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Ⅱ]퇴직연금펀드, 퇴직연금의 갈길을 말하다…5년 이상 펀드 평균수익률 55%
입력 : 2012.06.01 17:22:47
수정 : 2012.06.25 17:56:49
지난 2006년 3월 말 설정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퇴직연금네비게이터증권펀드’는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153.61%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 펀드를 설정할 때부터 가입했다면 현시점에서 자산이 원금의 2.5배로 불어나 있는 셈이다. 2006년 1월 5일 설정된 마이다스자산운용의 마이다스퇴직연금배당주식펀드 역시 설정일 이후 151.5%의 누적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퇴직연금 성적이 대부분 저조한데 이들은 어떻게 높은 수익을 냈으며 또 퇴직연금펀드란 무엇인가.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은 수준의 정기예금 금리 정도에만 머물고 있는 가운데 퇴직연금펀드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내고 있어 퇴직금 제도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퇴직연금펀드는 퇴직연금사업자를 통해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이건 개인이건 미리 어떤 펀드가 좋은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LUXMEN이 모닝스타코리아에 의뢰해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전체 퇴직연금펀드의 누적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설정일 이후 지금까지 100% 이상의 누적수익률을 보인 펀드는 1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보면 은퇴 이후 보장의 중심은 정기예금이 아니라 퇴직연금펀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들이 이런 긍정적 모습보다는 펀드의 부정적 측면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 그들이 좋아하는 증거들이 있다.
설정된 지 4년이 지난 S사의 펀드는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누적수익률이 -20.56%로 나왔다. 이 기간 동안 은행 이자를 기회비용으로 따진다면 실제 손실은 40%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P사의 다른 펀드는 누적 수익률이 -13.12%로 나왔다. 이 펀드는 설정한 지 3년여가 됐다. 또 다른 S사의 펀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용할 것으로 생각되는 채권혼합형인데 수익률이 -16.57%나 됐다. 이 펀드 역시 설정한 지 꼭 4년이나 됐다. 그 동안 이자까지 까먹고 있는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 세 펀드가 설정된 날부터 분석 대상일인 지난 4월 말까지 비교대상 지표인 코스피는 소폭 상승했다. 이러니 시장 평균이 떨어졌기에 손실이 났다고 할 수도 없다. 당연히 펀드매니저의 저조한 실력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얼마나 좋은 사례들인가.
기업의 퇴직금 담당 실무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펀드 가입을 반대할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위험한 펀드보다 정기예금이자나 꼬박꼬박 받는 게 낫다고 할 가능성이 크다. 공연히 퇴직금 수익률을 조금 높이려다 자칫 손실이라도 나면 그 책임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펀드 분석에서 많이 이용하는 기간분석 자료를 내놓으면 이들이 몸을 사리기는 더욱 편해진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설정한 지 1년 이상된 퇴직연금펀드 381개를 대상으로 최근 1년간만 잘라내 수익률을 보니 222개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런 자료를 내놓으면 누구나 퇴직연금펀드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볼 것이다. 이런 겉모습에 대한 우려가 최근 감독당국의 퇴직연금 감독방향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전체 퇴직연금펀드의 동향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런 걱정 따위는 접어두는 게 현명해 보인다.
지난 4월 말 현재 전체 퇴직연금펀드는 463개나 되는데 이 가운데 설정일 이후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펀드는 고작 36개에 불과하다. 전체 펀드의 92.2%는 이익을 내거나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간을 좀 길게 잡아 설정한 지 3년이 넘은 펀드 295개를 보면 이 가운데 290개 펀드가 이익을 내고 있고 이들 펀드의 평균 수익률은 46.98%나 된다. 적자를 낸 펀드는 5개에 불과하고 이들을 포함해 수익률이 10%를 밑도는 펀드도 16개에 불과하다.
기간을 더욱 길게 잡아 설정한 지 5년이 넘은 펀드를 보면 213개 펀드가 모두 양호한 성적을 올렸다. 평균 수익률은 55.05%나 됐다. 5년 이상된 펀드는 수익률이 가장 낮은 것도 17.13%를 올렸고 수익률이 30%를 밑도는 펀드는 고작 12개에 그쳤다.
퇴직연금펀드는 대부분 장기로 내다보고 운용전략을 세운다. 이 때문에 설정한 지 얼마 안 된 펀드의 수익률은 낮게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설정한 지 2년 미만인 펀드 170개만 놓고 보면 128개 펀드만이 플러스 수익률을 올렸다. 최근 2년 동안 코스피가 13.6% 올랐다지만 일부 펀드의 경우 설정일 이후 지수가 오히려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 기간을 놓고 보면 장기 전략에 따라 운용하는 대부분의 펀드가 은행금리를 훨씬 뛰어넘는 양호한 성적을 내고 있다. 벤치마크인 코스피와 비교해도 이들의 수익률은 매우 뛰어나다.
설정한 지 1년 이상된 펀드 381개의 경우 지난 1년간만 떼어놓고 보면 평균 수익률이 마이너스 1.99%로 나왔는데 이 기간 동안 코스피가 4.2% 하락했으니 전체적으로 선방했다고 할 수 있다.
고수들 퇴직연금펀드를 말한다퇴직연금 목표는 1~2년
박현준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3팀장은 퇴직연금펀드 전문가다. 그는 6년 전인 2006년 한투로 오면서부터 ‘한국투자퇴직연금네비게이터증권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네비게이터펀드는 주식형과 채권혼합형이 있는데 모두 2006년 설정 초기부터 운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주식형은 5년 수익률 1위다. 비결이 무엇일까.
“퇴직연금펀드는 만기가 길다. 이 때문에 펀드의 안정성을 살리면서 충분한 수익을 내는 게 좋은 운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운용도 장기 목표에 부합할 수 있도록 단기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이용했더니 좋은 성과를 냈다.”
그는 고수익의 비결을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시장이 크게 요동을 쳤는데 오를 때 수익을 챙기고 빠질 때 제대로 방어해 수익률을 유지했다는 것.
그의 방어 전략은 어떠할까.
“시장 리스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열될 때 주식 비중을 줄이기보다 리스크를 낮추는 쪽으로 운용한다. 단기성과에 구애받지 않고 단기적으로 전망이 좋더라도 1년 이상 볼 때 위험하다면 미리 방어하는 전략을 취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장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추가상승을 기대하고 따라갈 때 우리는 따라가지 않고 방어했다. 이런 장에선 오히려 수익 내기가 쉽다. 일반 펀드들이 손절매를 할 때 우리는 장기로 보고 값이 쌀 때 샀다. 장기자금이라고 생각하며 운용한 게 고수익을 올린 비결이다.”
박 팀장은 네비게이터펀드의 장점을 “매년 시장 대비 초과수익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시점에 가입했더라도 연간으로 보면 꾸준히 괜찮은 실적을 내고 있다는 것. 한 구간에 수익률이 집중되는 펀드를 잘못 가입하면 시점에 따라 전체 펀드 성과는 좋아 보이더라도 수익률이 저조한데 그런 걱정 안해도 된다는 것.
그에게 종목을 고르는 원칙을 물었다.
“우리는 장기 성장성을 고려해 종목을 고른다. 3~5년 지속해서 성장하는 회사라면 좋다. 가령 3년에 2배 정도 성장한다면 매수 대상이 될 것이다. 단기적 변동성은 생각하지 않는다.”
박 팀장은 “시장에선 매일 다양한 정보가 들어온다. 우리는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성장성이 훼손되는지 여부를 본다”면서 “우리의 장점은 팀제로 운용하는 것이다. 팀에서 협업해서 운용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좋은데 리서치팀도 좋다.”
그러나 박 팀장은 “펀드를 팀에서 함께 운용하기는 하지만 결코 경직되지는 않고 담당 펀드매니저의 자율과 권한이 최대한 유지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퇴직연금펀드는 어떻게 운용하는 게 좋은지를 물었다.
“각 사가 지금 퇴직연금펀드를 유치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원칙이나 프로세스는 비슷할 것 같다. 다만 우리 펀드의 장점은 오랜 기간의 트랙 레코드가 있고 또 그것이 좋다는 것이다. 장기간 일관성을 유지하는 회사는 많지 않다. 우리는 긴 기간 동안 펀드매니저를 교체하지 않고 일관되게 운용한다. 여기서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실행이다.”
그는 특히 “퇴직연금펀드는 단기성과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1~2년 후 찾을 자금이 아니고 5년이고 10년이 지난 뒤 판가름 나는 상품이다. 게다가 1~2년 수익률이 10년 후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운용사들도 10년을 맡길 수 있는 프로세스를 찾아야 한다. 1년 뒤에 부진한 것은 괜찮다. 3~5년 뒤 좋아질 종목이라면 편입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의 변동성은 언제든 있기에 타깃을 길게 잡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10~20년 후 100%, 200%의 수익률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퇴직연금의 운용 목표는 작은 이익이 아니라 큰 수익이다.”
뒤가 아니라 5~10년 뒤
삼성자산운용의 ‘삼성퇴직연금액티브증권펀드’는 91.02%로 3년 수익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김경훈 수석은 “내 퇴직금도 여기에 들어 있다”는 말로 어떤 자세로 펀드를 운용하는지를 설명했다.
김 수석은 “우선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시장 흐름에 운이 따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것은 운용 프로세스와 철학을 잘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고수익의 비결을 설명했다. 한 해뿐 아니라 각 연도별로 모두 펀드의 수익률이 좋은 게 운만은 아니란 얘기다.
그는 양호한 수익률을 내기 위해선 지켜야 할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로 기본적으로 팀워크를 중시하는 운용을 한다. 본부 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종목편입 여부를 결정한다. 두 번째로 종목 편입에도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우선 성장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는데 성장곡선이 구조적으로 변하는 종목을 찾는다. 다음으로 턴어라운드 기업의 주식을 사는데 다운사이드 국면이 끝나고 실적이 상승하는 기업을 산다.”
그는 특히 몇 년씩 계속 투자할 것이기에 장기로 보고 좋은 종목을 찾는다고 했다. “우리의 장점은 하나의 본부에서 운용하고 있기에 운용 철학이나 운용프로세스의 연속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펀드매니저가 바뀌더라도 운용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된다. 특히 펀드의 자산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자산증가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자산이 누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처음 100억원으로 운용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2000억원대가 됐다. 회사에서 주력하는 펀드란 점도 투자자들에게 유리하다.”
현시점에서 보는 리스크 요소들을 묻자 그는 “시장은 전망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우리는 기업의 변화를 주로 본다. 시장을 예측하지 못하기에 예측 가능한 기업에 집중한다. 이런 전략이 효과적이란 점은 우리 실적이 말해준다. 지수가 역사적 고점에 올랐던 지난 2007년 10월 말 이후 우리는 37%의 초과수익률을 올렸다. 당시부터 지금까지 지수가 10% 정도 하락했으나 우리 펀드의 절대수익률은 27%이다. 이는 시장을 보는 것보다 종목 선정이 중요하다는 우리의 철학이 유효함을 보여주고 있다.”
김 수석은 “회전율은 연 100% 이내다. 한 종목을 편입하면 보통 1~2년은 간다”면서 “액티브 퇴직연금펀드 운용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고 있는 종목도 있다. 계속 성장하는 회사이면서 계속해서 기대치를 맞춰주는 곳이라면 당연히 보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퇴직연금펀드라면 어떻게 운용해야 할까.
“퇴직금을 기반으로 운용하는 펀드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연히 길게 봐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퇴직금을 운용하는 것이기에 다운사이드가 제한돼야 한다.”
가령 시장이 10% 오를 때 15% 오르고, 시장이 10% 빠질 때 15% 빠진다면 좋지 않다는 것. 그 보다는 시장이 10% 오를 때 12% 정도 오르더라도, 10% 빠질 때 4~5%만 빠지는 게 좋은 종목이라고 한다. 펀드 성과도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 작년 8월 화학주와 자동차주가 급락할 때 우리 펀드는 오히려 좋았다. 종목 편입에서 이런 원칙을 준수했기 때문이다. 나는 ‘차·화·정’이나 ‘전·차’니 하는 말을 싫어한다. 그것은 기업이 아니라 시장의 유행을 말하는 것이다.”
김 수석은 역발상으로 이런 종목이 뜰 때 자신은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보았다고 했다. 그래서 7월 이후 화학주가 급락할 때 화학주를 전혀 보유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찍이 이들 종목의 비중을 줄여 성과를 냈다는 것. 지금도 그는 그런 종목들의 주가가 떨어졌지만 그쪽을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지만 아직도 그보다 좋은 종목이 많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