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기업인상| 박정림 KB증권 사장, 국내 1호 증권사 여성 CEO… 전문성·혁신성 겸비한 준비된 리더
박지훈 기자
입력 : 2019.11.27 14:00:31
수정 : 2019.11.27 14:00:47
2019년 국내 증권업계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 중에 박정림 KB증권 사장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들다. 신년벽두부터 박정림 대표는 KB증권 (각자)대표로 부임하며 국내 증권업 역사상 ‘첫 여성 전문경영인(CEO)’이라는 상징적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유독 두터웠던 증권업계의 유리천장을 부숴낸 박정림 사장은 바로 부임 첫 해부터 탁월한 역량을 뽐내고 있다. 오랜 기간 다져온 자산관리 분야의 전문성과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무장한 박 사장은 지난해 부진했던 KB증권의 실적을 견인하는 한편 계열사 간 시너지를 강화하는 등 뛰어난 경영성과를 거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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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체이스맨해튼은행을 시작으로 조흥은행 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 부장을 거치며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2004년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부 부장으로 입행했다. 2년 만에 다시 KB국민은행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으로 승진하고 2016년에는 리스크 경력을 바탕으로 KB금융그룹 여신그룹 부행장을 거쳐 올해 초부터 KB금융지주 자본시장부문장과 KB증권 대표이사 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이런 영광스러운 상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국내 첫 증권업계 여성 CEO란 무거운 짐을 짊어진 제게 응원을 해주시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7회 매경럭스멘 기업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박정림 사장에게 소회를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평소 소탈한 언변을 통해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 박 대표지만 대답 속에 ‘증권업계 첫 여성 CEO로서의 부담감’이 녹아있었다. 실제 취임 당시 ‘맨 파워(Man Power)’로 움직인다는 말이 성행할 정도로 남성 중심 문화가 보편화된 증권업계에서 박 사장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었다. 박 사장은 이러한 생각들이 기우에 불과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증시가 ‘검은 10월’로 불릴 만큼 극심한 침체를 겪은 탓에 증권사들의 분위기도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KB증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초대형 IB 중 유일하게 적자 전환하며 어닝쇼크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 초 박 사장은 KB증권 대표로 취임하며 자산관리(MW) 부문의 강점을 살려 준수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KB증권의 올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2938억원이며, 세전이익은 334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24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3분기는 국내 주식시장이 침체국면에 들어서며 거래대금이 감소해 증권사들의 브로커리지 실적이 줄어들었지만 KB증권 WM부문의 성장과 금융상품 판매에 힘입어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박 대표에게 비결을 묻자 “기존 WM부문은 자산관리 영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자산관리 플랫폼 개발을 통해 차별화된 자산관리역량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며 “덕분에 고객금융상품 잔고는 통합 초기인 2018년 말 20조4000억원에서 올 9월 기준 26조3000억원으로 9개월간 약 30%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자산관리 전문가로 명성이 높은 박 대표의 첫 직장은 은행이다. 체이스맨해튼은행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녀는 조흥은행 경제연구소 책임 연구원, 삼성화재 자산리스크관리부 등의 다양한 경력을 쌓은 후 2004년 KB금융그룹으로 입행했다. 이전 커리어를 살려 시장운영리스크 부장이란 요직을 맡았다. 이후 KB금융그룹 안에서 승승장구했다. 2012년 WM본부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자산관리 분야의 전문성을 쌓기 시작해 2년 만에 다시 리스크관리그룹 부행장으로 승진했다. 2016년에는 리스크 경력을 바탕으로 KB금융그룹 여신그룹 부행장으로 올라섰다. 증권업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2017년 WM부문 부사장을 맡으면서다. KB금융지주(WM총괄 부사장), KB국민은행(WM그룹 부행장) 등을 겸직하며 그룹에서 주안점을 두고 있는 지주-은행-증권 매트릭스 조직의 한 축을 도맡아왔다. 박 대표는 현재까지 KB금융 자본시장부문장을 겸직하고 있는 만큼 KB증권의 자산관리부문과 모그룹의 시너지 극대화에도 나서고 있다.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복합점포다. 이는 은행·증권·카드·보험 등 각 업권의 금융사들이 고객에게 보다 폭넓은 선택을 보장하고 시너지를 내기 위해 운영하는 점포다. 2003년 금융지주사 제도가 도입되면서 금융 계열사 간 시너지를 키우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도입됐다.
현재 KB금융은 기업투자금융(CIB) 부문 9개, 자산관리(WM) 부문 70개를 합해 총 79개의 복합점포를 운영해 국내 금융사 가운데 가장 많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2020년 서울 압구정에 은행 증권 부동산 세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상주하는 것은 물론 고급 문화공간까지 갖춘 KB금융의 플래그십 PB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며 “타사에 비해 복합점포 사업 시작은 늦었지만 현재는 양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자평하며 향후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복합점포를 늘려나갈 계획을 밝혔다.
▶“리스크 분산 위해 해외투자 비중 늘릴 것”
IB·WM 신사업 통해 협력적 시너지 창출
박 사장은 취임과 함께 성장성이 저하된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우량자산 투자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강도 높게 추진해왔다. 대표적으로 해외 주요 4개국 거래 시 붙던 최소수수료를 폐지했다. 또한 취임과 거의 동시에 환전수수료 없이 원화로 해외 주식 거래가 가능한 ‘글로벌원마켓’ 서비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글로벌원마켓 서비스를 이용하면 한국·미국·중국·홍콩·일본·베트남 등 글로벌 6대 시장의 주식을 국내 주식 거래하듯 환전 없이 편하게 거래할 수 있다. 출시 이후 현재까지 8만 명을 넘어서는 등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올 한 해 국내 대신 미국, 중국 등 해외 주식 시장에 눈을 돌려 보다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며 “고객 투자포트폴리오의 리스크 분배 차원에서라도 해외 주식 투자 비중을 20~30% 늘리는 방향으로 내년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KB증권은 베트남 시장에 대한 특화 서비스와 상품 개발에 집중해 지난 6월 베트남 자회사 KBSV를 통해 발굴한 베트남 CD(양도성 예금)를 업계 최초로 출시한 바 있으며, 베트남 시장에 대한 리서치 보고서도 발간하고 있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베트남은 풍부한 경제활동 인구 및 자원을 기반으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며 “전사 협업을 통해 베트남 시장의 투자 나침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베트남 시장 특화 증권사의 입지를 굳건히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편 박 사장은 김성현 IB부문 대표와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신사업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5월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단기금융업(발행어음) 인가도 주요 성과 중 하나다. KB증권은 국내 초대형 IB 중 세 번째로 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증권사 중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만 발행할 수 있는 상품이다. KB증권은 발행어음 상품을 WM 고객 자산 증대 및 기반 확대를 위한 전략상품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조달된 자금을 통해 기업들에게는 기업금융 최강자인 KB증권의 노하우를 접목하여 기업성장 단계별로 맞춤형 IB솔루션을 제공, 기업과 동반성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 2조원대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지난 6월 3일 판매를 시작한 1회차 5000억원은 하루 만에 완판됐다. 기관 및 일반 법인들의 금융자산 운용을 통으로 위탁받는 OCIO(외부위탁운용관리) 사업부문에 대한 공격적인 영업확대 역시 같은 맥락이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IB쪽과 협력을 통해 OCIO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들고 시스템 개발도 완료해 의미 있는 2~3곳의 자금유치도 마친 상태”라며 “내년에는 관련 사업을 가속화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사장은 조직의 경영관리 효율화와 디지털 혁신에도 공을 들여왔다. KB증권의 중장기 성장을 위해 자본과 인력의 효율적 배분을 통한 생산성 향상,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프로세스 혁신 및 새로운 고객 가치의 창출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5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쉽고 빠른 투자정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업계 유일의 리서치 전용 홈페이지인 ‘KB 리서치’를 오픈했다. 자체 개발한 맞춤형 투자정보 챗봇인 ‘리봇’과도 연동되어 있다.
▶“잡무는 로봇에게 맡겨라”
한국 금융사 최초 ‘디지털 트랜스포머’ 수상
고객 가치 창출을 위해 리서치센터도 가세했다. ‘KB 리서치’는 기획 단계부터 고객 중심의 리서치 서비스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기능들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음성으로 리포트를 읽어주는 ‘TTS(Text to Speech)’ 서비스, 리서치센터 모닝미팅 음성 서비스, 세미나 영상 등으로 구성된 VOD 서비스, 핵심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 카드뉴스 등의 콘텐츠를 통해 어렵게 느껴지는 리서치 리포트에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편, 조직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17년 말부터 도입한 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 프로그래밍을 이용한 업무 자동화)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RPA 도입으로 연간 업무시간 기준으로 약 2만7000시간을 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앞으로 더욱 분야를 확대해 직원들의 스마트 워킹(Smart Working) 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 워킹은 KB금융그룹의 2019년 경영전략 방향인 RISE 2019 중 하나이기도 하다. KB증권은 향후 서버형 RPA, 사내업무 챗봇 등을 도입하여 추가적인 Work-Diet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KB증권은 IDC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어워드에서 국내 금융회사 최초로 한국 ‘디지털 트랜스포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IDC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어워드는 IT부문 세계 최고의 시장 분석기관인 IDC가 주최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고의 디지털 리더 기업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이다.
박 사장은 이에 대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업무효율화와 핀테크 업체 제휴 등 오픈 플랫폼 생태계 구축, 자산관리 영업 디지털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비즈니스 모델 변화와 시장을 선도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고객 편의와 직원들의 업무환경 개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