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아트다!] AI·메타버스·블록체인 만난 아트, MZ세대 등에 업고 예술시장 트렌드로
박지훈 기자
입력 : 2022.08.31 14:15:38
수정 : 2022.08.31 14:15:56
아트테크(Art-Tech)라는 단어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트를 수단으로 한 재테크’의 의미로 사용되는 곳이 한국이다. 재무(財務)와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결합한 기괴한 혼용어가 고상한(?) 아트에 접목된 결과다. 역사적으로 주류 예술계에서는 예술에 기술(Tech)을 더한 새로운 장르를 아트테크라고 규정한다. 예술가들이 예술적 생산을 늘리거나 예술가의 창의성 범위를 넓히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 행위 외에도 예술 세계 생태계 전반에 걸쳐 수집가 및 기타 이해 관계자와 디지털 방식으로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지칭하기 위해 아트테크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러한 의미의 아트테크는 급격하게 성장했다.
아트시장이 중·장년층 ‘큰손’ 중심으로 흘러가던 시장에 MZ세대가 등장하며 투자 평균연령이 크게 낮아지고, 업계에서도 ‘억’ 소리 나는 대작뿐 아니라 신진작가들이 그린 수백만~수천만원대의 합리적인 가격의 작품들을 조명하며 거래가 활성화됐다. 새롭게 등장한 아트테크에 신기술에 익숙한 MZ세대가 손을 잡아 주면서 예술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인공지능 화가 ‘달리2(DALL-E 2)’가 그린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모작. 가운데는 원본.
▶금융사 손잡은 조각투자 수익률은 ‘글쎄’
수억원에서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미술작품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컬렉터는 많지 않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구매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소액으로도 유명 미술작품을 소유하고 시세차익도 노릴 수 있다. 2018년 이후 등장한 아트 조각투자 플랫폼의 탄생 배경이다. 대표적인 아트테크 플랫폼에는 테사, 아트앤가이드, 아트투게더, 쏘투 등으로 미술 시장의 외연을 확대한다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투자 방식은 플랫폼마다 다소 다르다. 아트앤가이드의 경우 미술품을 직접 매입해 전체 소유권의 5~10%를 자사가 확보한 뒤 나머지 90~95%를 회원에게 판매한다. 최소 투자 금액은 1만원으로 3000만원 이하 작품의 경우 최소 1만원부터 최대 10만원까지 투자할 수 있다. 가격이 3000만원 초과~1억원 이하인 작품에는 10만~100만원, 1억원 초과 작품은 100만~2000만원을 투자할 수 있다. 아트앤가이드는 모든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위변조 위험을 막고 있다. 소투와 테사의 최소 투자 금액은 1000원, 아트투게더에서는 최소 1만원부터 작품 가격 전액에 해당하는 금액까지 투자할 수 있다.
조각투자 플랫폼은 MZ세대의 호응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 테사는 올해 상반기(1월 1일~6월 29일) 신규 회원이 7만9266명으로 지난해보다 457%나 늘어난 수치다. 각 플랫폼이 유치한 투자금도 상당하다. 아트앤가이드의 운영사 열매컴퍼니는 지난 3월 170억원대 투자를 유치했다. 테사는 지난해 52억원, 올해 20억원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조각투자 플랫폼 ‘테사’
지난 4월 금융당국이 조각투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제재에 나서자 업체들은 소비자 보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주로 금융사와 손잡거나 전문가를 영입하며 플랫폼의 완성도를 높이는 형태다. 테사는 NH농협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고객 예치금을 은행에 분리 보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 부동산 조각투자 업체들이 예치금을 분리해 안정성을 높인 방식을 빌린 것이다. 대기업과 제휴를 통해 판매방식의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아트앤가이드가 롯데렌탈의 렌털 플랫폼 ‘묘미(MYOMEE)’와 손잡고 ‘요즘 투자, 아트테크’ 기획전을 오픈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공동구매 방식과는 달리 인수형 장기(분할 납부)로 구매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조각투자 플랫폼의 수익률은 어떨까? 3사의 플랫폼 수익률을 살펴본 결과 작품별로 4%에서 40%까지 다양하다. 플랫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매각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대략 1년 내외다. 현물 미술 투자에선 매각까지 10년 넘게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인 점을 생각하면 평균 보유 기간 1년이 긴 편은 아니다. 다만 조각투자자는 현물을 보유하지 못해 온전한 보유가 어렵고 플랫폼의 역량에만 기대야 한다는 점은 단점이다. 경매 형태로 소유권을 거래하는 시장에서는 작품 33개 중 3개를 제외하고 전부 가격이 구매가(1개 1000원)보다 낮게 형성돼,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어 소비자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실제 미술품 조각투자 사업을 접은 곳도 있다. 피카프로젝트는 공동구매를 중단하고 남은 작품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3월 이 회사 소속 김순응 아트디렉터는 “미술품 공동구매는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이 될 수 없다. 끊임없이 수익을 내는 작품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피카프로젝트 관계자는 공동구매를 중단한 이유로 “조각투자 사업을 이어가면 자본시장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라며 “현 정부에서 조각투자 규제를 강화하는 만큼 명확한 기준이 나올 때까지 사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더비가 메타버스 전시에 투자한 이유
메타버스(Metaverse)의 등장은 디지털 가상 전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가상 전시(Virtual Exhibition)는 디지털 형식을 취하는 예술 데이터가 점차 쌓이면서 자연스레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글아트앤드컬처(Google Arts & Culture)나 유로피아나(Europeana)가 보여주던 2차원 웹 기반 전시로 시작해 특별한 체험에 집중한 3차원 형식의 360기반 영상,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AR) 콘텐츠 전시 등으로 이어졌다. 나아가 그 형식은 각종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Youtube) 플랫폼으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그중에서도 3차원 공간의 디지털 전시는 기획자, 큐레이터들에게 가장 유용했다. 이들은 아트 스텝스(Art Steps)와 같은 디지털 전시 저작 시스템 혹은 자체 플랫폼 등을 통해 디지털 전시품 데이터베이스를 업로드하고, 3차원 공간 모델에 배치하여, 정보를 입력하고, 전시를 오픈한다. 하지만 메타버스 플랫폼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 가상 전시 목적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는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단순히 전시를 통한 실물 미술품 판매를 넘어 디지털 콘텐츠 자체의 소유 개념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미 수만 개 이상의 픽셀이 몇 백억달러를 넘는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목격했다.
영국 경매회사 소더비(Sotheby's)는 지난해 이미 메타버스 전시를 통해 1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소더비가 선택한 메타버스 갤러리는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다. 실제 소더비 런던 전시장 외형을 똑같이 옮긴 가상공간에 만든 전시장 내부로 입장해 경매를 진행하고 NFT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까지 할 수 있다.
소더비 메타버스 전시.
네이버Z의 제페토(ZEPETO)는 2020년 5월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들을 전시하는 ‘버추얼 미술관’을 개관하기도 했다. 예술작품 자체의 미적 감상이 가능한 고품질 픽셀 이미지를 전시했다기보다는 화려하고 웅장한 가상공간에 배치된 몇몇 대가들의 작품 2차원 이미지를 건 전시장이다. 2개 층 7개의 전시실로 구성된 제페토 버추얼 미술관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에 역사적인 작품들을 남긴 대가 17명의 회화와 조각상 등 작품 69점을 만나볼 수 있다. 사용자들은 친구들과 함께 미술관 내 다양한 포토존에서 특정 제스처나 자세를 선택할 수 있다. 실제 현실 세계에서 행동하는 부분과 트윈되어 셀피모드 등을 통해 사진을 공유, 저장, 피드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또 다른 메타버스 전시 플랫폼인 스페이셜(Spatial)은 기획자 혹은 아티스트들이 직접 자신만의 가상 갤러리를 만들 수 있으며 방문한 새로운 청중과 실시간으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다. 가상 미술관 VOMA(Virtual Online Museum of Art)는 가상 구매 공간까지 구축하여 실제로 사용자가 작가 작품과 관련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이는 마치 미술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의 필수 코스인 아트숍을 연상시킨다.
▶AI 화가의 그림 예술성 논란에도 11억원에 판매
지난해 12월 스페인에서 개발된 AI ‘보토’의 작품 4점이 NFT로 발행돼 약 11억원에 팔렸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3월 휴머노이드(인간형) AI 로봇 ‘소피아’가 아예 로봇팔로 붓을 잡고 인간 화가와 함께 그린 작품은 NFT로 발행돼 68만8888달러(약 8억원)에 판매됐다. 소피아는 “인류를 파멸시킬 것”이란 발언으로 유명해진 홍콩 핸슨로보틱스의 로봇이다.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에드먼드 데 벨라미의 초상화’라는, 프랑스 예술단체 ‘오비우스’가 만든 AI가 그린 그림은 43만2500달러(약 5억원)에 낙찰됐다.
인공지능(AI)이 그린 그림이 소더비와 함께 세계 양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경매소에서 43만2500달러(약 5억원)에 낙찰됐다.
예술성 논란을 차제하고 이미 AI의 예술 분야에 대한 도전은 시작됐다. 지난 8월 8일 카카오브레인은 시아의 첫 번째 시집 <시를 쓰는 이유>를 출간했다. 시아는 카카오브레인의 초거대 AI 언어 모델 ‘KoGPT’를 기반으로 개발된 시를 쓰는 AI 모델이다. 주제어와 명령어를 입력하면 시아가 입력된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곧바로 시를 짓는다. 시 한 편을 완성하는 데 1초 정도면 충분하다.
카카오브레인이 앞서 공개한 AI 아티스트 ‘칼로(Karlo)’는 특정 키워드와 화풍을 입력하면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AI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 하나의 작품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LG의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미국 스타트업 오픈AI의 ‘달리2(DALL-E2)’ 등도 주제를 던지면 맥락을 이해해 실제 사람이 그린 듯한 이미지를 내놓는다. 올 4월 정식 공개된 달리2는 오브젝트를 넣을 위치를 글로 입력하면 해당 오브젝트의 위치까지 바뀐다. 빛과 그림자, 질감도 문자로 입력해 수정하고 이미지 원본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MS는 렘브란트 미술관과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와 함께 ‘넥스트 렘브란트’라는 AI를 만들었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미술계를 이끌었던 화가 렘브란트의 화풍을 재현해, 그가 실제로 그린 것 같은 초상화를 만들어내는 AI다.
연구팀은 300점 이상의 렘브란트 작품을 3D 스캔해 디지털 파일로 만들며 AI를 학습시켰다. 렘브란트가 초상화를 그릴 때, 물감으로 어떤 질감을 살려냈는지 그 두께와 붓의 방향까지 분석해 똑같이 그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넥스트 렘브란트는 렘브란트의 화풍을 쏙 빼닮은 그림을 그려냈다. 이미 개인전을 연 AI도 있다. 직접 연필과 붓,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AI 아티스트 로봇 ‘아이다(Ai-Da)’는 2021년에만 두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데 AI가 만든 작품을 ‘창작물’로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다. 국내 저작권법에서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미술 업계 관계자는 “AI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담긴 창작물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미술계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지만 이미 시장성은 확인한 셈”이라며 “다양한 스토리 경쟁과 기존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시장이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