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턴어라운드 | 한국 경제 버팀목 반도체 바닥쳤나? 올해 업황 회복 기대… 메모리 편중 리스크 여전
김병수 기자
입력 : 2020.01.29 17:48:46
수정 : 2020.01.29 17:49:34
주식시장에서 반도체가 뜨겁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합계는 전체의 30%를 넘어섰다. 역대 가장 높은 비중이다.
새해 들어 반도체 업황 회복에 두 종목의 주가가 연일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물론 시장에서도 반도체가 반등하고 있다는 ‘청신호’로 받아들인다. 한국 경제는 반도체 때문에 웃고 반도체 때문에 우는 구조다.
지난 2018년 수출 중 반도체 비중은 21%에 달했다. GDP(국내총생산)에서 반도체는 7.8%를 차지했다. 그만큼 비중이 큰 반도체였기에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면서 한국 경제마저 휘청거렸다.
반도체 업황이 좋아질 것이란 관측은 한국 경제에 축복이다. 덩달아 올해 성장률·수출도 반도체 덕을 볼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 점유율 80% 가까이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살아난다는 점은 반갑다. 일부에서는 2017년과 같은 슈퍼 사이클을 기대하기도 한다.
글로벌 조사 기관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반도체시장 ‘업턴’ 시점은 올해 상반기다. 미국 IT(정보기술) 리서치 업체 가트너는 올해 2분기부터 한국의 수출 효자종목인 D램 반도체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WSTS(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 역시 올해 12.8% 감소했던 전 세계 반도체업체 매출액이 내년에 5.9%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업연구원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성장에 따라 2020년 반도체 수출은 호조를 보이며 호황이 시작된 2017년 수준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으로 증가하리라 예측했다. 글로벌시장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2020년 반도체 시장은 4.8~10.2%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당장 지난해에 2018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던 가격이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새해 하반기 5세대(5G) 보급이 본격화되고 클라우드 서버 교체 작업이 대거 진행되며 가격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 세계 첫 5G 상용화에 성공한 한국 외에도 미국, 중국, 일본 등이 본격적으로 기지국을 설치한다. 5G 스마트폰이 많이 팔리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증가한다. D램익스체인지는 전체 D램 수요 중 모바일용 수요가 2018년 32%가량을 차지한 데 이어 2019년(34%)과 2020년(37%)에도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메모리반도체 생산라인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도 새해 반도체 시장을 밝히는 요인이다.
전체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한국 경제도 다소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7.4% 수준으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새해에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출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무역협회는 ‘2019년 수출입 평가 및 2020년 전망’을 통해 새해부터 모바일·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가 증가하면서 2019년보다 반도체 수출이 10%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의존 심화, 메모리 편식 구조 한계
하지만 시장 일부에선 여전히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
당장 반도체 업황 회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은 “세계 경제의 장기 흐름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당장 수익 창출이 어려운 4차 산업혁명 관련 투자가 위축되고 결국 반도체 수요가 떨어질 것”이라 예상한 바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 역시 “2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 시황이 업턴으로 돌아설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2017년과 같은 슈퍼 호황은 기대하기 힘들다. 두 자릿수 성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 지적했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가 장기간 반도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문제로 지목된다. 특히 반도체 경기 개선에 기댄 반짝 경기 회복에 취했다가는 반도체 경기가 꺼지면 다시 속절없이 무너지는 ‘더블딥’이 올 가능성도 있다. 2018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2.7%였지만, 반도체 수출 실적이 절반을 차지해 이를 뺀 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는 KDI 분석도 있었다.
정연우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반도체가 흔들리면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게 한국 경제의 최대 취약점”이라며 “이런 취약점은 한국 증시의 디스카운트(할인)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업황 회복으로 다소 나아지겠지만, 나머지 산업은 노동비용 증가 등의 원인으로 경쟁력이 나빠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더 커질 것”이라 꼬집었다.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도 취약하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슈퍼 호황’이 끝나자마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급격히 쪼그라들면서 그동안 우려됐던 ‘반도체 편중’ 부작용이 실적으로 현실화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앞으로 12년간 133조원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투자해 2030년 세계 비메모리 1위에 오르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시장에선 압도적 1위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10위 안에 들지 못한다. 이 분야에서 계속 뒤처지면 향후 세계 시장에서 밀려난다는 위기감이 상존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 또한 무시하기 힘들다. 아직 기술 격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반도체 양산에 나서 한국 업체를 위협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실제 중국이 비교적 저사양인 PC용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이고 있어 반도체 ‘초격차’ 전략 등을 통한 공격적 대응 기조는 유지돼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시스템 반도체 등 비메모리 반도체 영역까지 발을 넓혀 ‘초격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선 기업은 물론 정부의 인력 육성 및 예산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