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도봉구 창동에 살다가 지난달 남편 직장 전근 때문에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으로 이사를 온 주부 한창숙 씨(43). 새 보금자리의 지리를 익히려고 주변 아파트와 도로를 열심히 둘러보던 한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고가의 수입 자동차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대구의 친지로부터 “범어동은 대구의 강남”이라는 얘기를 듣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됐지만 “수입차들이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는 게 한씨의 고백. 대구는 인구 1명당 수입차 보유비율(0.03대)이 서울(0.026대)과 인천(0.028대)을 제치고 전국 1위를 기록 중이다. 스포츠카 대명사인 포르쉐는 올해 6월 말 현재 대구에 2928대가 등록돼 있는데 이는 서울 전체 등록대수(2916대)보다 더 많은 수치. 대구는 또 2500cc 이상 대형 수입차 비중이 전체 수입차 중 48.85%를 기록해 서울(45.31%)보다 더 비중이 높았다. 수입차 소비 성향만 놓고 보면 서울시 웬만한 지역보다 대구가 더 왕성한 셈이다.
# 서울 강남에서는 BMW의 520d가 ‘강남 쏘나타’로 불린다. 그런 520d의 인기가 요즘 한풀 꺾였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이유는 문자 그대로 “너나없이 타기 때문에 희소성이 없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재규어, 시트로엥, 미니와 같은 이색적인 브랜드 차종이 강남에서 갈수록 인기를 끌고 있다. 강남구는 서울시 25개구 가운데 수입차 등록대수가 5만1184대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강남구에 사는 인구(57만4226명)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주민 11.22명 중 1명이 수입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인구 통계에 자동차를 몰지 않는 노약자나 청소년, 어린이까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수입차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외제차는 부(富)의 상징처럼 간주되며 한때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오죽하면 국세청이 수입차 타고 다니던 사람들을 골라서 세무조사를 벌인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변했다. 그야말로 수입차가 물밀듯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수입차 시대’다.
국내시장에서 수입차는 지난 8월 말 현재 총 100만6328대가 등록돼 1987년 1월 시장이 개방된 이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차 100만대 시대’가 개막됐다. 1990년대 말까지 연간 등록대수가 1만대에도 못 미쳤지만 2002년 처음으로 연간 등록 1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는 총 15만6497대가 팔리며 사상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서울-BMW, 경남-벤츠, 포르쉐는 대구에 몰려
그렇다면 지역별로 선호하는 수입차 브랜드가 있을까?
매일경제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한국수입자동차협회, 교통안전공단 자료를 토대로 전국의 수입차 지도를 분석해 봤다.(2014년 6월 말 기준)
그랬더니 지역별, 브랜드별로 재밌는 현상들이 발견됐다.
독일의 BMW는 6월 말 현재 전국에 18만4926대가 등록돼 국내로 수입된 해외 자동차 브랜드 중 당당히 1위를 기록했다. 서울, 경기,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광역 지자체 14곳에서도 단연 1위는 BMW였다.
그러나 경남과 제주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가, 공무원들이 집결해 있는 세종시에서는 폭스바겐이 각각 BMW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독일의 아우디는 인천(1만1145대)과 강원(1529대)에서 벤츠를 제치고 2위에 오르는 상대적인 강세를 보였다. 폭스바겐도 수입차 등록대수가 경기도에서 벤츠와 아우디를 제치고 BMW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경기도는 6월 말 현재 수입차 등록대수가 21만4294대로 서울(26만3174대)에 이어 전국 2위를 기록 중이다.
특히 폭스바겐은 공무원들이 밀집해 있는 세종시에서 가장 선호 받는 브랜드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세종시에 등록된 수입차 1727대(전체 등록차 대비 3.98%) 가운데 폭스바겐은 323대를 차지해 BMW(295대)와 벤츠(186대)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폭스바겐이 광역 지자체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세종시가 유일하다. 이 같은 추세는 중대형 모델이 주력인 BMW나 벤츠, 아우디 등 다른 독일차 업체와는 달리 폭스바겐이 소형차 위주로 주력 모델이 편성된 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폭스바겐은 4년 연속 베스트셀링 10위에 오른 골프2.0TDI와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 모델인 티구안 등 소형차들이 국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수입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이나 가족들이 고가의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것은 아무래도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나름대로 이유를 분석했다.
전국에서 1인당 소득(GRDP)이 가장 높은 울산은 수입차 비율이 전체 등록차 중 2.62%에 불과해 주요 광역시 가운데 가장 낮았다. 울산의 경우 현대자동차 공장이 위치한 ‘현대차의 아성’이라는 점이 현지 시민들의 자동차 구입 선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브랜드인 포드(4만2238대)와 크라이슬러(4만3대)는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만 상대적인 강세를 보였을 뿐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독일차와 일본차에 밀리는 부진을 보였다.
수입차의 메카로 불리는 도산대로 일대. 고가의 수입차들이 눈에 자주 띈다.
독일 브랜드 미니(MINI)의 한국 딜러회사인 동성모터스는 지난 10월 초 부산 해운대 전시장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미니의 해운대 전시장 내부 모습.
회사 돈으로 외제차 구입 여전
올해 6월 말 현재 서울에는 총 25만6527대의 수입차가 등록돼 전체 등록 자동차(248만5786대) 대비 10.32%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시 수입차 비중은 3년 전인 2011년 말 7.18%에 불과했지만 2012년 말 8.32%를 기록한 데 이어 2013년 말 9.61%로 상승하며 해마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6월 말 현재 처음으로 10%대 벽을 넘어선 것이다. 현재 서울시에서 돌아다니는 자동차 10대 중 1대는 수입차라는 얘기다. 서울시에서 수입차 비중이 10%를 넘어선 것은 지난 1987년 수입차 시장이 개방된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는 전국 수입차 10대 중 1대가 몰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강남 3구의 수입차 합계는 10만8708대로 전국 수입차 대수(96만6644대)의 11.25%에 달했다.
전체 승용차 등록대수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서울시 기초 지자체는 중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중구에 등록돼 있는 총 3만3055대의 승용차 가운데 1만840대(24.70%)가 수입차인 것으로 집계됐다. 4대 중 1대가 수입차인 셈이다. 중구는 인구수(13만7122명) 대비 수입차수 역시 강남구 다음으로 높았다. 중구 구민 12.65명당 1대의 수입차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구의 수입차 비중이 높은 이유에 대해 수입차협회 관계자는 “중구에 살고 있는 오래된 토박이 부자들이 많은 데다 외국계 기업과 대기업들이 몰려 있어 법인 명의로 등록된 수입차가 많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입차 등록대수가 가장 적은 구는 서울 기초 지자체는 강북구(2933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강북구는 주민 115.98명당 1대꼴로 수입차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나 강남구의 약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도봉구(3622대), 금천구(3098대), 중랑구(3812대)도 수입차 등록대수가 5000대에 못 미치며 상대적으로 적었다.
서울에 이어 수입차 비중이 큰 광역 지자체는 대구(8.55%), 부산(8.42%), 인천(7.01%), 경남(6.37%), 경기(5.63%) 등의 순이었다. 교통안전공단은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 비해 다른 지역은 차량을 등록할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채권 등 부대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그런 이유 때문에 인천과 대구, 경남 등에 수입차 리스 업체가 많이 몰려 있고 상대적으로 등록 대수도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원(3.06%), 충북(3.12%), 충남(3.29%), 전북(3.72%), 전남(3.03%) 등은 전국 평균(6.05%)보다 크게 낮은 수입차 점유율을 기록했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수입차 비중이 10%를 넘긴 소위 ‘수입차 선호도’가 높은 기초 지자체는 어디일까? 매일경제 조사 결과 부산중구(15.79%)·진구(16.99%)·해운대구(14.92%)·연제구(16.65%), 대구 수성구(17.61%), 인천 연수구(19.13%)와 남동구(12.23%), 성남 분당구(16.49%), 용인 수지구(12.30%), 고양 일산동구(11.35%)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지역은 중산층 이상 소비 여력이 큰 부유층이 대거 밀집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수입차 브랜드별로 본 등록대수는 BMW(18만4926대)의 뒤를 이어 벤츠(14만6159대)와 폭스바겐(10만6195대)이 6월 말 현재 10만대 고지를 넘어섰고 도요타·렉서스(9만9200대), 아우디(9만3719대), 혼다(4만9846대) 등이 그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