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6일 미국은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과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놓고 4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른다. 대선이 두 달 남짓 남았으니 선거가 화두일 법도 한데 지금 미국의 핵심 이슈는 경제다.
지지율 면에선 오바마 대통령이 현직의 이점을 안고 롬니 후보를 소폭 앞서간다고 하지만 갤럽조사에 따르면 오바마의 대통령직 지지율은 8월 9일 현재 43%에 머물고 있다. 지지하지 않는 비율이 50%나 되기 때문에 경제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경우 여론은 급격히 돌아설 수도 있다. 지난 1992년 빌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로 긴축기조를 이어가던 현직 조지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는데 이번엔 자칫 오바마가 비슷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오바마 대통령은 현직의 이점을 살려 경제를 마음대로 풀어갈 수도 없는 형편이다. 실업률이 줄어들지 않고 제조업 활동도 정체되고 있지만 경기를 살리기 위해 풀 돈이 없다. 재정을 긴축하다 보니 국방비마저 줄어 현역군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경제는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오바마로선 버냉키 연준(FRB) 의장이 도와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겠지만 버냉키는 아직 묵묵부답이다. 지난 8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버냉키는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시장이 그렇게 고대하는 3차 양적완화(QE3)에 나설지에 대해선 암시조차 하지 않았다.
버냉키가 돌부처처럼 버티고 있는 것은 숫자로 나타난 미국 경제 지표들이 판단이 어렵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 미국의 GDP 성장률은 1.5%로 시장의 기대보다 양호하게 나왔다. 물론 직전 분기보다는 다소 낮아진 것이다. 반면 수송수단을 제외한 7월 내구재 주문은 1.1% 감소했고 공장주문도 0.6% 정도 성장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0.5%가 줄었다. 2분기 실업률은 8.3%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BOA메릴린치는 “미국의 고용 지표가 연준으로 하여금 추가 완화정책을 쓰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그렇다고 쓰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하기에도 충분하지 않게 나왔다”고 평가했다. 기업활동을 나타내는 ISM 제조업 지수는 50 미만으로 나와 기업들의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보여줬으나 대조적으로 고용은 16만3000명이 늘어나 10만명 정도 늘어날 것이란 일반의 예상보다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릴린치는 특히 서비스 부문이 지지부진해 올해보다 내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GDP는 올해 1.9%, 내년엔 1.0% 정도 성장할 것이며 이에 따라 내년에 연준 기준금리가 0%까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란 게 메릴린치의 예상이다.
그러나 앞이야 어찌됐던 현재 경제가 조금이나마 성장하고 있어 시장에선 재정위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하고 있는 유럽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은 것 같다고 평가하는 듯하다. 미국의 달러화가 여전히 안전자산(?) 대접을 받고 있는 게 그 증거다. 그렇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잣집 사정도 그리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최근 미국 기업들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말 기업자금전문가협회(AFP)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은 지난 2분기에 38%가 전분기보다 보유자금을 늘렸으며 40%의 기업이 전년 동기에 비해 보유자금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 2006년까지만 해도 23%만이 여유자금을 은행에 넣어두고 있다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선 50% 이상이 여유자금을 은행에 넣어두고 있다고 응답했다.
여유자금이 있으면 생산적인 곳에 투자하거나 주주에게 배당하는 미국기업들의 일반적인 행태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 자금 모으는 이유는
미국 기업들이 이처럼 자금 확보에 나설 뿐 아니라 모은 자금으로 수익을 추구하기보다 유동성이 높은 은행예금에 넣어두고 있다는 것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이와 관련해 미국 은행들이 회사채 거래를 기피하면서 8조달러에 달하는 미국 회사채 시장이 유동성 고갈 위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채권시장의 유동성 고갈 상태가 진전될 경우 가뜩이나 정체상태에 있는 미국경제의 회복이 더욱 둔화될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성장까지 위축시킬 수 있어 주목된다.
미국 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은 글로벌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시장의 경색 국면이 나타날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 대출을 규제하는 새로운 제도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기업들을 긴장하게 하는 요인이다.
대표적으로 바젤위원회는 은행들의 자기자본 기준을 강화하는 바젤3를 공표했고 미국 내에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은행의 파생상품 투자를 제한하는 볼커 룰(Volcker Rule)을 적용할 예정이어서 은행들은 더욱 많은 자기자본을 확충하거나 대출을 축소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업자금시장은 추가로 위축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급변하면서 미국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선 회사채 거래를 기피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 미국 회사채 시장은 8조달러에 달하지만 하루 유통물량은 180억달러에 불과하다. 10조달러 규모의 미국 국채가 하루 평균 5320억달러나 거래되는 것과 비할 때 시장의 역동성이 엄청나게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기관들의 참여 저조로 회사채의 유동성이 급격히 떨어질수록 기관투자가들의 회사채 선호도는 더 떨어지게 되고 이 때문에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팍팍해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 정도로 낮게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 기업들의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기관들 역시 외부 여건 악화에 대비해 몸집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BOA메릴린치는 최근 미국을 제외한 해외 웰스매니저 사업부문을 스위스의 줄리어스 바에르에 매각했다. 웰스매니지먼트 부문에 큰 강점을 갖고 있던 이 은행이 이 부문을 떼어낸 것은 은행의 주력인 상업은행 부문을 강화하고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