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경제는 좋은 일만 가득했다.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 정권은 핵심과제로 경제회생을 선택하고 ‘아베노믹스’라는 경제회생책을 추진했다.
2015년 말까지 총 132조엔(약 1400조원)을 쏟아붓는 공격적 양적완화, 올해 초 13조엔 규모의 추경예산을 마련한 재정투입, 규제완화와 세제혜택 등 각종 지원책으로 구성된 기업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이다.
양적완화와 재정투입은 무난히 진행됐다. 덕분에 지난해 9월 말 달러당 75엔까지 올라갔던 엔화값은 현재 100엔 선까지 떨어졌다. 도쿄증시 또한 아베 정권 들어 60% 이상 급등하며 “일단 돈부터 퍼붓고 보자”는 아베 정권에 환호했다.
이렇게 금융시장 호황을 만들자 자산가치 상승으로 돈을 번 부자들이 소비를 시작하면서 소비현장에도 호조가 나타났고 지난해 하반기에는 제조현장으로 효과가 확산됐다.
2011년 이후 2년 연속 7000억엔 이상 순이익 적자를 냈던 파나소닉은 올 회계연도 상반기(4~9월) 1683억엔 흑자로 돌아섰다. 올 회계연도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68% 증가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도요타의 상반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81%와 69%씩 급증했다. 북미시장 매출액은 34%나 늘었다. 회사 측은 전체 순이익 증가분의 80% 이상이 엔저 덕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전방산업 호조와 함께 막대하게 풀린 돈이 국내 건설경기를 끌어올리자 철강 유화 등 소재산업까지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표적인 공급과잉 산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어느새 일본 내 공장들은 풀가동에 들어갔다.
여기에다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되는 경사도 있었다. 향후 일본 경제에 장기적인 호재이다. 후지산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일도 일본에서는 큰 뉴스로 다뤄졌다. 지난해 일본에 들어온 외국관광객은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힘을 얻은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는 현재보다 2배 많은 2000만명 유치를 목표로 내걸었다. 그 과정에서 자국보다 더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한국을 추월하는 것이 1차 목표이다.
지난해 이처럼 기분 좋은 소식만 가득했던 일본 경제가 올해는 중요한 고비를 맞는다.
사실 주가급등, 제조업 경기회복 등이 일본경제와 산업의 진정한 경쟁력 향상 때문인지, 아니면 엔화 약세라는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는 판가름하기 어렵다. 단순한 ‘모르핀 효과’였다면 일본경제는 다시 고꾸라질 수밖에 없다. 2014년이 일본경제의 진정한 경쟁력을 테스트 받는 시기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주목해야할 시점은 4월이다. 현행 5%인 소비세가 8%로 인상된다. 소비세 인상 후 경기가 급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행은 2013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2.7%로 예상하면서도 2014년 전망치는 1.5%로 크게 낮췄다. 민간연구소들은 0%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2013년 경기호조가 소비세 인상을 앞둔 선취수요 덕분이었다면 2014년 경기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없다. 정책적 효과로 인한 일시적 소비증가일 뿐 민간부문의 전반적인 소득 향상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 최악상황인 일본의 막대한 재정부채 문제도 올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일본 정부는 4월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동시에 5조엔 규모의 재정지출로 경기억제를 만회할 계획이다. 쉽게 말해 재정이 빈약하다며 세금을 올리면서 증세수입분의 상당분을 경기회복을 위해 추가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기대만큼 재정건전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2014년 10월에는 2015년 4월부터 소비세를 10%로 또 한 단계 인상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8%까지 올리면서 거액의 재정지출을 ‘정치적으로’ 내세웠던 것이 나쁜 선례가 되는 것이다. 또 다시 거액의 재정지출이 단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소비세 인상에 따른 재정건전화 효과를 거의 거두지 못하고 경기만 나빠지는 꼴이 되고 만다.
엔화 약세로 인해 무역수지는 물론 경상수지마저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현실도 재정악화 문제와 연결될 수 있다. 최근 일본 재무성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상수지가 역대 최대 규모인 5928억엔(약 6조원)의 적자를 냈다. 2개월 연속 적자이며 당초 시장에서 적자 전망치인 3689억엔을 크게 상회하는 규모이다.
이번 적자는 엔약세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무역수지는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17.6% 증가했지만 수입이 22.1%나 늘어난 6조8859억엔을 기록하면서 1조2543억엔의 적자를 냈다. 엔저로 연료수입액이 급증한 탓이다.
여기에 그동안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한 달에 1조엔 이상 나오던 소득수지 흑자로 보충해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에는 9002억엔에 그쳤다.
올해 경상수지가 곧바로 흑자로 돌아설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이미 일본기업들은 엔고시절에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해외로 생산거점을 대거 옮겼다. 엔약세가 이뤄진다고 해도 과거보다 수출증대 효과가 작을 수밖에 없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수록 일본경제에는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우선 수입물량을 위한 환전수요 때문에라도 경상수지 적자는 엔약세를 부추긴다. 경상수지와 엔약세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 국면이다.
내수에서는 물가와 금리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국가 전체적으로 ‘돈을 버는 힘’이 떨어졌다는 의미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외부에서 빌려와서 사용해야 한다. 그 가능성이 높아진다면 당연히 조달금리가 올라간다. 금리상승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일본경제에서 금리상승은 ‘독’과 마찬가지이다. 이미 일본 정부의 재정부채는 1000조엔을 넘어서서 연간 GDP의 230%를 넘어섰다. 선진국 최악의 재정부채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간다면 일본의 재정부채 문제는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본 금융당국이 엔저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달러당 엔화가치가 10% 상승하면 3년 후 수출에는 2% 증가효과, 국내총생산(GDP)에는 0.2%의 증가효과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즈호경제연구소도 엔화가치가 100엔에서 110엔으로 떨어지면 GDP 0.3%, 120엔까지 가면 0.4%의 증가효과가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특히 올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국내소비가 급격히 냉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당분간 일본의 양적완화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복잡한 변수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아베 정부는 경제의 선순환구도를 이끌어내기로 했다.
양적완화를 위해 대규모로 풀린 돈들이 소비와 생산현장을 거쳐 민간소득 증대로 연결되는 고리를 찾는 것이다. 바로 기업들의 임금인상이다. 이것만 제대로 해결돼도 민간소득 증대, 소비확충에 이어 다시 기업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경기선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 재정적자 문제도 기업들의 이익증가가 세수확대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풀릴 수 있다.
대기업은 대체로 임금인상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으나 신중한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주요 기업들이 경기 회복을 확신하지 못해 기본금 인상은 주저하고 보너스나 수당 등 소극적인 임금 인상에 그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