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는 재벌가 2,3세들의 놀이터가 됐다’ 한 수입차업체 임원의 푸념이다. 수입차업계에 대기업은 물론 중견그룹 오너 일가들이 잇달아 진출하면서 서비스 경쟁이 아닌 자본싸움이 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수입차업계에 진출한 대기업들은 효성그룹, 코오롱그룹과 GS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천우고속그룹과 KCC정보통신, 교학사, 참존그룹 등 중견그룹들까지 진출한 상태다. 최근에는 중견 여성의류업체인 크레송이 ‘애스턴마틴’을 국내에 들여왔다.
재벌그룹 오너 일가 2, 3세들이 수입차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뭘까.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차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큰 수익이 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경영수업을 위한 곳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수입차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쟁 역시 치열해졌다. 숱한 논란 속에서도 수입차 딜러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수익을 내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진율 역시 살인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수입차 시장. 재벌 및 중견그룹 오너 2, 3세들의 수입차 딜러 성적표는 어떨까.
초기시장 장악한 코오롱·극동유화·한성차 ‘맑음’
국내 재벌그룹 중 수입차 판매로 가장 많은 이익을 남긴 곳은 코오롱그룹이다. 코오롱은 1987년부터 BMW 딜러를 맡아왔다. 현재 전국 7개 전시장(강남·삼성·분당·대전·대구·부산·광주)과 10개의 A/S센터를 갖추고 있다. 규모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자동차 업체 시늉을 낼 수 있는 네트워크다.
코오롱그룹은 현재 코오롱글로벌을 통해 BMW 딜러를 맡고 있다. 코오롱은 BMW 자동차 국내 판매량의 25~30%를 담당해왔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오롱글로벌은 지난해 3조633억원이라는 높은 매출액을 기록했다. 하지만 코오롱글로벌은 자동차사업 외에도 건설업과 무역, 시설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 중 자동차 판매부문만 따로 보면 코오롱글로벌은 지난해 7719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 이익도 280억원에 달한다. 코오롱글로벌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6만1361주(0.07%)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코오롱과 함께 수입차 시장에서 가장 높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곳은 바로 극동유화그룹이다. 장홍선 회장은 그룹 산하에 포드-링컨을 담당하는 선인자동차와 아우디 메가 딜러인 고진모터스를 두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진모터스만이 높은 수익을 기록했지만, 최근 포드-링컨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어 선인자동차를 통한 매출액 신장규모도 기대된다.
실제 금감원에 따르면 선인자동차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17.8% 증가한 2200억원에다 3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흑자로 전환했다. 선인자동차는 장홍선 회장의 자녀들인 장인우, 장인주, 장선우 형제가 각각 10.3%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장 회장의 또 다른 수입차 딜러회사인 고진모터스는 고공행진 중이다. 장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지분 85%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15% 역시 장 회장이 최대주주(61.7%)인 우암홀딩스가 갖고 있다. 고진모터스는 지난해 3478억원의 매출액에 7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MBK)의 주요 딜러인 한성자동차 역시 자산규모만 2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홍콩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성차는 지난해 8506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83억원에 달했다. 한성차는 국내에 포르쉐의 최대 딜러인 슈투르가르트스포츠카도 보유하고 있다. 슈트르가르트스포츠카는 지난해 2434억원의 매출에 270억원의 영업이익, 214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수입차 전문가들은 “코오롱과 극동유화, 한성차 등 메가 딜러들은 수입차 시장 초기부터 진입한 곳들”이라며 “초기진입으로 확고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효성과 중견그룹은 ‘빛 좋은 개살구’?
반면 한발 늦은 수입차 시장에 뛰어든 재벌가 2,3세들의 성적표는 애처롭다. 효성그룹과 GS그룹, LS그룹이 대표적이다.
효성그룹은 더클래스효성과 효성토요타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 및 토요타·렉서스를 판매하고 있다. 이 중 더클래스효성은 강남·분당·안양·송파 딜러를 맡으며 인지도를 넓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MBK 내 메가 딜러인 한성차의 판매량과 비교하면 아직 부족하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더클래스효성은 지난해 3645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500억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주목할 부분은 영업이익과 순이익이다. 더클래스효성은 지난해 66억원의 영업이익과 1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적자를 기록했던 2012년과 비교하면 좋은 성적을 냈지만, 매출액이 수천억원에 달하고 재벌 오너 2세가 직접 경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적표라고 보기 어렵다. 더클래스효성은 조현준, 조현문, 조현상 등 조석래 회장의 아들 3명이 모두 3.4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효성그룹의 또 다른 수입차 딜러업체인 효성토요타의 실적은 더클래스효성만 못하다. 서초·강서·평촌에 전시장을 운영 중인 효성토요타는 지난해 897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14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24억원에 달한다. 효성토요타 역시 조석래 회장의 아들인 현준, 현문, 현상 씨가 각각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효성그룹과 함께 토요타·렉서스를 판매 중인 LS네트웍스 역시 마이너스 성적표다. LS네트웍스는 베스트토요타란 종속법인을 통해 수입차 딜러 사업을 하고 있다. 베스트토요타는 지난해 546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38억원의 영업적자와 1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베스트토요타는 LS네트웍스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GS그룹은 계열사인 센트럴모터스와 GS엠비즈를 통해 수입차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중 센트럴모터스는 렉서스를 수입해 판매 중이다. 센트럴모터스는 지난해 535억원의 매출액을 올렸지만, 영업이익은 28억원에 그쳤다. 여기에 상당한 이자비용이 발생하면서 5억700만원의 순손실이 발생했다. 센트럴모터스는 지난 2012년에도 1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센트럴모터스 역시 GS그룹 2~3세들이 지분의 상당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입자동차 사업에 중견그룹 2~3세들의 진출이 더욱 활발하다. 대표적인 곳이 KCC홀딩스그룹이다. KCC홀딩스는 2004년 수입차 시장에 진출한 이후 KCC모터스(혼다), KCC오토모빌(재규어랜드로버), KCC오토(벤츠), 아우토슈타트(포르쉐) 등 4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아주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3월 아주네트웍스를 설립한 후 재규어랜드로버의 딜러가 됐다. 수입차 시장에는 늦게 진출했지만, 쉐보레 판매대행 업체인 아주모터스를 비롯해 할부금융사인 아주캐피탈과 부품업체인 아주오토네트웍스 등을 거느리고 있다.
참존그룹은 2세들이 모두 수입차딜러업에 매진하고 있다. 2004년부터 아우디 딜러로 수입차 시장에 뛰어든 참존그룹(참존모터스)은 김광석 회장의 장남인 한균 씨가 지분 75%를 보유하고 있다. 김 회장의 차남인 한준 씨는 벤틀리를 수입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에는 이탈리아 스포츠카인 람보르기니의 공식수입원인 참존임포트도 설립했다.
최근에는 영국 귀족스포츠카 브랜드인 애스턴마틴이 한국에 진출했다. 바로 이 애스턴마틴을 국내로 들여온 이는 여성의류 업체 크레송의 신용관 회장의 장남 신봉기 대표다. 페라리와 마세라티를 수입하고 있는 동아원의 FMC도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건훈 대표를 신임대표로 임명하며 오너 일가가 운영하는 수입차 딜러업체로 변신했다.
BMW7시리즈 모빌리티 라운지. 수입차업체들은 VIP를 대상으로 다양한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영 실패로 사업권 반납하기도
수입차업계에서는 재벌그룹 2~3세들이 잇달아 수입차업계에 진출하는 것을 놓고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입차 딜러업의 특성상 막대한 자본금과 인력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재벌그룹 오너 일가의 진출을 반기는 측도 있지만, 손쉽게 사업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수입차의 성장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수입차 사업에 실패하면서 딜러권을 반납하는 사례도 있다. 2012년 수입차 시장에 진출했던 조중식 전 한진건설 회장의 장남 조현호 CXC모터스 회장은 미쓰비시를 비롯해 시트로엥, 캐딜락, 크라이슬러에 이르기까지 공격적인 행보를 펼쳤지만, 2년 만에 딜러권을 반납했다. 또 한미반도체그룹 역시 닛산 딜러를 반납하고 2012년부터 BMW그룹의 영등포 딜러로 변신했다. 이 밖에도 새서울그룹 역시 에스에스오토를 통해 닛산·인피니티를 판매했지만, 판매량 감소로 인해 딜러권을 내놓았다.
수입차업계에서 오랜 기간 일한 한 중견 딜러업체 임원은 “500억원 정도의 자금만 있으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가 돌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견그룹들까지 수입차 시장에 진출했지만 정작 높은 수익을 낸 곳은 손을 꼽을 정도”라며 “국내에서 재벌이나 중견그룹들이 수입차딜러업에 매진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지역 중소 사업자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