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원 특파원의 굿모닝 하노이] 스타벅스도 문 닫게 한 ‘하노이 식수 대란’ 고속성장 속 하루가 멀다하고 보건 사고
홍장원 기자
입력 : 2019.11.05 16:37:18
수정 : 2019.11.08 16:33:23
발단은 빗발치는 주민들의 제보였다. 수돗물에서 알 수 없는 악취가 난다는 것이다. 마치 플라스틱을 태우는 것 같은 불쾌한 냄새였다. 수돗물과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향이었다.
민원은 약 8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 사회에서도 빗발쳤다. 주민들이 모인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기점으로 ‘수돗물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10월 9일경 벌어진 일이었다.
악취는 진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하며 유령처럼 수도 근처를 맴돌았다. 악취의 원인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후였다. 빗발치는 민원을 감당하지 못한 하노이 시에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수돗물 성분을 분석한 시 정부는 깜짝 놀랐다.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스티렌 농도가 평소 대비 1.3~3.6배나 높았다. 이유가 무엇인지 쏟아지는 추측을 뒤로한 채 정밀 조사에 들어갔다.
결과는 황당했다. CCTV를 분석해보니 10월 8일 하노이 북서쪽에 위치한 호아빈성에서 2.5t 트럭 한 대가 폐유를 하천에 몰래 버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폐유는 때마침 내린 빗물을 타고 하노이 상수원인 다강으로 넘어갔다. 결국 하노이 시민을 먹여 살리는 주요 상수원 중 하나가 폐유로 오염된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하노이는 ‘호떡집에 불난 상황’과 진배없었다. 지난 10월 16일 하노이 주요 매체를 타고 ‘발암물질 수돗물’ 기사가 나오자마자 주요 아파트 단지는 모두 단수에 들어갔다. 오염된 물탱크를 씻어내느라 법석이었다. 하루아침에 식수를 잃어버린 아파트 단지는 ‘물 구하기’ 대란이 벌어졌다. 얼마나 지나야 사태가 진정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위생과 안전에 민감한 한인 사회는 더 뜨겁게 반응했다. 마트 식수는 씨가 말랐다. 경쟁적으로 마트에 뛰어가 1.5ℓ 생수 수십 병을 사재기하는 광경이 목격됐다. 단지 내에서 물이 매진된 것을 뒤늦게 알게 된 몇몇 한인은 인근 아파트까지 원정을 떠나 식수 구하기에 나섰다. 하지만 웬만한 마트는 500㎖짜리 미니 생수까지 전부 팔려나간 이후였다. 물을 구해야 한다는 공포감이 가수요로 이어졌고, 한껏 치솟은 가수요 그래프는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하루 이틀이 지나 마트별로 대량으로 생수 재고 확보에 나선 이후 상황이 진정되긴 했지만 ‘수돗물 포비아’는 그로부터 한참동안 지속됐다. 상수원은 특성상 한 번 오염되면 정화가 쉽지 않다. 하노이에 물을 공급하는 5~6개 상수도 업체 중 어느 업체의 수돗물이 문제가 있는지를 분석한 보고서가 스마트폰을 타고 빛의 속도로 확산됐다. 해당 업체 수돗물을 이용하는 단지는 수돗물로 샤워를 하거나 양치를 하는 것도 꺼려지는 상황이 지속됐다. 기존 물 거래선을 끊고 물차로 대량의 물을 공급받아 주민에게 공급한다고 홍보했지만 공포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10월 17일을 기해 365일 휴일 없이 운영되던 하노이 스타벅스 매장 일부가 휴업에 들어가는 상황까지 번졌다. 커피에 들어가는 물의 출처를 놓고 사람들의 질문이 이어진 탓에 아예 하루 이틀 문을 닫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8월 말 하노이 시내의 형광등 업체 ‘랑동(Rang Dong)’의 창고에서 불이나 다량의 수은이 공기로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약 27㎏에 달하는 수은이 누출돼 창고 내부 수은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의 10배를 넘어섰다. 주변 공기 역시 오염된 것으로 나와 화재 직후 반경 1㎞ 기준으로 수은 경고 발령이 떨어질 정도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건강과 직결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하노이를 비롯한 대도시가 중진국이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역시 지난 1991년 3월 경상북도 구미시 두산전자에서 페놀 원액 30t이 낙동강 지류인 옥계천에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페놀을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이음새 일부가 파열되면서 대량의 페놀이 강으로 유출된 것이다. 이후 과정도 2019년 10월 하노이에서 벌어진 상황과 유사하다. 오염된 강물은 대구시 수돗물의 약 70%를 책임지던 다사 수원지로 흘러갔고 오염된 물은 채 걸러지지 않고 수돗물로 만들어져 대구시로 넘어갔다. 페놀에 오염된 수돗물을 마신 시민들이 복통·설사 등 증상을 호소했고 이 물로 만들어진 콩나물 등을 대량 폐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91년 한국 1인당 GDP는 7523달러로 2018년 베트남 1인당 GDP(약 2600달러) 대비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1986년 한국 1인당 GDP가 2803달러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 역시 1991년 기준으로 1인당 GDP가 3000달러를 넘은 지 5년밖에 안 되는 시점이었다. 시민의식과 사회적 자본 축적이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이는 베트남 또한 고속성장을 지속하면서 끊임없는 사회 문제와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더 성숙할수록 전에 문제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문제로 다가온다. 최근 벌어진 하노이 수은 노출 사태, 수돗물 오염 사태 등은 베트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임과 동시에, 앞으로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극복해야 할 성장통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베트남에서 비즈니스를 모색하는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월 말 베트남 하노이 남뚜리엠 지역에 위치한 푸옹칸 유치원에서 ‘빗물 정화 시설’ 완공식을 진행한 롯데백화점이 대표적이다. 롯데백화점은 하노이 식수오염 사태를 내다보기라도 한듯 사태가 터지기 1개월여 전 시설을 완공했다.
이 빗물 정화 시설은 대형 물탱크에 20t 가량의 빗물을 저장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500여 명의 어린이 및 지역 주민들의 물 수요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베트남은 비가 많이 내려 물을 활용하기 용이하지만 비용 문제 탓에 빗물 정수통을 설치하고 유지 및 보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2014년 하노이 끄께마을, 2015년 호찌민 껀저현마을에 이어 베트남 지역에서 세 번째로 빗물 정화 시설을 완공했다. 이 사업이 당장 돈을 벌어주지는 못하지만, 롯데 입장에서는 하노이 식수 오염 사태를 계기로 롯데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식품·문화·서비스 기업인 롯데 입장에서는 값으로 따지기 힘든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