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기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중국 명품 소비에 감지되는 변화... 경기 둔화 우려에도 매년 6% 성장 기대, 2024년 中 명품 소비 200조원 돌파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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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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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07 14:20:36
수정 : 2019.03.07 14:21:10
중국 국경절 황금연휴가 끼어있었던 지난해 10월 첫 주, 지구 반대편에서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멀버리, 버버리,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등 명품 업체들의 주가는 각각 7.1%, 5.7%, 4.9% 급락했다. 국경절 기간 동안 해외로 나간 중국인들의 명품 소비가 줄어 명품 브랜드 업체들이 매출 타격을 입을 것이란 예상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가 국경절 연휴기간 해외에서 명품을 구매한 뒤 귀국하는 중국인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이들 명품 업체의 주가는 10월 둘째 주에도 하락 곡선을 그렸다.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난 작년 연말, 중국 온라인 뉴스 포털 왕이는 글로벌 명품 주얼리 브랜드인 티파니앤코(이하 티파니)의 사례를 들며 “미중 무역전쟁 여파와 중국의 경기 둔화 탓에 중국인들이 해외에 나가 명품 사기를 주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티파니는 지난해 11~12월 ‘연말 특수’를 누리지 못했다. 올해 1월 알레산드로 보그리올로 티파니 최고경영자(CEO)는 “2018년 전 세계 명품 소비가 애초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마이너스 1% 역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작년 겨울 시즌 중국인의 해외 명품 소비가 전년 대비 최대 35%까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되는 가운데 티파니도 이 기간 매출 타격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 현지 시장에 공을 들였던 글로벌 명품 업체들은 지난해 연말 시장에 팽배했던 비관적인 예상과는 달리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프랑스 화장품 업체 로레알은 2007년 이래 최대 매출 실적을 거뒀다. 로레알은 산하에 입생로랑, 메이블린, 랑콤, 케라스타즈, 라로슈포제 등 프리미엄 화장품 브랜드들을 거느리고 있다. 로레알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3.5% 늘어난 269억유로를 기록했다. ‘연말 특수’ 기간이 포함됐던 작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7% 급증한 71억유로를 찍었다. 이는 시장 전망치(6.5%)를 웃돈 매출 성장세였다. 로레알은 “중국 소비자들의 프리미엄 화장품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10년 만에 최대 매출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며 “과거 수년 동안 공들였던 중국 현지 화장품 시장은 이미 북미 지역을 뛰어넘는 매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레알이 중국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일찌감치 중국의 변화를 읽고 중국인의 소비 패턴에 맞게 영업 구조를 현지화했기 때문이다.
로레알이 주목한 점은 중국의 주요 소비계층인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자)와 저우링허우(1990년대 출생자) 등 젊은 계층이 모바일로 화장품 구입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로레알의 전가상거래 분야 매출이 전년 대비 무려 40.6% 급증한 이유는 중국 여성 엄지족 덕분이었다.
작년 10월 주가가 급락하며 시장의 우려를 샀던 LVMH 역시 전망치를 뛰어넘는 실적으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LVMH의 지난해 4분기 매출 성장률은 9.1%(연간 기준)로 시장 예상치인 8.7%를 뛰어넘었다. LVMH는 루이뷔통, 셀린느, 지방시, 펜디 등 패션 브랜드뿐만 아니라 헤네시(코냑), 돔 페리뇽 등 주류 브랜드와 쇼메(보석), 제니스(시계), DFS(면세점) 등 다양한 분야의 최고급 브랜드 60여 개를 보유하고 있는 명품 브랜드 지주회사다. LVMH는 마오타이(고급 백주 브랜드)의 고향인 중국에서 수년째 ‘주류 마케팅’에 힘쓰며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에서 와인과 코냑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부호들을 중심으로 현지 마케팅을 지속적으로 펼친 것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불과 2~3달 전 어두운 논조로 중국 명품 시장을 전망했던 언론들과 컨설팅 기관들은 새로운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다양하게 제시된 분석을 요약하면 해외에 나가 명품을 사들이는 수요는 줄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 국내에서 해외 명품을 구매하는 트렌드가 뚜렷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 나아가 중국인의 명품 소비는 ‘국내’ 명품 시장의 성장과 함께 꾸준히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곁들여져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중국인의 명품 소비액은 2017년 1050억유로를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명품 시장 매출(3270억유로)의 32%에 달하는 수치다. 중국인의 명품 소비액은 매년 6% 이상 증가하면서 오는 2024년에는 1620억유로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이후 지난 10년간 통계 수치를 살펴보면 중국인 명품 소비의 두 가지 뚜렷한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첫째, 최근 10년간 중국인의 명품 소비의 3분의 2는 중국이 아닌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즉 중국으로 수입되거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명품의 소비 비중보다는 직접 해외로 나가 명품을 사들이는 비율이 높았던 것이다. 둘째, 소득 대비 해외여행 경비 지출이 무척 높다는 점이다. ‘2018년 중국 명품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중국인의 해외여행 평균 소비액은 인당 1985달러로 미국(1539달러), 독일(1383달러) 등 선진국보다 많았다. 2017년 중국의 일인당 국민총소득(GNI)이 미국의 14.6%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인의 소득 대비 해외 소비 비중이 높다는 것은 한 눈에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중국인들은 해외여행 경비의 28%를 명품을 비롯한 재화 구매에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주로 해외에서 중국인의 명품 소비가 이뤄졌다면 2018년을 기점으로 중국 ‘국내’에서 명품 구매가 늘어날 시장 변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기업들과 중국 정부가 중국 내 명품 소비 증가를 유도하고 있다. 로레알이나 LVMH처럼 중국 현지 시장을 직접 공략하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중국 토종 기업들이 해외 명품 브랜드들을 인수해 중국 명품 시장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점도 중국 내 명품 구매 수요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중국 섬유기업 산둥루이그룹은 스위스 명품 브랜드 발리를 인수했으며, 중국 푸싱그룹도 같은 해 2월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랑방(Lanvin)의 경영권을 사들였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중국 당국은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8월 화장품 등 수입 명품에 적용하는 관세율을 일제히 낮췄다. 이 같은 공급 부문의 변화는 중국 내 명품 소비 패턴을 서서히 바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대기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2호 (2019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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