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재단이라는 곳이 있다.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운동을 지휘하기 위해 2010년 6월 만들어진 기부단체다. 재단 회장이 따로 있긴 하지만 사실상 이 운동을 주도하는 인물은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이다.
이 재단에 끼고 싶다고 아무나 낄 수는 없다. 일단 재산이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2000억원이 있어야 한다. 소위 '포브스' 선정 미국 400대 부자에 들어야 한다. 정확히 보면 403명이다. 이들 모두가 재산의 절반을 내놓는다면 6000억 달러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포브스' 선정 403명 중 몇 명이나 재산의 반을 내놓겠다고 할까. 무려 69명이다. 전체의 15%에 해당된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모든 재산을 아무도 몰래 꽁꽁 묶어 내 자식에게만 물려주려고 온갖 눈치를 보는 우리나라 부자들이 보면 얼핏 이해가 안갈 수도 있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 운동을 전개하던 버핏이 미국 조세제도에 화를 냈다. 나라의 빚이 너무 많아 부자들에게만 세금을 조금 더 올려 받자는 오바마 정부의 제안을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허구한 날 말싸움을 벌이자 그가 나섰다.
한마디로 부자들이 세금을 너무 적게 낸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내는 세금은 내 소득의 17.4%에 불과한 반면 우리 사무실 직원들은 소득의 33~41%에 이르는 세금을 냈다”고 말했다. 돈으로 돈 버는 슈퍼 부자들의 세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반면 노동을 통해 소득을 올리는 사람의 세부담은 자신보다 더 크다는 것. 버핏은 또 “미국 지도자들이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으나 나와 슈퍼 부자 친구들은 분담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세금을 더 내도록 세법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
실제 버핏이 공개한 자신의 2010년 세금내역서에 따르면 소득세로 692만3494달러(약 80억원)를 냈다. 이는 과세대상 소득 3981만 달러(약 460억원)의 17.4%에 불과했다. 과세소득을 포함한 지난해 그의 총수입은 무려 6285만5038달러(약 729억원)였다. 세금을 더 걷을 궁리만 하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버핏은 천군만마 같은 존재다. 그래서 연소득 100만 달러(약 11억원)가 넘는 부자들의 세금부담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소위 ‘버핏세’다. 미국 정부는 버핏세를 만들더라도 이에 해당되는 사람은 45만 명 미만이라고 밝혔다. 2010년 등록된 납세자 1억4400만명의 0.3%에 불과하다.
버핏세는 의외로 반향이 컸다. 독일의 ‘부자 증세를 위한 부유층 모임’은 아예 “2년간 5%의 부유세를 내면 1000억 유로(약 160조원)의 추가 조세 수입을 거둘 수 있다”며 세금을 올려 달라고 떼를 썼다. 프랑스에서는 16명의 억만장자들이 자신들에게도 버핏세를 부과시켜 달라는 청원서까지 냈다. 그러나 목소리를 높이는 부자들이 있는가 하면 말없이 침묵하는 다수의 부자들이 있다. 이들의 속마음은 분명 다를 것이다. 남보다 더 많은 땀과 노력으로 돈을 벌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내라면 억울할 수도 있다. 설령 세금을 더 내더라도 정부가 이를 현명하게 지출할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경제 이론은 부자들에 대한 증세는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되레 부정적이라 한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