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명문대를 졸업한 한국인 A씨는 본인이 가고 싶어 하던 현지 기업에서 채용을 희망했지만 최근 눈물을 머금고 귀국했다. 취업에 필요한 비자를 신청했으나 추첨 결과 탈락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수가 최근 모처럼 늘어났지만 졸업 후 이들을 필요로 하는 미국 기업에서는 취업비자가 부족해 한국인 채용이 더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내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경우 미국인을 대부분 채용하지만 소통 등을 위해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한인 유학생을 채용하고 싶어도 비자 때문에 사람을 못 구하는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한국인 전용 비자 도입 법안이 의회에 상정돼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수는 2013년 전년 대비 2.3% 줄어든 7만627명을 기록한 이후 지난 2021년 3만9391명으로 매년 감소했다. 이어 2022년 미국 내 한국인 유학생 수는 전년보다 3.2% 늘어난 4만755명을 기록해 10년 만에 처음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반등은 팬데믹 마무리 영향이 크다.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완화되고 온라인·하이브리드 학습이 확대되며 교육기관 접근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졸업 이후의 행보다. 미국에서 취업해 경력을 쌓고 싶지만 취업에 필요한 비자 취득이 하늘의 별따기여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귀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인 비자가 H1B다. 이 비자는 연간 신규 발급 건수가 학사 6만5000개, 석사 2만 개로 제한(쿼터제)돼 있으며 추첨을 통해 선정된다. 한국인 졸업생을 채용하려는 기업이나 졸업생 입장에서는 ‘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추첨을 통한 H1B 비자 발급은 한국인에게 연간 약 2000건에 불과하다. 전체 유학생 수의 겨우 5% 수준이다. 당첨 확률이 복권 수준이라고 해서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로또’ 당첨에 비유될 정도다.
예를 들어,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미용전문업체 A사의 경우 올해 한국인 유학생 4명을 H1B 비자로 채용하려 했으나 모두 추첨에 탈락해 채용을 할 수 없었다. A사 HR담당자는 “매년 H1B 비자 구하기가 더 어려워져 걱정”이라고 밝혔다.
전체 H1B 발급 중 한국인 비중 역시 매우 미미하다. 미국이민국(USCIS)에 따르면, 지난해 H1B 비자 한국인 발급은 2179건을 기록해 전체 13만2329건(기존 H1B 소지자의 이직으로 인한 발급 포함)의 1.6%에 불과했다. 이는 인도(7만7637건), 중국(1만8911건)은 물론 필리핀(2301건) 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아울러 칠레(1400개), 싱가포르(5400개), 호주(1만500개), 캐나다(무제한), 멕시코(무제한) 등은 자체 취업비자 쿼터를 보유하고 있다. 대부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때 획득한 것이다. 한국은 한미FTA 협상 당시 취업비자 쿼터 확보 기회를 놓친 셈이다.
로또 당첨과 같은 H1B 비자를 받은 취업자도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H1B 비자는 취득 시 3년 유효하고 연장 시 최대 6년 유효하다. 특히 취업 중 해고가 될 경우 두 달 안에 새로운 고용주를 구하지 못하면 귀국해야 한다. 대개 대기업의 경우 면접 등 채용 과정이 약 한 달은 걸리기 때문에 해고 통보는 사실상 귀국 통보와 다름없다.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도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미국 내 대규모 투자가 줄을 잇고 있는데, 인력 부족 문제로 자칫 사업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 내 한국 법인의 투자를 보면 삼성전자는 170억달러를 투자해 텍사스 테일러의 새 반도체 제조시설에서 내년부터 가동을 준비하고 있고, SK이노베이션은 켄터키주와 테네시주에 43억달러를 투자해 포드와 함께 배터리 공장을 가동할 계획이다.
미국 내 선두 인재채용 서비스 업체인 세스나그룹의 조재원 법인장은 “미국 내 기업들이 한국인 인재를 비자 때문에 채용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대개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직원 대부분을 미국인으로 현지 채용하고 일부 한국어가 가능한 한인도 채용하는데 후자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한국 본사에서 직원을 현지 파견하지만 그 숫자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지 한인 채용이 필수라는 게 중론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E4 비자(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창설을 위한 ‘한국과 파트너 법안(Partner with Korea Act)’이 올 4월 상하원에서 공동발의됐기 때문이다. 이 비자는 연간 최대 1만5000개 발급이 가능하다.
E4 비자는 H1B와 별도로 발급 가능하며 조건도 더 유리하다. H1B 발급을 위해선 3월 말까지 사전 등록해야 하지만 E4는 연중 언제든 신청 가능하다. 또한 H1B 비자는 발급 시 3년까지 체류 가능하고 최대 6년 연장 가능한 반면 E4는 2년 단위로 갱신이 가능해 무제한 체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법안의 통과 여부는 아직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3년 이후 연방 의회 회기 때마다 E4 비자를 창설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회기가 바뀌며 모두 무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정부는 물론 정재계에서 법안 통과를 위한 노력이 나오고 있다.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은 지난 4월 이번 법안을 발의한 영김 의원을 만나 E4 비자 창설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뉴욕에서는 경제인들을 중심으로 E4 비자를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의환 뉴욕총영사는 “민·관에서 한국인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대응 노력이 펼쳐지고 있다”면서 “올해 한미동맹 70주년 모멘텀을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