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공항이 인도 GMR과 협력해 건설한 델리 신공항. / 현대자동차의 인도법인 현지 생산 해외 수출 대수는 누적 100만대를 넘어섰다. 100만 번째 수출 차인 i20가 기념 깃발을 통과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낯선 인도에 처음 가도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여기저기 보이는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광고판과 대리점, 길거리 어디서든 마주치는 현대자동차 때문이다. 이들 한국 대기업 3사는 인도에서 가장 성공한 외국 기업의 사례로 손꼽힌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인도 가전시장 1위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스즈키에 비해 15년 정도 후발주자인 현대자동차는 승용차 부문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의 경우 수출할 공산품이 별로 없는 인도에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모범 사례를 보이며 인도 최대의 수출 기업 중 하나로 부상했다.
여기에다 한국이 인도와 2009년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CEPA(포괄적경제동반자 협정)를 체결하고 2010년 1월1일부로 발효돼 한국 기업들이 인도에서 계속해 선점효과를 누릴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수출과 FDI(외국인직접투자) 점유율을 보면 우리 기업들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은 2009년 인도의 11위 교역 대상국이었고, FDI에서는 16위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중국(홍콩 포함)은 551억 달러의 1위 교역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교역에서 7위이고 FDI는 2위다. 일본의 경우 교역 규모에서는 한국보다 낮은 14위지만 FDI에서는 7위다.
인도 시장은 어느 사이 부쩍 커버린 현지 기업들과 거대한 잠재력을 확인하고 물밀듯이 들어오는 일본 기업들, 나아가 ASEAN과 중국 기업들까지 몰려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 인도 시장은 한국 대기업들의 뒷마당이 아니다. 과거 성공에 안주했다가는 자칫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수익이 급감해 경쟁력이 뒤쳐질 수 있다.
눈에 띄는 중국 기업들의 인도 진출
2010년 10월말 인도 경제신문들은 일제히 상하이 일렉트릭(Shanghai Electric Corporation)이 100억 달러 규모의 발전용 장비를 릴라이언스 파워(Reliance Power)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내용을 1면 기사로 보도했다. 이는 인도와 중국 간 최대 규모의 계약이었으며 발전 분야 내에서도 최대 규모였다. 그런 엄청난 금액의 장비를 중국 기업에 발주했다는 비난도 있었지만 아닐 암바니 회장은 “인도 발전 장비업체들은 2015년까지 수주가 100% 차 있는 상황이다. 또한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복잡성을 고려할 때 글로벌 소싱이 유일한 해결책이다”며 자신 있게 되받아쳤다. 릴라이언스 파워는 660MW 규모의 42기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첸나이가 위치한 타밀나두주 부총리 일행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프라와 자동차 부문의 중국 기업들이 대거 인도 투자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중국의 통신네트워크 장비 대기업인 화웨이(Huawei)는 첸나이에 5억 달러 규모의 통신 장비를 제조하는 공장 건설을 약속했다. 화웨이는 1998년 방갈로르에 R&D 센터를 설립한 이래 약 2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인도 유수 통신 기업들에게 장비를 공급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2010년 12월 인도를 방문할 때 100개 기업으로부터 250명이라는 사상 최대의 무역사절단을 대동한 바 있다. 또한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인도와 FTA를 검토해 오고 있으며 현재까지 여섯 차례 공동연구 그룹 회의를 가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중국 기업들의 인도 진출이 무섭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오랜 관계를 맺어 왔는데 최근 들어 지리적인 인접성, 문화 및 인력 교류(인도인 약 300만명 거주)와 함께 경제적으로도 협력 관계가 강화되고 있다.
인도는 2009년 아세안과 상품 교역에 대해 FTA를 체결하고 2010년 1월부로 발효했다.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태국과 2004년 조기 관세 인하를 단행했으며 싱가포르와는 2006년 CECA(포괄적경제협력협정)를 체결했다. 인도인이 240만명 거주하는 말레이시아의 경우는 2010년 10월 말 CECA를 체결했고, 2011년 7월 발효한다는 방침이다.
싱가포르는 인도의 1위 투자국(조세회피국인 모리셔스 제외)이다. CECA 체결 이후 직접투자가 급증했는데 정보통신(비중 39%), 제조업(22%), 금융(10%), 도소매(7%), 수송보관(5%)에 집중되고 있다. 싱가포르 DBS은행은 적극적으로 인도 시장을 공략하여 10개 지점을 개설했다.
말레이시아는 2000년 이후 3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이외에 약 45억 달러(1991~2008년)가 모리셔스로 우회해 인도에 투자된 것으로 추정된다. 말레이시아 기업들은 주로 통신, 은행, 병원에 투자하고 있다. 여기에 건설기업들이 인프라와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를 적극 수주하고 있다. 현재까지 23억4000만 달러 규모의 52개 프로젝트를 완료했고, 35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공항은 인도 GMR과 협력해 하이데라바드공항과 델리 신공항을 건설한 바 있다.
가장 경계의 대상은 역시 일본 기업들이다. 인도 시장의 구매력이 증대하고 타깃으로 할 만한 고부가가치 제품 소비층이 부상함에 따라 2007년부터 공격적으로 인도에 투자를 하고 있다. 인도 진출 기업의 거점 수가 2008년 1월 555개에서 2010년 10월 1236개로 배증했다. 투자액도 2005년 2660만 달러에서 2009년 36억64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일본은행 자료).
가장 경계할 대상은 일본 기업들
세계 2위 에어컨 업체인 일본 다이킨은 보급형 제품으로 인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여기에 2010년 12월 초 발표된 일본무역협회(JETRO) 조사에서 일본 기업들은 10년 장기사업 전개 유망 국가로 인도를 1위로 꼽았다. 중기사업 전개 전망에서는 인도에서 사업을 강화, 확대하겠다는 비율이 87.8%로 현황유지(11.8%), 축소 및 철수(0.4%)에 비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이는 현지 시장의 향후 성장성이 매우 높고 노동력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들의 인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2010년 9월 일본 정부가 인도와 경제파트너협정(EPA)을 체결했고 2011년 중 발효를 예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공적개발원조(ODA)에 도움을 받던 건설기업 이외에 제조기업들도 정부 정책의 혜택을 받아 인도 진출을 더욱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인도 진출 업종인 자동차기업들의 투자에 가속도가 붙었다.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스즈키가 1위를 수성하기 위해 공장 능력을 연산 170만대로 배증하는 투자를 하고 있다. 아직까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혼다, 도요타도 최근 소형차 투입을 결정했다. 인도·태국간 FTA를 활용해 인도를 소형차 수출 전진기지로 삼을 방침인 도요타는 2010년 소형차 에티오스 투입을 결정했고, 생산능력을 8만대에서 20만대로 늘릴 계획이다. 혼다 역시 1100cc급 소형차를 출시해 10만대 판매를 목표로 세웠다. 인도 진출이 늦은 르노-닛산은 첸나이에 20만대 규모의 공장을 건설했으며 소형차 생산라인을 영국으로부터 이전해 와 인도 내수와 유럽 수출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가전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은 초창기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무섭게 재공략에 나서고 있다. 세계 2위 에어컨 업체인 다이킨은 라자스탄주 일본 전용 공단에 4500만 달러를 투자해 2만대의 시스템 에어컨 등을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했다. 또한 저렴한 부품 소싱 등을 통해 가격을 인하하고 보급형 제품도 출시했다. 파나소닉은 2009년 말에 산요를 인수한 후 산요 브랜드를 저가시장 주력용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처럼 전자업계는 한국 및 인도 업체들과 경쟁하기 위해 주로 중저가의 대중 모델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일본 건설업계는 주로 인프라 프로젝트를 수주해 왔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이 프로젝트 건설에 참여하고 자국산 장비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ODA 자금(2009년 23억 달러)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델리·뭄바이간 화물 전용 철도와 거대한 산업벨트를 건설하는 DMIC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개시될 것으로 보여 가지마, 다이세이, 시미즈 등 일본 건설업체들의 활동이 확대될 전망이다.
인도 자동차 시장 점유율 1위인 스즈키의 전략모델 ‘마루티 젠’
한국 기업들의 장기적 전략
인도인들은 한국을 기술력이 높은 국가로 인식은 하지만 일본이나 서구 국가들에 비해서는 낮게 인식한다. 또한 감성적으로 한국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인도인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선진국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과거 현대자동차의 소형차인 상트로를 구매했지만 세컨드 차로는 도요타나 혼다, 나아가 BMW나 벤츠 자동차를 사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계 대기업은 앞으로 시장과 고객 변화에 보다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보다 현지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인도 정부의 각종 정책 변화나 외국 경쟁사들의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나아가 리스크 회피 성향이 높은 일본 기업들이 대규모로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기업의 장점인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실행력을 앞세워 과감히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들은 인도에 대한 투자 환경을 들어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경쟁우위 요소를 보유한 중소기업이라면 대기업 3사의 납품업체가 아니라도 인도에서 사업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로 총집합하고 있어 상관행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로컬 기업들과 굳이 사업 관계를 맺을 필요 없이 외국 기업들과 사업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기업들도 이제는 인도를 생산기지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활용방안을 모색할 때가 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제조기지보다 행정 및 사무비용을 줄이기 위해 백오피스 기능을 인도로 이전했으며 인도의 저렴하고 훌륭한 인재들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