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주식과 부동산 시장 부양에 총력을 쏟고 있다. 최근 5년래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주식 시장과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든 부동산 시장을 살려 지난해부터 둔화하고 있는 소비를 되살린다는 구상이다.
중국 본토와 홍콩 주식 시장은 최근 1년 새 10% 이상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선전 증시에 상장돼 있는 대형주로 구성된 CSI300은 지난해 2월 8일 4072(종가 기준)에서 올해 2월 8일 3364로 17% 이상 급락했다. 2019년 초 이후 최저 수준이다. 같은 기간 상하이종합지수는 3232에서 2865로 11%, 선전종합지수는 2141에서 1577로 26%, 홍콩항셍종합지수는 2만1283에서 1만5879로 25% 떨어졌다.
외국인들의 증시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해외 뮤추얼펀드와 헤지펀드의 중국 본토 주식 보유 규모가 1조달러(약 1300조원)대라며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이들 펀드가 보유한 전체 주식의 6~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2021년 이 비중이 15%였던 점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다. 그러면서 골드만삭스는 연내 중국 본토 주식 시장에서 1700억달러(약 227조원) 규모의 자금이 이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본토와 홍콩 주식 시장이 하락을 거듭하자 중국 개인투자자인 ‘부추(중국판 개미)’도 미국과 일본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1월 중국 자산운용사 화샤기금의 일본 주식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는 14~20%가량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됐다. 그만큼 투자자들이 몰렸다는 의미다. 가격이 급등하자 화샤기금 측은 한때 거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스탠더드 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추종하는 화샤기금 ETF에도 프리미엄이 18%가 붙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25%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도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해 중국 부동산 개발 투자는 1년 전과 비교해 9.6% 감소했다. 분양 주택 판매 면적과 금액도 각각 8.5%, 6.5% 줄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과 관련 산업 침체가 수년간 지속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국 내 70개 주요 도시의 기축 주택 가격은 1년 전보다 모두 하락했다. 지역별로 보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등 4개 도시를 일컫는 1선 도시는 1.1%, 각 성의 성도(省都)와 직할시인 청두·항저우·난징·선양·충칭 등 2선 도시와 2선 도시보다 규모가 작은 3선 도시는 각각 0.8% 떨어졌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휘청이자 중국 당국은 부양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우선, 중국 중앙후이진공사는 지난 2월 6일 보유 중인 ETF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으로 중국 본토와 홍콩 주식 시장의 하락을 막겠다고 밝혔다. 다만 투자 규모와 기간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중앙후이진공사는 중국은행·중국공상은행·중국건설은행·중국농업은행 등 중국 4대 국유은행의 최대주주로 2003년 12월에 설립된 국부펀드다.
이와 관련해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 관계자는 “현재 본토 A주가 역사적으로 저평가돼 있어 중장기 투자를 목표로 하는 중앙후이진공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들이 투자 적기로 보고 있다”며 “중앙후이진공사가 지속적으로 주식 보유량을 늘릴 수 있게 지원하고 공모·사모펀드, 증권사, 사회보험기금, 연금기금 등 많은 기관투자가들의 시장 진입을 장려해 주식 시장을 안정화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증감위는 지난 1월 말부터 증권사를 대상으로 공매도 목적의 주식대여를 금지하도록 하고, 공안부와 협력해 악의적인 공매도를 집중 단속하기로 했다. 증감위는 “증시 부양을 위해 1월 29일부터 일정 기간 동안 제한된 주식 대여를 전면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2월 5일부터 예금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내렸다.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하는 비율인 지준율을 낮춰 시중에 장기 유동성 1조위안(약 188조원)을 푼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주택담보대출에 적용되는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치로 내렸다.
지방정부도 잇따라 부동산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1선 도시인 선전시는 지난 2월 7일 선전에 호적을 둔 가족 단위 거주자는 2채의 주택을 구입할 수 있고 1인 가구도 1채의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는 내용의 ‘주택구입 정책 최적화 통지’를 발표했다. 과거 거주 기간과 사회보험금 납부 기간으로 주택 구입을 제한하던 자격 요건을 사실상 없앤 것이다. 베이징시도 퉁저우구의 주택 구입 제한을 완화했다. 무주택자·1주택자인 베이징 호적 가구, 퉁저우구 소재 기업·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가구라면 주택 구입이 가능해졌다. 상하이시도 지난 1월 주택 수요 확대를 위해 관련 규제를 풀었다. 5년 이상 개인소득세와 사회보험금을 냈다면 호적이 없는 1인 가구도 주택 1채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대책들이 나오자 시장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특히 주식 시장은 ‘자금 수혈’ 발표가 나오자 즉각 반응했다. 6거래일 동안 하락을 거듭하던 상하이·선전종합지수는 지난 2월 6일부터 춘제(중국 설) 연휴 전인 8일까지 3거래일 연속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단기 효과’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당장은 주식 시장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긴 했지만, 주식 시장이 시장 재평가를 통한 ‘장기 상승’으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경기 침체와 내수 둔화 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구매 제한을 완화해주는 정책만으로는 주택 수요를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 경제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가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0.8% 하락했다. 시장 전망치(-0.5%)를 밑도는 수치이자 지난해 10월(-0.2%) 이후 4개월 연속 하락한 것이다. 2009년 9월 이후 14년 4개월 만에 최대 하락폭이기도 하다. 같은 날 발표한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과 비교해 2.5% 하락했다. CPI와 PPI가 4개월 연속 동반 하락하면서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대한 우려와 공포 역시 커지고 있다.
제조업 경기도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2를 기록하며 4개월 연속 ‘기준치 50’을 밑돌았다. PMI는 기업 구매 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경기 동향 지표로 50보다 높으면 ‘경기 확장’, 낮으면 ‘경기 수축’을 뜻한다. 수출도 부진하다. 중국 세관당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수출은 1년 전보다 4.6% 줄어든 3조3800억달러(약 4442조원)를 기록했다. 중국 연간 수출액이 감소한 것은 2016년 이후 7년 만이다. 특히 대(對)미국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미국 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1년 전보다 20%가량 줄어든 4272억달러(약 567조원)에 그쳤다. 대미 수출국 1위 자리도 멕시코에 내줬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2호 (2024년 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