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기자가 최근 자동차 점검을 받으러 자동차 수리점에 갔다가 경험한 일이다. 지난 봄 차량 엔진오일을 교체하러 갔다가 타이어도 교체하려고 했었다. 수리점 대표는 타이어 상태를 보더니 “아직 쓸 만하다”며 “몇 달 있다가 교체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근에 이곳을 다시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눈여겨봤던 타이어는 가격이 20% 가까이 올랐을 뿐 아니라 재고가 없었다. 타이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미국에선 공산품 수요가 증가하는데 물류공급난이 가중되며 가격이 뜀박질을 하고 있다. ‘일회용품 천국’인 미국에서는 최근 플라스틱 용기 사용이 줄고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실천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다. 일회용품 공급이 부족해지면서다.
유명 베이커리 체인인 ‘파네라(Panera)’ 일부 매장에서는 플라스틱 용기가 부족해 아이스커피를 종이컵에 제공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테이크아웃, 배달이 급증했지만 이에 맞춘 일회용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용기, 스푼, 포크 제공에 관대하던 문화에도 변화가 왔다. 뉴욕 일대에 많은 유럽계 커피점인 ‘프레타망제(Pret-A-Manger)’는 스푼, 포크를 매장 안쪽에 두고, 요청하는 사람에게만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 시장은 반도체 공급난으로 전례 없는 생태계 교란이 왔다. 자동차 천국인 미국에서 역사 이래 이렇게 자동차를 구입하기 힘든 시기는 없었다.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을 추월하다보니 현대차 팰리세이드, 기아차 텔루라이드 같은 인기 SUV는 MSRP(권장소비자가격) 대비 5000~1만달러 웃돈을 줘야 살 수 있게 됐다.
자동차와 같은 소비재보다 가장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도시를 탈출하며 교외 지역 주택 구입 열풍이 일면서 미국 전역에서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자 너도나도 집을 사기 시작했다.
미국의 주택 가격이 전국적으로 전년 동기 약 20% 이상 오른 것은 렌트로 살던 젊은 층이 ‘생애최초’ 주택 매수에 나선 영향이 적지 않다. 이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를 받고 보유세를 내더라도 렌트비를 내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모기지 금리가 3~5%였던 팬데믹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제로금리 정책에 따라 모기지 금리가 2%대로 내려오면서 주택 매수 수요는 급등했다. 연준의 테이퍼링(유동성 공급 축소) 계획이 임박하면서 시중금리는 오르고 있지만 신용이 좋은 사람은 여전히 2%대에 모기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집값이 오르며 렌트비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주택 가격과 렌트비는 한 번 오르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Sticky) 속성이 있어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는 요소로 자리 잡게 된다.
인플레이션으로 경제 주권이 무너진 케이스로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국가는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등이다. 미국의 전례 없는 인플레이션 현상을 이런 나라들에 빗대 ‘짐바메리카(짐바브웨+아메리카)’, ‘베네수메리카(베네수엘라+아메리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의 더 큰 문제는 당분간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천연가스를 비롯한 원자재 시장은 천장이 뚫린 것처럼 오르며, 물가를 계속 올려놓고 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 대비 8.6% 올랐다. 이는 2010년 11월 자료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폭을 경신한 것이다. 전달 8.3%에 이어 상승폭이 더 커졌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6.8% 올랐다. PPI는 소비자물가지수(CPI)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생산자 물가 상승률이 소비자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현상은 이례적으로, 시간을 두고 소비자 물가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시차를 두고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는 의미다.
CPI 상승률은 지난 5월 5.0%을 기록한 데 이어 9월까지 5개월 연속 5%대로 오르고 있다. 상반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이 팬데믹 직후여서 기저효과가 크게 미친 시기였다. 지난해 4~7월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0.1~1.0% 오르는 데 그쳤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영향은 일시적(Transi tory)”이라고 수없이 강조해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기저효과에 따른 착시이지 인플레이션 기조가 고착화된 것이 아니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8월 이후에 물가가 계속 고공행진을 하는 것은 예상 밖이다. 지난해 8· 9월 CPI 상승률은 1.3%, 1.4%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8·9월 CPI 상승률이 각각 5.3%, 5.4%를 기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물가 지표가 중요한 것은 앞으로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 회복에서 기준금리 인상 시기와 폭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의 물가지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월 연준 의장의 어떤 판단을 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파월 의장은 ‘슈퍼 비둘기’라고 불릴 정도로 테이퍼링과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판단과 대처가 안이했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월 14일 자 칼럼에서 파월 의장의 인플레이션 원칙론이 연준 내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강경파 연준 위원들은 보다 속도감 있게 테이퍼링을 진행해 금리 인상의 여지를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준 2인자인 리처드 클래리다 부의장은 국제금융협회(IIF) 연례 회의에서 “일부 위원들은 (테이퍼링에) 더 속도를 내자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한 추가 진전’ 기준이 물가안정 목표와 관련해서는 충족되고도 남았고, 최대 고용과 관련해서는 거의 충족됐다”고 말했다.
8·9월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인플레이션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빨리 움직일수록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공개된 점도표에 따르면 연준 위원 18명 중 9명이 내년 중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내년 하반기에 금리가 두 차례 인상될지 여부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필요성에 동조하는 연준 위원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는 예상보다 높고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경기 흐름을 비교적 정확히 분석하고 있는 골드만삭스는 인플레이션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존 월드런 골드만삭스 사장 겸 COO(최고운영책임자)는 “높아진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려면 1~2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월드런 사장은 “공급망 대란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CEO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CME그룹의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첫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9월로 보는 전망이 62%에서 65%로 올라갔다.
내년에 두 차례 금리 인상이 있을 가능성은 46%로 나타났다. 11월 FOMC 회의에서 연준의 방침에 따라 내년 하반기 기준금리의 두 차례 인상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IMF(국제통화기금)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IMF는 “물가가 예상치를 벗어날 위험이 구체화할 경우 적절히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월 의장이 연임되지 않는다면, 첫 금리 인상은 차기 의장이 담당하게 된다. 백악관과 연준이 어떤 선택지를 꺼내들지 더 이목이 집중되는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