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빠져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지난 6월13일 그리스 신용등급을 종전 B에서 CCC로 무려 3단계나 전격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 중 CCC는 전 세계 국가들 중 가장 낮은 등급이다. 이는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그리스가 사실상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재정위기 상황이 악화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유럽재정안정기구(EFSF)에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지난 2010년 5월2일 합의된 1100억 유로 구제금융 중 2011년 5월 현재 그리스가 IMF와 EU회원국에게 지원받은 구제금융은 총 530억 유로에 달한다. 남은 구제금융은 2011년 250억 유로, 2012년 240억 유로, 2013년 80억 유로로 총 570억 유로가 지원될 계획이다. 그리스는 1100억 유로 이외에 추가적인 구제금융 지원과 국채 매입을 요구하는 한편 재정적자 목표치도 완화해 줄 것을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스 재정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배경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이어서 단기간 내에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우선 그리스 경제의 회복 미흡으로 재정적자가 증가하는 ‘부채증가-저성장’의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점이다. 그리스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과 높은 경상수지 적자 그리고 고실업률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스의 GDP 성장률은 2010년 2분기 이후 전년 동기 대비 -5%대의 저조한 경제 성장이 지속돼 연간 -4.5%를 기록했다. 2011년 들어서도 성장률이 1분기 0.8%에 머물렀으며 연간으로는 여전히 -3.0%의 성장 감소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상수지는 2010년 240억6000유로, 2011년 1~2월까지 47억4000유로 적자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2010년 3분기 13%, 4분기 14.1%로 만성적인 고실업 상태에 빠져있다. 극심한 경기 부진 속에서 이자 지급 규모는 확대돼 재정적자는 계속 커지고 있다. 2010년 재정적자는 GDP 대비 -10.5%로 목표치 -9.4%보다 높았다. 2011년 1~4월 재정적자도 72억3000유로로 전년 동기간 63억7000유로보다 13.5% 증가해 재정적자 목표치인 69억2000유로를 초과했다.
둘째, 그리스 정부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부채의 단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점이다. 그리스 정부부채는 2010년 말 현재 3286억 유로로 전년대비 10%의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특히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신규 조달된 정부부채의 평균 만기는 각각 5.66년, 3.68년, 2.68년으로 2008년의 10.96년에 비해 갈수록 단축되고 있다. 더욱이 정부부채 중 61.5%를 외국에서 보유하고 있어 상환과 이자 지급 부담이 매우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그리스 총 정부부채 중 상환과 재정적자로 인해 2011년 조달해야 할 자금은 2011년 GDP대비 24%인 744억 달러, 2012년에도 26%인 815억 달러에 이른다.
셋째, 긴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와 정치권 분열로 자구 노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점이다.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임금과 연금 삭감 등 긴축조치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공공노조연맹과 노동자총연맹 주도로 수차례 발생했다. 거기다 정치권 분열도 계속돼 자구 노력이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유로존 붕괴될 수도
그리스 부도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이것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스 외에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이미 구제금융을 신청한 상태이며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가 국가 채무를 갚지 못하는 부도 사태가 현실화된다면 그리스에 투자했던 유럽 각국 금융 기관이 타격을 받으면서 유럽의 금융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는 유럽발 세계 금융위기로까지 번져나갈 위험도 크다. 최악의 경우 유로존이 붕괴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 상황에서 그리스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한계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어 앞으로 유럽 경제는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구제 금융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이다. IMF와 유럽재정안정기구(EFSF) 자금으로 추가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1차 구제금융의 상환기간도 3년에서 7.5년으로 연장해 주는 방안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그리스 부채위기를 진정시키고 유로존으로 경제위기가 확대되는 것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하지만 구제금융이 그리스 부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독일 등 주요 자금지원 국가들의 반대 여론이 높은 점도 문제다.
둘째, 채무재조정(Sovereign Debt Restructuring Mechanis m)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로 회원국 그리고 해외 금융기관이 손실을 감수하며 채무를 탕감해주고 국채 만기도 연장해 주는 방안이다. 그리스 국채 발행 잔액 중 2010년 2분기 현재 유로존 보유 비중은 54%, 그 중 ECB가 14%, 프랑스 14%, 독일이 9%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영국 <파이낸셜타임>지에 따르면 서유럽권 은행들이 그리스에 대출한 규모는 약 2370억 유로로 추정된다. 국가별로는 프랑스 은행권이 980억 유로, 독일이 720억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안은 가장 실질적인 해결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로존 국가와 ECB 등의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게 시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도덕적 해이도 문제다. 경제와 재정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사회 갈등이 증폭되면 그리스 경제는 장기간 침체 국면에서 헤어나기 어려워진다. 또한 그리스의 채무를 재조정해주면 뒤이어 아일랜드, 포르투갈도 채무재조정을 신청하는 도덕적 해이의 만연을 예상할 수 있다.
셋째,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하고 디폴트를 선언한 후 자국 화폐인 드라크마(Drachma)를 재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가 금융정책의 주도권을 확보해 환율 평가절하와 이자율 조절 등을 실시할 수 있다. 또한 수출과 관광산업을 활성화해 경기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유로존 탈퇴 후 드라크마 재도입을 통한 평가절하로 수출경쟁력을 높일 순 있으나 제조업 기반이 약한 그리스로선 긍정적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평가절하는 그리스 국가부채 규모를 오히려 증대시킬 수도 있다. ECB와 주요국의 지원이 중단돼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도 크다. 특히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유로존 와해라는 또 다른 위기감과 불안 요인을 낳게 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상의 방안들을 검토해 볼 때 일단 근본적인 대책은 아닐지라도 유럽 국가들의 선택은 추가 구제금융 실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그리스 채무의 재조정 논의도 지속될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유로존 붕괴를 원치 않고 재정위기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려 이를 실현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유로존 경제가 와해되진 않더라도 불안정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유럽 경제 불안에 대처하는 한국의 대응책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 얼굴을 광대로 풍자한 그림이 긴축재정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는 수도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올가미에 매달려 있다.
유로 경제권의 불안정성은 국내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준다. 유럽 경기 침체로 인한 대(對)유럽 수출 감소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에 따른 해외 투자자금의 급격한 유출로 국내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큰 것이다.
한국의 대(對)유럽 수출 비중은 2010년 말 기준 전체 수출의 15% 수준이다. 국내 주식과 채권시장의 유럽계 자금 비중은 2010년 말 기준 23~33%에 달한다. 유럽 경제 불안에 대처하기 위한 사전적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것이다.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에 대한 경제 금융시장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국내 경제에 대한 위협 요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기민하게 마련해야 한다. 특히 유로존 위기 고조는 유로화 가치 하락과 신흥국의 신용프리미엄(CDS) 급등으로 연결될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음은 국내 수출이 위축되지 않도록 고성장 지역인 브라질을 비롯한 중남미 지역, 폴란드와 동유럽 국가 등 수출 지역 다변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이에 더해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변동을 조정해 국내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주요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왑 체결, 적절한 외환보유고 관리, 투기적 자본에 대한 거시건전성 부담금 등을 통한 단기유동자금 관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로 경제권의 사례를 볼 때 재정 건전성 악화는 단기간 내에 해소하기 어렵다. 사회 갈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아 국내 재정의 건전성을 개선하고 유지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