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연준이 빅컷(기준금리 0.5%P 인하)을 단행한 이후 주식시장은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긍정적인 경제지표가 연이어 발표되며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최근 한 연설회를 통해 최근 미국 경제 호조세와 인플레이션 데이터를 보면 ‘점진적인’ 금리 인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체적인 데이터를 보면 9월 회의 때보다 금리 인하 속도를 더 신중하게 해야 함을 가리키고 있다”라고 밝혔다.
연설 후 진행된 토론에서도 월러 이사는 미국 경제가 적정 수준에 있으나, 최근 발표된 미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치를 상회하는 등 물가상승률이 냉각 추세를 이어가고 있지 못한 데 대해선 ‘실망스럽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경제지표를 보면 큰 경제 침체 징후는 거의 없고, 노동시장은 상당히 ‘건강하다’라고 평가한 월러 이사는 “실업률이 4.1% 수준에서 소폭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연준 목표치인 2%로 떨어지는 등 예상대로 물가·고용 지표가 전개된다면, 연준이 더 이상 의도적인 속도로 금리를 인하할 필요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연말까지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는 FOMC는 11월과 12월 총 두 차례 남았다. 연준 기준금리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기대를 대변해주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에 따르면, 내달 회의에서의 스몰 컷 단행 가능성은 80% 이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외에 시장은 동결 가능성도 주시하고 있다. 연준이 내달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변동하지 않을 기대감도 13%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17일(현지 시각)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미국 소매 판매는 계절 조정 기준 전월 대비 0.4%P 증가한 7144억달러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 0.3%P 증가와 지난달 증가 폭인 0.1%를 모두 웃돌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7%P 증가한 수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동차와 휘발유를 제외한 소매 판매는 0.7%P 증가해 시장 전망치인 (0.3%P)와 8월의(0.3%P) 수치를 크게 웃돌았다.
고금리 장기화와 물가상승 추세 속에서도 소비자들이 탄탄한 지출을 이어가면서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강력한 회복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셈이다. 10월 말에 예정된 핼러윈 데이를 시작으로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연말 쇼핑 시즌에 돌입하면서 미국의 소비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9월 지표에 이어 연말까지 소매 판매 지표가 증가하며 다시 물가가 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미국 대선이 3주도 남지 않은 가운데 7대 경합 주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향후 물가상승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제 공약에서 강조하는 관세 인상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의 핵심인 소비가 건강하다는 신호에 미국 국채 수익률은 껑충 뛰어오르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10월 19일 장 마감 기준 7월 말과 비슷한 수준인 4.075%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모건스탠리 자산운용의 엘렌 젠트너 상무이사는 “최근 데이터는 경제 전반에 걸쳐 부인할 수 없는 강세를 보여준다”라고 평가하며 “강력한 데이터는 11월에 금리를 다시 인하하는 것에 있어서 연준 위원들 사이에서 반발을 일으킬 수 있지만 제롬 파월 의장은 꾸준히 0.25%P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물가에 이어 연준의 1급 관리 대상으로 떠오른 노동지표는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 노동부가 발표한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경기 침체 우려를 완화했다. 10월 6~12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 대비 1만 9000건 줄어든 24만 1000건으로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다. 최소 2주 이상 실업수당을 청구하는 계속 실업수당 건수도 전망치를 밑돌았다.
이러한 지표에 힘입어 현재 달러화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4년 반 만에 인하했음에도 달러화 강세가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이례적이다. 유로·엔 등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7일(현지 시각) 103.77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 8월 1일 (104.42)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강달러 현상은 미국이 금리 인하에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한 영향이 크다. 연이어 발표한 미국 경제지표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이날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인하하며 유로가 약세를 보인 점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최근 들어 급격히 떨어지는 유로화 가치는 유럽의 경기 침체 우려와 맞물려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6월과 9월 잇달아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예금 금리를 0.25%씩 내려 경기 침체 위험에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도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최근 기존 0.9%에서 0.8%로 하향 조정되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몇 분기 동안 내수 기여도가 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금리 인하로 제한적인 통화정책 효과가 사라지면서 소비와 투자가 뒷받침될 것”이라고 추가적인 금리 인하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미국 서부산텍사스유(WTI)가 70달러 선 밑으로 내려오며 경기 침체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10월 19일 장 종료 기준 미국 서부산텍사스유는 배럴당 69.3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날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도 전 거래일 대비 1.39달러(1.88%) 떨어진 배럴당 73.06달러에 장을 마쳤다.
최근 이스라엘의 이란 석유 시설 타격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내림세가 세계 경제의 정체·위축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석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유가 내림세를 방어하지 못한 상황은 중국의 경기 침체를 보여주며, 이것이 세계 경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이 최근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음에도 수요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하자, 세계 원유 공급량이 원활히 소화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지난해 수요 상승분의 70%를 뒷받침했으나, 올해는 상승분의 20%만 지지하고 있다”라며 중국을 석유 수요 둔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에 덧붙여 “최근 중국의 경기 부양책이 소비를 촉진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라고 부연했다. 중국 재정부는 최근 금리 인하와 국채 발행 확대 등 잇따라 경기 부양책을 내놓고 있으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제기관과 투자 은행들은 내년에도 중국 경제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부진한 소비와 고질적인 부동산 시장 둔화가 내년에도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올해 연간으로 4.8% 성장할 것이며, 내년엔 4.5%로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은행(WB)은 잇따른 경기부양책에도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4.3%에 그칠 것이라고 봤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이날 “중국 경제는 더 이상 수출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소비 주도형 경제 모델로 전환하지 않으면 성장 둔화 위기가 불가피하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경제 둔화에서 서둘러 빠져나오지 못하면 원자재 시장 이외에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중국의 디플레이션이 수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세계 수요에 의존해 (디플레이션 수출로) 경제를 되살리려고 한다면 세계 경제에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러한 영향력은 서방 국가들보다 최근 10년간 무역 관계가 급증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경제 분석 업체인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중국의 공장 생산량 감소는 한국, 일본, 대만의 대중국 첨단 중간재 수출도 위협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70호 (2024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