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의 도시수출 전략은 한국이나 중국의 스피드와 가격경쟁력에 밀린 일본이 장기적 관점에서 고기술과 안전성을 무기로 만회하려는 전략입니다.”
손일선 도쿄대 의학정책학 특별연구원은 최근 일본 정부와 민간업계의 합작으로 전개되고 있는 도시수출을 단순히 제품수출의 차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쿄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계명대 교수 를 거쳐 현재 도쿄대 특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손 박사는 일본경영사 전문가다.
도시수출이라는 분야와 용어부터 생소하다
도시인프라 수출은 기존의 건물, 도로, 문화를 유지하면서 좀 더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드는 마치즈쿠리 등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시수출은 하드웨어와 소프트 면을 포함해 미래의 도시 생활인의 이미지를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지속가능토록 유지관리, 인재육성까지를 시스템화 하는 작업이다. 도시계획부터 상업, 주거지를 건설하고 이에 필요한 교통망, 전력, 상하수도, 교육, 병원 등 기본 인프라를 구축한다. 여기에 상업시설과 문화까지 접목함으로써 살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다.
일본의 도시수출 전략을 강화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은 도시수출을 21세기 국가 신성장 전략의 한 분야로 채택했다. 이는 일본이 제품이나 요소기술에서 세계 톱 수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주실적이 부진하다는 위기에서 출발한다. 단순한 제품판매보다는 유지관리, 인재육성 등의 인프라 서비스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도시인프라 패키지 수출이야말로 일본기업에게 장기적이면서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도 중요하다. 국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역별로는 동경과 수도권 중심으로 인구가 약간 증가하는 도시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아시아 등의 신흥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어 도시인프라 정비에 대한 수요는 계속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선진국에서도 친환경적 인프라와 기존 설비 대체 수요로 도시인프라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시수출이라면 다양한 분야의 산업이 강해야 가능할 텐데
일본은 도시수출에서 스피드와 가격경쟁력을 갖춘 한국, 중국에 밀려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30년 정도의 장기에 걸친 보수유지 비용까지 포함한 가격인 ‘토털 코스트(Life cycle cost)’ 개념을 도입했다. 한마디로 ‘30년을 내다보고 비용을 비교해보라’는 것이다. 당장 싼값에 빨리 도입하는 것과 지금은 다소 비싸지만 장기간에 걸쳐 내구성과 안전성을 유지하는 제품 중 어떤 것을 택하겠냐는 것이 일본의 생각이다. 그동안 납기준수, 안전중시, 세부적인 배려, 철저한 애프터서비스 등에서 높은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장기 개념의 인프라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절대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일본은 부품소재 분야에서 탄탄한 중소기업과 고도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고효율 화력발전 등의 저탄소기술, 원자력발전에서는 뛰어난 자금력과 건설 능력, 고속전철에서는 하드웨어나 운행관리 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잦은 지진, 자연재해 등으로 기술과 노하우도 축적해왔다. 이런 경쟁력을 바탕으로 공급한 후 30년간 운영과정에서 이익을 거두고 다시 재개발이 시도될 때는 그동안의 높은 평가를 토대로 재수주하는 식으로 세계 인프라 산업을 선점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도시수출에 관한 사업영역이 점차 넓어지고 대상지역도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선진국까지 광범위해지고 있어 도시수출에 관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정립이 필요하다.
중동의 토목건축이 중심일 때는 LH가 발주 총괄 주체로 정부와 민간의 가교역할을 했으나 패키지 수출로 토목건축 외 물자원, 전력, 병원, 농업, 철도 등의 광범위한 인프라 수출을 지향하게 될 때 과연 LH가 발주자로서 적합한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일본이 최근 발표한 도시수출 전략에는 한국 중국과의 저가격 경쟁을 회피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더 고도의 기술개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 중견·중소가 취약한 우리나라로서는 기초 연구 개발과 첨단기술 연구를 통해 일본과의 기술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최첨단 기술을 가진 대기업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중견·중소기업 부문의 기술향상을 위해서는 중간 조직인 각 업종별 협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대기업 위주의 도시수출에서 참여하는 하청 중견·중소기업의 품질관리가 절대적인 관건이 된다. 발주자와 참여기업들의 작업을 객관적이면서 장기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돼야 할 것이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일본 정부의 도시수출 관련 보고서를 보면 ‘해당 국가의 풍토와 문화를 존중하고 니즈에 알맞은’이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철저히 현지화를 하겠다는 의지다.
우리도 현지화를 주도할 지역전문가 양성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인재육성은 영어권과 선진국 중심이었다. 각국의 니즈를 찾아내고 도시수출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지역전문가가 필요하다. 언어, 역사, 문화, 종교 특히 이슬람 등 지역 이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 이미 한국에 와 있는 유학생, 다문화주민을 미래 인재로 육성시킬 방안도 필요하다.
일본은 도시수출 분야의 국제표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은 도시수출 분야에서 국내 제도규격의 세계로의 전개, 국제표준화에 힘쓰는 한편 국내의 제도 기준도 국제 표준에 부합시키는 양방향의 표준화를 도모하고 있다.
2011년 일본은 히타치 등을 중심으로 스마트 도시인프라의 평가지표를 검토하는 ISO TC 268/SC1 분과위원회를 제안해 국제간사와 국제의장을 맡고 있다. 도시인프라의 스마트화에 관련된 사항은 모두 이 위원회에서 다룬다. 일본의 국제표준화의 적극 참여는 일본기업이 해외에 진출함에 있어 일본의 규격, 제도 기준이 현지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리하다. 한국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기 전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일본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할 방안은 없는가
양국의 이익과 리스크 분산을 위해서는 일본기업과의 컨소시엄 구성에 의한 공동 응찰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자금조달이나 소재 부품 등 요소기술 면에서 일본은 절대적인 우위를 갖고 있다. 반면 우리는 안건 발굴, 교섭력, 스피드, 가격경쟁력, 경험과 실적 등에서 우위를 갖고 있어 서로 장점을 결합할 수 있다. 한중일 3국간의 FTA가 진행되는 가운데 국제표준작업 등에서도 적극적인 협력체계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