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은 집의 얼굴이다. 거실만 보면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름다운 거실을 찾아 방문한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신혜정 프라그 주얼리 대표의 빌라는 입구서부터 예술적 정취가 풍겼다. 구자현 작가의 대형 판화 작품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워 마치 갤러리에 들어선 듯했다. 미구엘 앙헬, 레오날드 콘티노 등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도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약 456㎡(약 138평)의 넓은 빌라 내부는 6개의 방과 2개의 거실, 주방을 겸한 다이닝룸으로 구성돼 있다. 두드러진 특징은 유럽풍의 메자닌(Mezzanine) 구조 거실이다. 메자닌은 건물 내부의 층과 층 사이에 설치된 중간층을 일컫는다. 신 대표가 획일적인 아파트를 벗어나 이곳 빌라로 옮겨온 이유 중 하나가 유럽의 저택에 온 듯 고풍스러운 메자닌 양식이 마음에 들어서다. 덕분에 1, 2층 높이가 합쳐져 6m에 달하는 거실 천장은 탁 트여 시원하다. 높은 천장에 달린 화려하고 웅장한 샹들리에를 보니 연회장에 온 듯하다. 경사진 거실창도 이 집만의 특징이다. 직사각형 형태가 대부분인 다른 집들과 달리 비스듬히 생긴 창가가 이국적이다. 거실에 와인 바를 갖춘 것도 낭만을 더한다.
주얼리 셀렉트 숍 프라그 주얼리(Prague Jewelry)를 운영하는 신혜정 대표는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방배동 빌라에서 의사인 남편과 단둘이 산다. 각자 일로 바쁜 부부에게 집은 휴식과 힐링의 장소다.
넓은 공간의 이점을 살려 고급 호텔처럼 꾸민 침실, 갤러리 느낌과 와인 바를 갖춘 거실, 영화관을 겸한 오디오실 등 다양하게 꾸며놓았다. 집안 곳곳이 모던과 클래식 사이를 줄다리기하듯 절묘하게 오가는 이른바 ‘모던 클래식’ 분위기다. 여기에 집주인의 안목을 더한 예술작품과 명품 오디오·가구들이 어우러져 고급스럽고 우아한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양병용 씨 작품인
목공예가 탁자가 놓인 2층 거실
빌라가 처음부터 우아한 공간은 아니었다. 이사를 왔을 때 구조는 마음에 들었지만 지나치게 화려한 샹들리에와 클래식하고 무겁고 두꺼운 몰딩이 답답하고 어색해보였다고 한다. 신 대표는 벽지를 선택하고 페인트를 바르고, 가구와 조명을 취향에 맞게 바꾸는 식으로 하나씩 변화를 주었다. 결국 몰딩과 문짝만 빼고는 주방 그릇장이나 현관 신발장의 손잡이까지 그녀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높고 경사진 거실 창으로 푸른 하늘이 바라다보이는 멋진 전망의 거실은 월터 놀의 소파와 임스의 와이어 테이블, 플렉스폼의 블랙 이지 체어, 폴트로나 프라우의 레드 록킹 체어를 놓았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신 대표는 집안 곳곳을 본인이 좋아하는 미술작품으로 채워놓기를 좋아한다. 거실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레오날드 콘티노의 기하학적 추상화다. 그녀는 “레오날드 콘티노는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고 19세의 나이에 척추를 다친 불편한 몸으로 40년 동안 불굴의 의지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예요. 힘 있고 역동적이면서 안정적인 구도감이 마음에 들고 제 거실과도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라 선택했습니다”고 설명한다.
곡선이 우아한 바바라 베리의 가구로 꾸며진 거실
그녀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작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는 미구엘 앙헬이다. 거실 한쪽을 차지한 작품에 대해 신 대표는 “하늘에서 내려본 도시 풍경을 가로수나 삶을 배제한 채 그리는데, 난색 계열의 색감이 정열적인 스페인 정서를 담고 있어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이자 그림”이라고 말한다.
거실과 통로로 이어지는 주방 겸 다이닝룸도 집주인의 예술적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식탁과 의자는 독일 가구브랜드 월터 놀 제품이다. 식탁 의자가 벤치 모양인 게 특이했다. 식사공간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3개월에 걸쳐 특별히 주문한 의자라고 한다. ‘가구계의 벤츠’라 불리는 월터 놀(Walter Knoll)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의 대표적 명품가구다. 월터 놀은 특히 가죽 제품이 유명한데, 주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남부 독일에서 깨끗한 환경과 먹이로 자연 방목된 소에서 얻은 가죽만을 사용한다. 다이닝룸의 조명도 그녀가 아끼는 제품이다.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조명디자이너 잉고 마우러의 루첼리노 샹들리에다. 백열전구에 날개를 달아 재미와 위트를 더한 조명 장식이 주방에 활기를 더한다.
메자닌 구조 덕분에 높고 경사진 거실창이 있는 거실
침실은 미국 유명 가구회사 베이커의 수석디자이너 바바라 베리의 가구들로 꾸며놓았다. 정제된 스타일에 여성스러운 곡선이 특징인 바바라 베리의 가구들이 뉴욕 맨해튼 업타운 아파트에 온 듯 이국적이면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월터 놀’ 가구가 놓인 다이닝 룸
신 대표가 미술과 주얼리, 인테리어를 좋아하고 그쪽의 전문가라면, 남편은 와인과 음악 애호가다. 거실 와인 바에서 와인 마시기를 즐기고 별도의 오디오실을 만들어 놨다. 2층에 있는 거실은 모던 클래식 스타일의 1층과 달리 전통 한식으로 꾸며놓은 게 특징이다. 소반으로 유명한 목공예가 양병용의 탁자와 누빔 소재의 좌식 쿠션이 편안하고 정감을 준다. 신 대표는 한학에 심취한 남편이 책 보고 전통차도 마시며 휴식하는 공간이라고 귀띔한다. 바로 옆에는 그녀만의 작업실도 마련돼 있다. 커다란 책상과 벽에 설치된 모던한 선반장, 장식성이 돋보이는 클래식 암 체어를 배치했다.
곳곳에 신 대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서인지, 집과 집주인은 온전히 닮아 있었다. 예술과 음악, 꽃과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정갈하고 우아한 기품이 배어 있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