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뉴저지주 티터버러 코스트코 매장. 일요일이었지만 여전히 주차부터 하기 쉽지 않았다. 뉴저지주는 블루법(Blue Laws·일요일에 식료품 외에 의류, 가구, 사무용품 등을 판매 금지하는 법)이 시행 중이라 일요일에는 코스트코에서 식료품 외에는 살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트코의 일요일 매장 내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니, 미국 경제를 떠받들고 있는 소비는 꺾이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5월 발표된 코스트코 분기 실적에 따르면 매출은 526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16% 증가했다. 순이익은 13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9% 증가했다. 코스트코는 최근 분기마다 매출 성장률이 15~17%를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6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에는 전월 대비 -0.1%를 기록했었는데 다시 증가세로 전환한 것이다. 가구, 식료품, 외식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가 견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가격이 급격히 오른 에너지, 식료품 등을 제외한 근원 소매 판매도 전월 대비 0.8%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른 영향이 적지 않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전월 대비 증가세로 전환한 것은 소비심리가 다소 개선됐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소비심리는 개선된 듯하지만 여전히 하반기 경제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분기 기업 실적 발표 시기가 시작되며 기업들은 실망스러운 실적을 내놓고 있다. 특히 1분기 유통업에 큰 타격을 줬던 재고 문제는 이번 분기에도 기업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급망 붕괴, 물류난 등으로 타격을 입었던 유통업체들이 과도한 주문을 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왔고 이 여파는 큰 충격을 야기했다. 여기에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달러 강세는 미국 기업들의 실적을 다시 갉아먹을 것으로 예상된다. ‘킹달러’라고 불릴 정도의 ‘나 홀로 강세’ 현상은 미국 기업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세일즈포스 같은 글로벌 기업은 달러 강세로 수억달러 이상 실적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미국에 달러 강세는 수입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는 있겠지만 급격한 환율 변동은 미국 기업들에게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 6월 ‘경제 허리케인’이 오고 있다고 경고했던 ‘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는 지난 14일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전망은 달라지지 않았고, 우려는 더 가까이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는 “걱정했던 금융권 일부 붕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 전쟁이 세계 에너지·식량 가격에 미칠 영향 등이 향후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가 지금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유가 상승세가 아닌 식량 가격 고공행진이라고 경고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4분기 6.9%(전기 대비 연율)였던 미국 GDP 성장률은 올해 1분기에 -1.6%를 기록했다.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경우 기술적 침체로 분류하는데, 2분기 성장률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분기 성장률 전망을 1.9%에서 0.7%로 낮췄다. 애틀랜타연방준비은행의 ‘GDP나우’(7월 15일 기준)에 따르면 2분기 성장률 전망은 -1.5%로 전망되고 있다. JP모건, 모건스탠리는 각각 2분기 성장률을 각각 1%, 0.3%로 조정했다. 이런 기관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사실상 기술적 침체에 빠진 상태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골드만삭스는 시장이 질문은 이제 ‘침체는 피할 수 없는가?’에서 ‘우리가 이미 침체에 있는가?’로 옮겨왔다고 진단했다. 앞으로 많은 변수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지만 하반기에는 ‘상고하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3분기에 다소 성장세를 회복하지만 4분기에는 다시 체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3분기, 4분기 경제성장률을 각각 1.9%, 0.4%로 전망했다. 이 경우 올해 연간 성장률은 0.4%에 그친다. 웰스파고는 올해 성장률 전망을 1.5%에서 -0.2%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0.9%에 그칠 것으로 봤다. 지난 6월 기준 3.6%인 실업률이 점차 상승해, 내년 말에는 5.2%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지난 15일 실적 발표를 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미국 경제가 최근 수십년 만에 가장 도전적인 상황을 마주했다며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기준금리, 에너지 가격 등이 투자자들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록의 2분기 주당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0% 급감한 7.36달러에 그쳤다.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들은 주당 7.90달러를 전망했는데, 이를 크게 밑도는 실적을 거둔 것이다.
블랙록은 이날 일반 관리비가 전년 대비 12%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사무실 출근이 재개되며 헬스, 안전 관련 비용과 IT 관련 비용이 늘어났다며 앞으로는 시니어급의 채용을 늦추고, 주니어급의 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마크 잔디 무디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16일 팟캐스트에 출연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고 확신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준이 효과적으로 정책을 운용하고, 운이 좋다면 미국 경제가 침체를 피할 수 있겠지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막대한 유동성에 기인해 달렸던 미국 경제의 동력이 약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다만 이번 침체는 ‘약한 감기’처럼 크게 영향을 주지 않고 지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스위스계 투자은행인 UBS는 “미국 경제는 성장 정체와 높은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완만한 인플레이션과 느린 경제 성장이 특징인 ‘슬로플레이션’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 경제가 향후 12개월에서 36개월 이내에 완만한 인플레이션 시기에 진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전망이 제기된 것은 인플레이션이 6월을 기점으로 정점에 달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UBS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선진국에서 더 크게 나타났지만 지금부터는 완화될 것이라고 봤다. 미국 인플레이션은 이미 최고조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유럽은 올해 9월에 피크를 지날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나는 과정에서 연방준비제도와 ECB(유럽중앙은행)가 뒤늦게 강력한 긴축에 나선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팬데믹 직후 불확실성에 갇혀있던 세계 경제는 다시 안개가 자욱한 터널로 진입하고 있다. ‘슬로플레이션’ 수준으로 미국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