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이후 한국 원화의 실질 환율은 유로화에 비해선 큰 변화가 없었으나 달러화나 엔화에 비해선 떨어졌다. 특히 일본 엔화 대비 실질환율이 크게 떨어져 한국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엔화 대비 실질환율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일본의 물가가 지난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낮게 유지된 반면에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향후 경상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환율과 글로벌 자금유출입 전문가로 꼽히는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진단이다.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미국 달러화에 초점을 맞춰 환율을 관리하다보니 일본 엔화의 실질가치가 급격히 절하된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특히 일본 엔화는 앞으로도 추가로 절하될 가능성이 큰데 한국의 정책적 대응이 쉽지 않기 때문에 자칫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엔·달러 디커플링 대응 어려워
“최근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달러화는 테이퍼링 가능성 때문에 상승하고 있는 반면에 엔화는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지속적으로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 개입도 쉽지 않다. 엔화 환율을 관리하려다보면 차익거래 기회가 커지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려 원화를 절하해도 자본유출 가능성이 있다.”
김 교수는 지난 1월 15일 한국CFO협회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 같은 내용으로 변화하는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경제가 직면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는 세계경제 변화의 큰 트렌드는 세계화와 지역화라고 요약했다. 세계화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1948년 1210억달러 수준이던 세계 교역량은 2010년엔 30조2430억달러로 250배가량 늘어났다.
세계경제가 발전하는 가운데 신흥국이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는 저조했던 반면에 중국이나 인도 한국 등 신흥국은 지속적으로 성장해 위상이 커졌다고 했다. 1990년대 초반 선진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대 중반까지 갔으나 2010년엔 48%로 떨어졌고 40%선을 밑돌던 신흥국 비중은 2010년엔 52%까지 늘었다는 것이다. G7체제가 G20체제로 바뀐 것도 이런 세계경제의 역학관계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했다.
이처럼 세계경제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지만 글로벌 자금흐름만큼은 여전히 선진국이 주도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포천500대 기업 가운데 선진국 기업 비율은 2008년 9월 말 77.7%나 됐다. 금융위기로 선진국 기업이 대폭 위축됐을 때인 2009년 6월 말조차 선진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72.1%로 나타났다. 신흥국이 실물부문에서 강세를 보인다지만 금융부문에선 여전히 선진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지역별로 블록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이런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관세동맹이나 FTA 등 지역별 무역협정이 500개가 넘었고 EMU(유럽통화동맹)나 CMIM(치앙마이이니셔티브 다자화), ABMI(아시아 채권시장 발전 방안) 등 지역적 금융통합도 계속 진전되고 있다.
선진국 위기 금융경로로 파급
김 교수는 무역규모 증가와 함께 국제금융 거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선진국 경제위기가 국제무역 경로를 통해 신흥국 실물경제로 파급된다고 보았다. 선진국이 침체되면 세계경제가 둔화되고 교역량이 감소해 신흥국의 수출이 줄어들어 실물경기 침체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엔 선진국 경제위기가 금융 경로를 통해 신흥국으로 파급되고 있다. 선진국의 금융 스트레스가 증가하면 투자자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높아져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흥국의 (선진금융시장에서) 자금 차입 여건이 악화돼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세계화로 글로벌 임밸런스가 심해진 상황이라 앞으로 선진국 위기가 자주 일어나고 이것이 신흥국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달러화를 포함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등 불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신흥국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외환보유고 확대의 필요성을 늘리고 있지만 미국의 경상수지와 재정 적자가 이어지고 부채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외환보유고가 더 이상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글로벌 유동성 공급 체제를 복수화하거나 위기 때 (국제적으로) 적절한 유동성을 긴급히 지원해 위기의 전이를 막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완전한 체제개편까지는 요원하다고 했다.
2013년 상트 페테스브르크 G20 서밋
엔화 추가로 떨어질 전망
그렇다면 환율은 어떻게 될까. 김 교수는 오일쇼크나 외환위기 등 한국경제의 주요 불황은 대부분 해외 요인과 관련돼 있다고 했다. 또 1960년대 이후 외환위기까지 상승세를 이어오던 (달러화 대비) 환율은 이제 오를 수도 있고 내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1990년대 이후 외국인의 국내 투자나 한국의 대외투자는 모두 꾸준히 증가했지만 이 부문에서 한국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자본유입은 대부분 은행의 부채나 주식을 통해 형성됐고자본유출은 주식투자와 직접투자를 통해 이뤄졌다. 한국은 대외 투자의 가장 큰 부분을 수익성이 거의 없는 외환보유에 쏟아 넣고 있는 반면에 외국인은 대부분을 수익성 높은 국내주식에 투자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는 미국이 테이퍼링에 나선 반면 일본은 양적완화를 추가로 단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했다.
“2007년 이후 미국의 본원통화는 4배나 늘었고 일본의 본원통화는 2배 이상 늘었다. 미국의 증가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일본이 양적완화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유로존의 본원통화는 이 기간 50% 정도가 늘었다.”
일본 엔화의 추가 약세를 예상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외국 IB들의 전반적 예상치를 내세워 달러화 대비 엔화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제시했다. 일본이 지속적으로 양적완화를 이어가면 엔화 대비 원고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내 주요 연구소들은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1055원에서 1074원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IB들은 올 연말 엔·달러 환율이 평균 달러 당 109.86엔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경우 120엔 선까지 제시했다. 결국 엔화는 원화에 비해 약세를 보일 것이며 이것이 한국 수출기업의 경쟁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 위기를 차단하기 위한 자본유출입 규제를 지지하는 학자다.
“신용위기가 커지고 국제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외환보유액을 늘려야 했다. 전체적으로 글로벌 자본의 이동은 신흥국에 불리하다. 그래서 자본유출입에 제약을 가하는 것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선진국과의 갈등은 예상해야 한다.”
외환보유액 과신 경계해야
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단기외채의 3배에 달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나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가 많은 게 걱정이라고 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채권투자를 많이 하지는 않았으나 주식투자가 많은데 이 자금을 일시적으로 빼낼 경우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의 디레버리징이 확대되면서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얘기도 많다. 포트폴리오 투자의 위험도 많이 제기됐다. 실제로 그 동안 많은 신흥국들이 이 같은 자금유출 때문에 불안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데 경상수지 흑자 덕에 괜찮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제가 걱정이다. 엔화와 달러화 움직임이 반대로 가기 때문이다. 엔화가 지금보다 더 절하되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잡아먹게 돼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개별 기업들은 당분간 헤징을 강화하는 한편 외채가 있을 경우 금융시장 불안에 대비해 외환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