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경영환경과 잦은 교체 위기에도 10년 이상 장기 재임을 통해 기업의 중장기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경영인이 있다. 이른바 장수 CEO다. 그들은 기업경영의 전문성을 통해 오너를 뒷받침한다. 창업 초기엔 창업주가 직접 경영에 나서지만 규모가 커지고 사업이 다각화될수록 그들의 역할이 절실해진다. 때론 오너 뒤에서 혹은 전면에서 전략과 전술의 구사하는 CEO. 그들은 ‘자신만이 경영철학과 비전’을 갖고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 ‘현재의 성장보다 미래 성장산업 발굴에 집중’하고 ‘현장경영을 중시’하며 ‘우수한 인재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과연 그들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탁월한 실적이 우선
부엌가구 회사로 출발해 국내 최대 가구회사로 성장한 한샘의 최양하 회장은 올해로 21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그는 늘 일선 직원들이 회사의 ‘진짜 자산’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최고 제품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마케팅에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강점도 없습니다. 한 가지를 꼭 꼽으라면 일선에서 일하는 사원들이죠. 이들이 한샘의 첫 번째 자산입니다.”
1979년 입사해 주요 요직을 거친 후 1994년 대표이사에 오른 그는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뒷받침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줄도산이 이어졌던 1997년 종합 인테리어 시장에 뛰어들어 5년 만에 업계 1위에 올랐는가 하면, 2013년에는 국내 가구회사 최초로 매출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수명이 짧은 증권업계에도 장수CEO는 있다. 감성경영의 대표주자로 손꼽히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2007년 국내 대형 증권사 최연소 CEO로 선임된 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행복과 신뢰를 강조하는 그의 경영스타일에 한국투자증권의 실적은 눈에 띄게 향상돼 지난해에는 3년 연속 순이익 1위에 올랐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브로커리지 업무 오프라인 1위, 펀드판매 2~3위, 자산관리 1위, 프로젝트 파이낸싱 1위, 파생상품 1~2위, 한마디로 돈 되는 핵심 분야는 모두 1~2위를 하고 있다. 유 사장은 임원의 능력으로 소통과 리더십을 꼽았다. 본인의 업무능력은 기본이라고 했다.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스스로 좋은 실적을 내 조직원의 공감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임원은 자기 혼자서 잘해선 안 됩니다. 솔선수범하면서 동시에 소통능력도 갖춰야죠. 고객과 소통하고, 직원과 소통하고, 주주와 소통하고, 모두와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증권업계에선 유 사장과 함께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부회장(18년),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11년)이 장수 CEO로 손꼽힌다.
2013년 르노삼성자동차로 자리를 옮긴 박동훈 부사장은 국내 수입차 1세대로 이른바 ‘폭스바겐 신화’의 주인공이다. 2005년부터 8년간 폭스바겐코리아를 이끌며 부임 첫 해 1635대던 연간 판매량을 2012년 1만8395대까지 늘렸다. 무려 1125%의 성장이다. 르노삼성에서도 구원투수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극심한 판매 부진에 빠져 있을 때 국내 최초로 소형 SUV Q3를 도입했고, 판매 성공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르노삼성은 오랜만에 전년 대비 30% 성장했다. 박 부사장은 폭스바겐 시절부터 “좋은 차를 좋은 값에 파는 것”이 불황에 강한 비결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품질과 가격이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다.
위기관리 능력 & 소통경영
2012년부터 GE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강성욱 총괄사장은 탠덤컴퓨터 동아시아 총괄대표, 컴팩코리아 사장, 한국HP 엔터프라이즈시스템 담당 사장, 시스코시스템스 아·태지역 부사장, 시스코시스템스 아·태지역 기업·커머셜 사업 사장 등 CEO경력만 올해로 20년째다. 강 사장이 직원에게 늘 강조하는 것은 상대를 한번 물면 놔주지 않는 ‘핏불 테리어(불도그와 테리어를 교배한 투견) 정신’이다. 밀어붙이고 도전하자는 것이다. 직원들에겐 늘 일관성 있는 결정과 리더십으로 비전을 제시한다. 리더가 일관된 목표를 내세우니 직원이 자연스럽게 조직과 목표를 같이 하는 방식이다. 누구보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강 사장은 임원 면접을 볼 때면 항상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는다고 한다. 진솔한 답을 들을 때 상대방의 기운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올해를 ‘고객가치 극대화와 미래 경쟁력을 다지는 해’로 선언한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은 6년째 1월만 되면 아침에 설렁탕만 먹는다. 전 직원과 만나는 설렁탕 아침식사다. 부서나 팀별로 직원들을 초대해 식사하는데, 임원들은 참석할 수 없다. 현장 직원을 얘기를 제대로 듣기 위한 방편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만나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사장의 믿음이자 경영철학이다. 이 사장은 2013년 5연임에 성공했다. CEO가 3년 임기이니 15년 롱런 채비를 마친 것이다. 제약업계에선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이 2010년 30여 년간의 최고경영자 생활을 마감한 뒤 이렇다 할 장수 CEO가 없었다. 이 사장의 롱런 비결은 ‘소통경영’이다. 직원들과 설렁탕을 매개로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함께 찜질방을 찾기도 한다. 삼진제약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당기 순이익을 기록했다.
관료출신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장수 CEO는 서경석 GS 부회장이다. 재무부 세제국 사무관, 주일본대사관 재무관 등 2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1991년 LG그룹에 영입됐다. 1996년 LG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이 되며 CEO가 됐으니 올해로 19년차다. 이후 1998년 LG종합금융 대표이사 사장, 2000년 극동도시가스 대표이사 사장, 2001년 LG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 등을 거쳐 2009년부터 GS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직후 위기에 빠진 LG종합금융 회생, 합병 이후 LG투자증권의 경영 정상화 등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으로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신뢰를 얻었다. 지난해 12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 현재 부회장으로 그룹경영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
애널리스트들이 꼽는 한국의 최고경영자로 유명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1985년 미국 P&G 본사 입사 후 1998년 P&G 쌍용제지 대표이사 사장으로 CEO 대열에 합류했다. 이후 P&G 한국총괄사장을 거쳐 2001년 해태제과 대표이사 사장, 2005년 LG생활건강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2013년 말 대표이사에 재선임되며 네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는 차 부회장은 코카콜라 음료, 더페이스샵, 해태음료, 보브 등을 차례로 인수·합병하며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로 사업의 축을 세웠다. 그가 시도한 M&A는 대부분 1~2년 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그는 M&A 회사를 우량사업부문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던 비결로 ‘구성원의 창의력 극대화’를 꼽았다.
“새로운 사업을 통해 임직원 개개인의 능력이 한껏 고양됐습니다. 개인의 성장이 회사 발전으로 이어지는 흥분된 재발견의 선순환이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차 부회장은 2011년 LG그룹 사상 외부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부회장에 올랐다. 차 부회장은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의 당면 숙제로 “전문경영인들이 오너처럼 철저한 기업가정신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훌륭한 예비 경영자들을 키워 나가는 것”을 꼽기도 했다. 또 “배고픔이 사라지는 순간 기업가정신은 약해지기 시작한다. 늘 배고프고 우직한(Stay Hungry, Stay Foolish)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의 요체”라고 강조했다.
2013년 7월 ING생명에 새롭게 둥지를 튼 정문국 사장은 여타 CEO와 비해 이력이 독특하다. 그는 1984년 제일생명(현 알리안츠생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알리안츠·에이스·ING생명 등 3곳의 외국계 보험사 CEO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업계에선 기본이라는 MBA도 없고 외국생활 경험도 없다. 2007년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알리안츠 생명 사장에 올랐고 2010년 연임에 성공해 경영능력을 입증 받기도 했다. 당시 그가 내세운 ‘기본에 충실한 경영(Back to the Basic)’이 성과를 보이면서 독일 본사도 신뢰를 보탰다고 한다. 정 사장은 여러 기업의 CEO를 맡으면서 경력 단절 시기가 없었던 비결로 ‘자기계발’을 강조하곤 한다. 실제로 정 사장은 첫 직장에 근무할 당시 틈틈이 영어를 연마해 미래를 준비했고, 보험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 우물을 팠다.
2007년 삼성전자 고문으로 위촉되며 삼성그룹과 연을 맺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은 1995년 미국 GE 항공기엔진 아시아 사장을 역임한 순수 해외파다. 최 사장은 GE 재직 시절 ‘최초’ ‘초고속’이란 수식어의 주인공이었다. 1988년 GE에 입사해 200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직원 32만명 그룹을 이끄는 170명의 ‘GE 경영자(GE Officer)’ 중 한 명이 됐고, 2006년에는 GE에너지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문 사장으로 부임했을 땐 당시 적자였던 프린터 사업부를 레이저복합기 분야의 세계 1위로 올려놨고, 2009년 삼성SDI의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선 에너지전문기업을 선언, 기업 체질을 성공적으로 변화시켰다. 2010년 삼성카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금융권에 입성했을 땐 ‘숫자카드’를 히트시키며 삼성카드의 역대 최고 실적을 연일 경신했다. 최 사장은 ‘남의 탓’을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이 실적 저조 이유를 다른 부서 탓으로 돌리면 꾸지람 듣기 십상이다. 비록 그 이유가 사실일지라도 서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게 최 사장이 요구하는 주인의식의 핵심이다.
오너십 강한 한국, 2인자 리더십의 네 가지 유형
2인자와 관련한 해외 기업의 성공사례로 글로벌기업 GE가 꼽힌다. 1980~1990년대 1인자였던 잭 웰치 전 회장은 인재 육성에 몰두했다. 내부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통해 2인자들 간 경쟁을 유도했고, 제프리 이멜트가 자연스럽게 후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오너십이 강한 한국에선 2인자 리더십이 쉽지만은 않다. 글로벌 기업의 2인자와 후계구도가 주주와 이사회 중심이라면 오너 기업은 말 그대로 1인자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2인자 다루기’와 ‘2인자 리더십’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업의 화두요, 베스트셀러의 단골 아이템이다. 매일경제 MBA팀이 분류한 2인자의 네 가지 유형은 그런 의미에서 국내기업의 2인자 유형이다.
첫째, 코디네이터(Coordinator)형
조정자, 기업 내부의 각 사업과 프로젝트를 조율하고 파트 간 충돌을 조정한다. 각 사업 분야가 자신들의 수익창출에 몰두하다 내부적인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세심히 관찰하면서 1인자(CEO)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이다. 삼성이나 LG 등 다방면에 사업을 펼치고 있는 대기업 그룹군에 적합한 유형이다. COO(최고운영책임자, Chief Operating Officer)가 주로 하는 역할이다. COO형 2인자라 불러도 무방하다.
둘째, 어드바이저(Advisor) 형
조언자, 이들은 산업의 트렌드를 먼저 읽고 CEO가 펼쳐가는 사업의 방향성을 점검하고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끝없이 조언한다. IT·첨단기업처럼 CEO가 주로 기술적인 분야에 관심이 높고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지 않은 경우 적합하다. CSO(최고전략책임자, Chief Strategy Officer)가 해야 할 일과 비슷하다. CSO형 2인자라고도 할 수 있다.
셋째, 셰도 스트라이커(Shadow Striker)형
마치 축구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 제1 스트라이커가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CEO의 올바른 결정(골)을 위해 최대한 많이 움직이는 2인자다. 보통 유통·식품 등 경쟁이 치열하면 매일매일 성과가 달라지고 판매량이 바뀌는 산업에는 세 번째 유형의 2인자가 필요하다. CMO(최고마케팅책임자, Cheif Marketing Officer)의 성향과 역할이 많이 반영돼야 하는 2인자다.
넷째,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형
CEO가 내리는 결정이나 선택에 있어 끝없이 반대급부를 말하면서 1인자의 결정에 실수가 없도록 돕는 역할이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산업 전체가 위기여서 크게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 경우에 반드시 필요한 2인자 유형이다. 보통 CFO(최고재무책임자, Chief Finance Officer)에게 주어진 역할과 유사하다.
CEO사관학교 삼성의 2인자들
흔히 CEO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업이 삼성이다. 2인자를 논할 땐 더더욱 그렇다. 일상업무를 진두지휘하는 막강한 실세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2인자는 모두 7명. 삼성의 2인자는 비서실장, 구조조정본부장, 전략기획실장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현재는 미래전략실장이다. 선대 이병철 회장 때부터 이건희 회장 취임 후인 1990년까지 2인자는 소병해 실장이다. 이 회장은 취임 후 3년간 사실상 소 실장에게 경영을 맡겼다. 그 기간 중 상속문제와 소 실장에 대한 주변을 정리했다는 후문이다. 후임 이수완 실장은 두 달 만에 경질돼 최단명 비서실장으로 남았다.
그 뒤를 이은 이는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이다. 그는 현재 총수 일가를 제외하면 삼성맨 가운데 유일하게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1993년 삼성증권 대표이사 회장에 오른 후 22년째다. 2000년대 초 삼성그룹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 이후 경영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그동안 삼성정밀공업 사장, 삼성증권 사장, 삼성그룹 비서실장, 삼성생명 회장, 그룹 구조조정 위원장 등 사장급 이상 직책을 무려 십여 차례 가까이 거치며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까지 모시고 있다.
1993년부터 비서실의 수장은 현명관 실장이 맡았다. 감사원 부감사관 출신인 그는 호텔신라와 삼성종합건설 대표를 거쳐 비서실장이 됐다.
재계는 당시 이건희 회장이 숙원이던 자동차 사업과 관련해 행시 출신인 현 실장의 네트워크가 필요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현 실장은 1996년 실장직에서 물러난 후 전경련 상근 부회장, 한나라당 제주도지사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2013년 12월부터 한국 마사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재무통으로 알려진 이학수 부회장은 IMF시기 구조조정에 기여하면서 삼성의 도약에 기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에도 발을 담궜다. 현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삼성전자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당시 이재용 부회장과 수시로 경영 현안을 논의할 만큼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 왔다. 미래전략실장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적임자라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