구 멍하이현 경제의 20%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라오반장·빙도·시구이 고수차는 현재 보이차 중에서 최고 가격을 자랑하는 트리오다.
멍하이현 부랑산 라오반장이 보이차의 성지로 떠오른 배경이 있다. 보이차를 생산하는 수많은 차창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 1위 대형차창이 대익차다. 대익차 전신이 멍하이현을 기반으로 설립된 멍하이차창이다. 대익차 본사가 멍하이현에 있는 것은 물론 1만 무 규모(1무=666평) 다원이 부랑산에 자리한다.
그뿐인가. 10여 년간 보이차 트렌드의 최정점에 서있는 고수보이차(이하 고수차: 수령이 200~300년 이상 된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의 대표 차창인 우림고차방과 진승호차창도 멍하이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림고차방과 진승호차창이 멍하이현에 있는 것 또한 이유가 있다. 보이차는 만든 첫해는 물론 몇 년이 지나도 고삽미(쓰고 떫은 맛)가 강해 바로 마시기 쉽지 않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 적어도 10년은 숙성시켜야 ‘마시기 좋은 상태로 열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보이차도 오랜 시간 숙성시키고 발효시켜야 비로소 부드럽고 마시기 좋은 차로 완성된다. ‘할아버지가 사들여 손자가 마시는 차’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오래된 보이차는 ‘노차’라 불리는데 2000년대 들어 보이차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노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노차도 노차 나름이다. 관리를 잘 해서 곰팡이도 피지 않고 발효가 잘 된 노차가 진짜다. 보이차가 별 인기가 없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보이차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연히 ‘품질 좋은 노차’는 손에 꼽을 정도로 희소했다. 노차를 찾는 사람은 많은데 좋은 노차는 별로 없으니 대충 포장지만 오래된 것처럼 꾸며 파는 가짜 노차가 생겨났다. 심지어 진짜 노차보다 가짜 노차가 많아지면서 보이차 시장은 엄청나게 혼탁해졌고 ‘진짜 보이차는 구할 수 없으니 아예 마시지 않는 게 낫다’는 인식까지 팽배해졌다.
이 와중에 인기를 끈 차가 숙차다. 숙차는 ‘생차가 노차가 되는 기간을 기다리기 힘들어 인위적으로 만든 차’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습기와 온도를 가해 강제적으로 발효를 시켜 만들자마자 오래된 보이차의 맛을 내는 방식이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든 차인 만큼 세월의 향이 더해진 차에 미치지 못할 것은 당연지사. ‘악향’이라 불리는 숙차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등 호불호가 진하게 갈린다. 가격도 물론 숙차가 생차에 비할 수 없게 훨씬 저렴하다.
후발차창인 우림고차방과 진승호차창은 이때 고수차로 눈을 돌렸다. 100년 이상, 심지어 수천 년 오랜 세월을 살아낸 나무(古樹)에서 따낸 차로 만든 고수차는 첫해부터 어느 정도 세월을 살아낸 보이차의 맛과 향을 낸다는 점에 주목했다. ‘숙차처럼 바로 마실 수 있으면서 싸구려 숙차가 아닌 비싼 차’가 바로 이들이 정립해낸 ‘고수차’의 개념이다.
그뿐인가. 이들은 대형차창의 대지차(낮은 지대에서 차나무를 재배해 차를 생산하는 방식)에 비해 고수차가 훨씬 청정한 차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지금은 대익의 대지차 다원도 농약을 치지 않는다지만, 대지차는 아무래도 농약을 치고 차 맛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강하다. 고수차는 대부분 해발 1800m 이상 지역의 야생으로 자란 차나무에서 따낸 차 잎으로 만든다. ‘차나무는 1년 위로 자라면 1년 아래로 자란다’라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깊게 뿌리를 내린 고수차는 따로 물과 양분을 공급하지 않아도 자력으로 살아낸다. 1500m 이상 고지대에서는 해충도 살 수 없어 농약을 칠 필요도 없다. 보이차 세계의 판을 바꾸는 도박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고수차가 먹히면서 이들은 일약 보이차 업계 스타로 떠올랐다.
다시 두 차창이 멍하이현에 기반을 두게 된 스토리로 돌아가자.
보이차 마을마다 가장 오래된 나무에 ‘차왕수’라 이름 붙이고 관리한다. 고수차는 보통 이렇게 큰 교목 형태 나무의 잎으로 만든다.
우림고차방과 진승호차창이 주목한 지역이 바로 멍하이현 부랑산에 위치한 ‘라오반장’이다. 보이차의 대표적인 산지는 고(古)6대차산으로 불리는 6개 차산과 신(新)6대차산으로 불리는 6개 차산이다. 란창강(메콩강)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고6대차산, 왼쪽에 신6대차산이 흩어져 있다. 명·청 시대에는 고6대차산이 중심지였다면, 현대 중국에 와서는 신6대차산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고6대차산이 일찍부터 보이차로 유명해 나름 개발이 된 반면, 신6대차산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게 결정적으로 뜨는 계기가 됐다.
신6대차산 중에서도 가장 오지이며 낙후돼 있던 지역이 부랑산이다. 개발이 덜 되고, 그만큼 사람 손이 덜 탄 부랑산은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수백 년 세월을 홀로 버티며 품질 좋은 차 잎을 만들어내는 고수차’ 이미지에 딱 맞았다.
2008년 진승호차창은 부랑산 지역에서도 차 기운이 세고 품질 좋은 라오반장 지역을 주목하고 라오반장 135개 차농 중 50여 차농으로부터 차를 전량 납품받는 계약을 맺었다. 라오반장 마을 입구에는 50여 명 차농의 얼굴을 모자이크해놓은 대형 광고판이 하나 서있는데, 진승호차창과 계약을 맺은 차농들이다.
보이차 애호가에게 최고 유명 지역이 된 라오반장 마을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마을 입구에 상주하는 2명이 일일이 체크한다. 라오반장 차농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그를 따라 들어갈 수 있다.
부랑산 입구에서 30분 넘게 자갈길을 덜컹거리며 달려간 라오반장 마을 입구. 라오반장 5호 차농인 합니족 출신 양하이룽(31)이 포르쉐를 끌고 마중 나왔다.(라오반장은 대대로 합니족이 살던 지역이다.) 집사람이 모는 벤츠 포함 보유한 차만 7대라는 룽. 노반장에서 매년 생산되는 보이차가 60톤가량 된다. 그 중 800㎏을 생산하는 양하이룽은 매년 차 잎을 팔아 20억원 넘는 수입을 올린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차나무로 큰 수입을 올린다며 매년 누나 2명에게 각각 2억원씩 보내준다는 얘기도 들려준다.
보이차 산지는 윈난성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란창강(메콩강)을 사이로 왼쪽이 신6대차산 오른쪽이 구6대차산으로 구분된다. 구6대차산이 명·청 시대 중심지였다면 현대에 들어와선 신6대차산이 훨씬 각광을 받고 있다.
▶보이차 산지 신6대차산·고6대차산 유명
현대 중국에 와서 부랑산 등 신6대차산 각광
라오반장 마을도 멍하이현 시내 못지않게 곳곳이 공사 중이다. “차농들이 돈을 많이 벌면서 앞다퉈 살림집을 근사하게 고치는 중”이라는 설명이다.
라오반장 인근 라오만어(노만아) 마을 역시 고수차로 유명한 지역이다. 237호가 모여 사는 라오만어 마을은 멍하이현 시내에서 차 하나가 겨우 다닐 만큼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1시간 이상 달려야 갈 수 있다. 차 2대가 다닐 만한 폭이 아니고 계속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운전하는 내내 클랙슨을 계속 울려 앞쪽에 차가 오고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피하다 길을 벗어나 살짝 구를까 말까 하기를 몇 번, 그 험한 여정 끝에 도착한 라오만어 마을. 그나마 3년 전 도로가 놓여 차로 오갈 수 있게 됐다고. 이전에는 걸어서 산을 내려가 차를 팔고 그 돈으로 생필품을 사오곤 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라오만어 105호 차농인 앤쑤잉(30)은 부랑족이다. “라오만어 마을이 너무 못살아 정부에서 나와 차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옥수수를 심어 먹고 살라고 독려했다. 당시 일부는 정부 말을 따랐지만 일부는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차나무를 베어낼 수 없다며 버텼다. 2010년부터 차나무가 돈이 되기 시작했는데 당시 차나무를 베어버린 농가는 엄청 후회하고 있다”고 사정을 전한다.
고수차가 보이차의 핵으로 떠올랐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고수차를 구하기 쉽지 않다. ‘진짜 고수차는 중국 부자에게 다 팔리고 남는 게 없다. 한국에서 비싸게 주고 산 고수차가 진짜 고수차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도 들린다. 일부 국내 차 애호가는 3월 말~4월 초 현지 차농과 연계돼있는 국내 업체와 함께 직접 차 산지에 들어가기도 한다. 찻잎을 직접 따서 볶고 제다해 말리는 과정을 내내 지켜 자신만의 차를 병배해 오려는 여정이다. 차 한 편(동그란 모양의 357g짜리)을 만드는 가격이 어마어마하긴 해도, 이렇게 해야 비로소 믿을 수 있는 차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편 최근 10년 가까이 보이차의 성지라 불려온 ‘라오반장’은 차츰 그 영광의 타이틀을 임창 지역 빙도와 시구이(석귀)에 넘길 채비를 하고 있다. 특히 라오반장에 비해 생산량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는 빙도 보이차 가격은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이미 라오반장 차 가격을 가볍게 넘어섰다. 시구이는 ‘지금 제일 비싼 차는 빙도와 라오반장이지만, 앞으로 가장 비싸질 차는 시구이’라는 말이 돌만큼 유명세를 자랑한다. 때문에 발 빠른 투자자들은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부터 시구이를 많이 쟁여두겠다”며 차가 나오는 족족 구매에 나서는 중이라는 전언이다.
◆차의 분류
우리가 흔히 차(茶)라고 부르는 것들은 실제로는 대용차다. 구기자차, 결명자차, 보리차, 허브티, 루이보스티 같은 것들은 모두 대용차에 속한다. 차나무 잎을 가공한 것만 ‘차’라고 부른다.
차는 가공방식과 발효도에 따라 크게 6가지로 나뉜다.
녹차는 발효가 이뤄지지 않은 차다. 성질이 차갑고 카페인도 많다. 백차는 발효도가 5% 정도 되는데 잎을 따서 그냥 말리는 자연건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발효도 10%가량의 황차는 찻잎을 덖은(가마솥에서 볶는 것) 후 무거운 걸로 하룻밤 눌러놓는다. 이 때 세포막이 파괴되면서 살짝 발효가 되는 게 특징이다. 발효도 15~85%의 청차는 300종류가 넘어간다. 우롱차를 비롯한 대만차의 대부분이 청차에 속한다. 중국 푸젠성(복건성) 우이산(무이산)에서 생산해 무이암차라 불리는 대홍포, 육계, 수선 등도 청차에 속한다. 홍차는 100% 발효된 차다. 우연히 찻잎이 완전발효되면서 거무튀튀해진 상태의 찻잎이 발견됐다. 중국인이 이 이상한 차를 수출했는데 영국인이 열광하면서 세계적인 차가 됐다. 영어로 ‘black tea’라고 하는 것은 찻잎이 검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발효도 86~99%의 흑차는 ‘후(後)발효’가 특징이다. 병배 후에도 계속 발효된다는 의미다. 보이차도 흑차에 포함된다. ‘보이차를 오래 둘수록 좋아진다’는 것은 ‘후발효’되는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보이차가 워낙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흑차와 보이차를 구분하는 게 보통이다. 흑차는 육보차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