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치면 서울 광화문 뒤편 무교동 쯤에 해당하는 간다에서 직장인 대상 선술집을 30년간 해온 이사마나 씨는 9월 한 달간 발품을 팔아야 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소비세 인상(8→10%)에 맞춰 결제 단말기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지간한 업체 한두 번 방문하면 끝날 것 같은 일인데 한 달 가까운 기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단말기는 구하지도 못한 상태다. 마음에 드는 기계들을 제 시간 내에 납품해줄 수 있는 곳이 없어서다. 10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결제 단말기 수요가 폭증하면서 나타난 일이다.
이사마나 씨는 “결제 단말기 제조 회사에서도 2~3배 이상 주문이 이어지는 상황이라 납품 기일이 늦어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10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 내 곳곳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에서는 소비세 인상으로 인한 소비 침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며 만반의 대책을 강구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오히려 수많은 대책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창 미중 무역 갈등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소비세 인상이다 보니 전망이 불확실한 경기를 꺾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염려도 커지고 있다.
소비세 인상은 지난 2014년 5%에서 8%로 올린 뒤 5년 만에 이뤄지는 일이다. 지난 2014년의 경우엔 3%포인트의 소비세 인상이 이뤄진 직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연간으로도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경제성장률이 전년도 2.0%에서 -0.4%로 곤두박질쳤다.
당시의 마이너스 성장의 역풍으로 일본 정부에선 10% 인상 시점도 2번이나 늦췄다. 또 소비 침체를 막겠다면서 대대적인 대응책도 마련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120% 대책을 준비했다고 강조할 정도다. 실제 소비세 부담 증가 예상 규모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각종 세금 경감이나 포인트 환원 등을 통해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소비세 인상에 따른 세수 증가분 5조7000억엔을 세율경감과 포인트환원 등으로 각각 1조1000억엔, 2조엔가량 돌려주고 또 3조2000억엔가량은 유아교육무상화 등 사회보장 강화로 국민들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
문제는 제도를 너무 열심히 준비하다보니 과도하게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다만 이번엔 판매 상황에 따라 적용 세율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 등 커피점에서 커피를 살 경우 매장 내에서 마시면 세율은 10%가 적용된다. 이를 테이크아웃으로 매장 바깥으로 들고나가면 세율은 8%다. 제품별로 적용 세율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맥주는 10%의 세율이 붙지만 알코올이 없는 맥주는 세율이 예전처럼 8%다. 또 보관용 얼음의 경우엔 세율이 10%, 음료용 얼음을 살 때엔 8%의 세금이 매겨진다.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나 교통카드 등 전자화폐 등을 사용하면 포인트로 돌려주는 제도 등도 생겼다. 동네 슈퍼 등의 중소규모 유통업체에서 5%에 해당하는 금액을 포인트로 돌려주는 식이다.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매장에서는 2%를 포인트로 환원해주며 대형 슈퍼마켓, 백화점과 같은 곳에서는 포인트 환원 등이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제품을 어느 매장에서 사느냐에 따라서 세율이 3~10%까지 4가지로 나뉜다.
가령 동네 슈퍼마켓에서 커피를 사서 이를 신용카드로 결제한 뒤 가게 밖에서 먹으면 적용 세율이 3%다. 10%인 세율이 테이크아웃이다보니 8%로 낮아지고 여기에 소형 매장에서 전자결제를 한 만큼 5%의 포인트 환원을 받기 때문이다. 똑같은 제품을 대형 백화점에서 사서 그 자리에서 마셨을 경우엔 세율은 10%다.
이렇게 세분화되고 복잡해지다보니 결제 단말기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불확실한 부분이 많아서 제대로 대응이 될 단말기를 찾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세율이 바뀌는 것뿐인데 단말기 대란이 벌어졌다며 생산업체나 자영업자들이 하소연을 하는 이유다. 여기엔 소비세 인상이 벌써 2번이나 늦춰지면서 일반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자’며 주문을 미뤘던 영향도 있다.
혼선이 지속되면서 아예 단말기 교체 등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포인트 환급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산업성 등에 신고를 해야 한다. 일본 경산성에서는 대상이 되는 곳이 약 200만 곳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신청은 8월 말까지 51만 곳 정도에 그쳤다. 이미 신청이 많이 밀려있는 데다 경제산업성에서 행정처리를 위해 걸리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10월 제도 시행에 맞춰 적용받을 수 있는 곳은 예상에 비해 훨씬 적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단말기를 구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세금 경감 대상 여부 판단이 쉽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편의점처럼 취급 품목이 많은 경우엔 세금 경감 대상을 일일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또 매장 내에서 먹는지 혹은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가는지 확인도 명확하게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이다. 맥도널드나 KFC 등과 같은 패스트푸드점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것이 현실이다. 하루야 가즈기 세븐일레븐재팬 회장은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명확한 판단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고객들의 자발적인 신고를 믿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꼼수를 부리는 곳도 있다. 포인트 환원의 경우 자본금 5000만엔(약 5억5000만원) 이하의 매장이 대상이다. 이 때문에 일부 유통업체에선 자본금 축소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데이고쿠데이터뱅크 자료를 인용해 1~7월 사이에 자본금을 5000만엔 이하로 조정한 사례가 412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교해 63%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세금 인상으로 인한 가격 상승분을 납품업체에 전가시킬 수 있다는 염려도 나온다. 닛케이는 한 식품업체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대형 유통업체들이 공급업체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