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제재 등에 맞서 희토류 무기화를 검토하면서 희토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중국산 희토류를 구하지 못할 경우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제품은 물론 무기도 제조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먼저 희토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첨단 산업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희토류는 말 그대로 희귀한 흙(Rare earth) 원소 17종류를 총칭하는 말이다. 화학 원소기호 57번부터 71번까지의 란타넘(란탄)계 원소 15개와, 21번인 스칸듐(Sc), 그리고 39번인 이트륨(Y) 등이 포함된다. 해당 원소들은 희토류라는 이름과는 달리 특별히 희귀한 존재는 아니다. 원소로는 세계 각지에 풍부하게 존재하지만 농축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농축하더라도 분리가 어려워 수차례 정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희토류 채굴과 제련·분리 등의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크게 유발된다. 과거 희토류 최대 생산국이었던 미국도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과 환경오염 물질 때문에 1990년대 이후 희토류 사업을 대부분 접었다.
미국의 빈자리를 차지한 곳은 중국이었다. 선진국처럼 환경규제가 강하지 않았던 중국은 저가 공세를 통해 세계 희토류 시장에서 빠르게 영토를 넓혀갔다. 중국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1992년 내몽골에 있는 희토류 생산 시설을 방문했을 때 “중동에는 석유가 있고,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중국의 희토류 굴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육성 정책 등에 힘입어 중국은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 소비, 수출국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17종의 희토류를 모두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결국 글로벌 희토류 공급망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졌다. 중국의 희토류 매장량은 세계 전체 매장량의 37% 수준을 차지하지만 실질적 공급 비중은 9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희토류는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열을 잘 전도하는 특성이 있어 반도체, 스마트폰 등 첨단산업에서부터 군수, 항공 우주 등 다양한 산업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전기차, 수소 저장, 배터리, 풍력발전용 터빈, 태양광 패널 등 탈(脫)탄소 녹색산업에서 희토류의 중요성이 계속 커지고 있다. 중국 지도자라면 희토류를 어떻게 바라볼까. 사실상 중국이 공급망을 독점하고 있는데 그 물질이 첨단 IT 산업은 물론 친환경 산업에도 필수적인 제품인 만큼 국가적으로 귀한 산업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대외 압박으로 어려울 때 항상 희토류 무기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이유다.
준비작업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중국은 2020년 수출관리법을 제정해 희토류 같은 전략물자에 대해 수출 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2021년 12월에는 중국알루미늄그룹·중국우쾅그룹·간저우희토그룹 3곳과 국유 연구기관 2곳 등 총 5개 기관을 통폐합한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켰다. 중국희토그룹 대주주는 정부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이 희토류 생산 과정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 것이다.
2022년 1월부터는 희토류 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 수위가 계속 높아지자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움직임도 더 빨라지는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방산 업체 록히드마틴 F-35 스텔스 전투기와 관련된 미국의 우왕좌왕 행보도 중국에게 힘을 실어줬다. 미국 국방부가 F-35 전투기의 터보머신(유체기계) 펌프에 사용된 자석이 허가되지 않은 중국산 사마륨-코발트 합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전투기 인수를 중단시켰다가 3달 만에 다시 인수 중단 방침을 철회한 것이다. 중국산 제품의 대체재를 구하기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시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관영매체들은 “미국의 무기에 사용되는 중국산 희토류의 수출을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올해에는 중국이 전기자동차와 풍력발전용 모터 등에 필요한 희토류 자석 제조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국가 안보와 사회 공공이익을 이유로 ‘중국 수출 규제·제한 기술 목록’에 네오디뮴과 사마륨 코발트 자석 제조기술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내에 최종 방안을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오디뮴 자석과 코발트 자석의 중국 점유율은 각각 84%, 90% 이상이다. 자석은 모터 작동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부품으로 전기차 외에도 항공기, 로봇, 휴대전화, 에어컨 등에 폭넓게 쓰인다. 모터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희토류 자석 제조기술 수출을 금지하면, 관련 업체를 보유하지 못한 미국·유럽은 모터 시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희토류 자석 통제 추진은 첨단산업과 탈탄소 산업 분야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는 ‘패권 전략’인 동시에 미국·일본 등의 규제에 맞대응하는 방안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또 희토류 중에서도 전략물자 가치가 가장 큰 중희토류 공급을 줄이면서 물량을 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가 3월에 발표한 ‘2023년 희토류 채굴·제련 관련 통지’에 따르면 올 상반기 희토류 채굴·제련 총량을 20% 가까이 늘리면서도 군사용 장비, 전기차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중희토류는 오히려 4.8% 줄인 것이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움직임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물론 한국도 희토류의 중국 의존도 줄이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당장 미국 등 일부 국가는 희토류 채굴과 가공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이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4월 15일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열린 G7 기후·에너지·환경 장관회의에서 희토류 등 중요 광물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행동계획이 논의된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G7은 ▲광산 개발 등에 1조엔 이상 재정 지원 ▲정교하고 치밀한 장기수요 예측 ▲효율적인 재활용 체제 정비 등에 대한 계획을 수립했다. 한국 정부도 중국의 희토류 수출 금지에 대비해 희토류 각 품목에 대한 심층 분석을 진행하고 품목별 위기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