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턴어라운드 Part Ⅵ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은 | 日 규제, 위기가 기회… ‘소부장’ 기술자립 급선무
안재형 기자
입력 : 2020.01.30 11:11:55
수정 : 2020.01.30 11:12:15
지난해 국내 반도체 업계는 그야말로 보릿고개였다. 2018년 호황의 정점을 경험한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해 글로벌 수요가 줄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8달러까지 오르던 D램(DDR4 8Gb)이 3달러 미만으로 쪼그라들며 영업이익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장기화하고 있는 미중 무역 분쟁의 파고는 높았다. 이 때문에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로 떠오른 중국 시장 공략이 힘겨웠다. 지난해 7월에는 일본의 핵심소재 수출규제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으로 쓰이는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국내 수출을 개별 허가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에선 국내 반도체 라인이 멈출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일본 정부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약점을 파고들었다는 분석도 뒤를 이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기회가 공존했다. 반도체 업계는 일본발 위기를 소재 다변화의 기회로 삼았다. ‘국산화’는 반도체 관련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의 가장 핫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천안 엠이엠씨 코리아 공장에서
300mm 웨이퍼 절삭 공정을 시찰하고 있다.
▶고순도 불산액 국내 자립화 성공
그 결과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처음으로 일본 수출규제 3대 품목 중 하나인 고순도 불산액의 국내 자립화에 성공했다. 지난 1월 2일 산업통산자원부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기업인 ‘솔브레인’이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불산 공장 신·증설을 조기에 끝내고 최고 수준의 고순도 불산(12N) 대량생산 능력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일본 수출규제 이전엔 우리 기업들이 주로 일본산 고순도 불산액을 썼지만, 솔브레인이 관련 시설을 신·증설하며 국내 불산액 수요의 상당 부분을 공급해 안정성이 확보됐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이날 솔브레인을 방문해 “일본 수출규제 이후 민관이 힘을 합쳐 적극 대응해왔고, 솔브레인의 고순도 불산액 조기 생산능력 확충은 대표적인 성과”라며 말했다. 성 장관은 지난해 소부장 기업들과 정부 정책의 주요 성과도 언급했다. 구체적으로 공장 신설·가동 및 소부장 국내투자 증가로 수입의존 품목의 국내 생산능력이 강해졌다. 소부장 분야 해외기업의 국내 유치 및 해외 인수합병(M&A) 등 개방형 기술확보 사례도 늘었다. 기업 간 협력이 늘면서 잠재력 있는 국내 기업을 발굴해 새로 공급망을 세우려는 기업 사례 또한 수를 늘리고 있다.
포토레지스트 분야는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기업 ‘동진쎄미켐’이 올 1분기 중 포토레지스트 공장을 증설하기로 했다. 동진쎄미켐은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바로 전 단계인 반도체용 불화아르곤(ArF) 액침 포토레지스트를 지난 201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소재 전문 기업이다. 계획대로 공장이 증설돼 2021년 초 가동되면 제품 생산량이 배 이상 늘게 된다. 지난 1월 15일 동진쎄미켐 화성공장을 찾은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정부와 기업이 공동 노력한 결과 포토레지스트와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대 규제 품목의 공급 안정성이 확보되고 있다”면서 “올해를 소부장 산업 경쟁력 확보 원년으로 삼고 관련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포토레지스트는 일본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았던 반도체 필수 품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6월 포토레지스트의 대일본 수입 비중은 92%나 됐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7월 이후에도 수입비중이 85%를 차지했다. 정부와 업계는 일본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급다변화와 국산화에 역량을 집중했다. 산업부는 벨기에(RMQC), 미국(듀폰), 독일(머크)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소부장 관련 예산으로 2조1000억원을 투입해 100대 핵심전략품목의 기술개발, 실증·양산 테스트베드 구축 등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8325억원보다 2.5배나 예산을 늘려 개발부터 양산까지 전 분야를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 세번째)이 2일 공주 솔브레인 공장에 방문해 반도체·디스플레이용 고순도 불산액(액체 불화수소) 공급 안정화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소부장 관련 외국인 투자도 이어져
반도체 소부장 분야에 대한 외국인들의 투자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지난해 11월에는 글로벌 반도체소재 기업 ‘엠이엠씨(MEMC)’가 충청남도 천안에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 추가 생산 공장을 준공했다. 엠이엠씨 코리아의 제2공장 준공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우리 반도체 산업 경쟁력에 더해 소재·부품·장비 공급이 안정적으로 뒷받침된다면 반도체 제조 강국 대한민국을 아무도 흔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의 버팀목”이라며 “한국은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것이며,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에 세계 최대의 수요시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엠이엠씨코리아 제2공장은 반도체 제작에 꼭 필요한 원소재인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는 공장이다. 현재 천안 제1공장에서 직경 300㎜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를 생산하고 있고, 2공장은 올 2월부터 시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다.
반도체 장비 기업인 미국의 ‘램리서치(Lam Research)’도 경기도 용인시에 반도체 R&D 센터를 건립한다. 미국에 본사를 둔 램리서치는 반도체 업계에 혁신적인 웨이퍼 제조 장비 및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며 연간 매출 96억달러로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업체다. 용인시와의 협약에 따르면 램리서치는 기흥구 지곡동에 조성되는 지곡일반산업단지 내 산업용지를 공급받아 반도체장비 및 솔루션 개발을 위한 테크놀로지센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화학소재 기업 ‘듀폰(DuPont)’은 반도체 핵심 소재인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생산 공장을 국내에 건설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듀폰은 EUV용 포토레지스트 생산 공장을 국내에 구축하기 위해 지난 1월 8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투자 신고서를 제출했다. 투자 규모는 2021년까지 총 2800만달러(약 328억원). 생산 공장은 천안에 세워질 예정이며 이르면 내년부터 국내 조달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