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K아트다!] ‘1조원 시대 눈앞’ K아트 시장, 경매부터 NFT까지… 미술 대중화 ‘활짝’
안재형 기자
입력 : 2022.08.31 11:23:41
수정 : 2022.08.31 11:34:08
올 미술 시장은 단단히 벼른 아트페어들이 줄줄이 개막하며 장밋빛으로 출발했다.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국내 미술 시장의 성장세는 여전했다. 지난 3월 16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개막한 2022 화랑미술제는 올 미술 시장의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었다. 결과적으로 약 177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개막에 앞서 “올 화랑미술제의 매출은 작년보다 2배 정도, 전체적인 미술 시장은 작년의 3배 정도로 성장하지 않을까 한다”던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의 전망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실제 매출은 기존 최고 기록이던 지난해 72억원을 2.4배나 훌쩍 뛰어넘었다. 관람객도 5만3000여 명이 몰리며 기존 최대 기록이던 지난해 4만8000명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특히 올해는 화랑협회의 신진작가 육성 프로그램인 ‘줌인’ 세션에서 오지은·이상미 작가 작품이 빠르게 팔리는 등 전년보다 호응이 뜨거웠다. 미술계에선 “초보 MZ세대 수집가들이 가격 부담이 적은 신진작가의 작품에 투자하고 있다”며 새로운 수집가들의 유입에 고무되기도 했다.
한 달여 뒤인 4월 7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11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에선 백화점 명품 매장에서나 보던 오픈런이 펼쳐지기도 했다. 아트페어 첫날 오후 3시로 예정된 VIP 오픈행사에 오전 10시부터 사람들이 몰리며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된 것. 화랑미술제에 모습을 드러낸 MZ세대들이 부산에서도 초보 수집가로 참여하며 개막 무대를 장식했다.
BAMA 또한 매출액 25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관람객 수 2배(10만 명), 매출액 4배라는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아트페어 첫날 판매액이 70억원이나 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미술 시장의 호황과 국내외 우수 갤러리 확보, 새로운 수집가 유입이 이뤄낸 성과”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투자처로 미술 시장이 부상하면서 기존 수집가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비층인 MZ세대가 유입되며 외연이 확장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BAMA에서 판매 성적이 도드라진 작가들 중에는 호당 20만원 안팎의 신진작가가 많았다. 올 화랑미술제처럼 가격 부담이 적으면서 미래 가치를 염두에 둔 투자나 구매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또 에스더 시퍼, 쾨닉 등 세계적인 갤러리를 포함해 국제갤러리, 가나아트 등 국내 정상급 갤러리들이 부스를 마련하며 우량한 수집가들을 대거를 확보한 점도 주효했다.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2 부산국제아트페어에서 관람객들이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올 상반기 미술 시장 규모 약 5329억원
이렇듯 올 상반기 국내 미술 시장은 MZ세대가 참여한 아트페어들이 줄줄이 성공을 거두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 미술 시장 규모는 약 5329억원으로 추산됐다. 경매 시장 1450억원, 아트페어 1429억원을 토대로 유통 영역(화랑, 경매회사, 아트페어) 기준 약 5329억원, 여기에 NFT 등 분할소유권 시장(310억원)을 포함하면 5639억원이나 된다.
국내 미술 시장은 2019년 3811억원에서 2020년 3277억원으로 규모가 줄기도 했지만 2021년 9157억원으로 급속하게 성장했고, 올해도 완만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미술시장정보시스템 측은 “하반기에는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 서울’이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과 동시에 개최되는 등 한국 미술 시장의 성장과 국제화가 촉진되며 다수의 전문가들이 1조원의 문턱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상반기 미술 시장 관련 기사에 다수 노출된 키워드를 바탕으로 미술 시장의 주 소비자로 등장한 MZ세대와 그들의 소비행태, 시장의 호황과 미술품 투자 관련 내용, 키아프와 프리즈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키아프 서울 2021 행사장.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전통적인 미술 분야 외에 분할소유권과 NFT 아트 등에 대한 관심이 늘며 온라인 미술 시장의 성장세도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분야에 익숙한 MZ세대의 미술 시장 진입이 만든 또 하나의 새로운 풍경이다. 여기에 유통과 패션 분야도 미술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며 규모를 키웠다. 특히 백화점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미술품 전시·상설 판매사업을 시작하며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고 있다.
▶아트에 진심인 백화점, 예술품 사고파는 공간으로
고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백화점이 예술품을 사고파는 이른바 아트 비즈니스 공간으로 변신한 데는 역시 국내 미술 시장의 성장세가 큰 역할을 했다. 미술품이 백화점을 찾는 MZ세대부터 VVIP까지 공통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예술품 투자에 적극적인 우량 고객을 유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3사 중 가장 적극적인 곳은 신세계다. 신세계는 최근 신세계백화점 광주점을 증축해 매머드급 쇼핑몰로 확장하는 사업을 발표하며 ‘아트 앤 컬처 파크’로 명명했다. ‘아트 앤 사이언스’라 명명한 대전점에 이어 두 번째로 백화점이란 명칭을 없앴다. 신세계 측은 “갤러리의 규모와 격을 미술관급으로 키우고 세계적인 수준의 체험형 아트프로젝트를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미술품 경매 사업 진출도 공식화되고 있다. 신세계는 올 1월 미술품 경매사 서울옥션 지분 4.8%를 약 280억원에 취득했다. 올 3월에는 서울옥션의 자회사이자 두나무와 NFT 사업을 벌이고 있는 서울옥션블루의 주식 20억원을 취득했다. 신세계는 지난 6월 자체 캐릭터 푸빌라로 ‘푸빌라NFT’를 선보이며 판매 개시 1초 만에 1만 개를 완판했다. 업계에선 (8월 22일 현재) 신세계의 서울옥션 인수가 임박했다고 점치고 있다. 지난해 8월 조직을 개편하며 아트 콘텐츠실을 신설한 롯데백화점은 당시 미술전문가 김영애 씨를 임원으로 영입했다.
롯데백화점 ‘디터 람스: 바우하우스에서 애플까지’ 전시회 사진.
최근 롯데백화점은 국내 유명 작가 20여 명과 함께 잠실, 동탄, 본점 3곳의 갤러리에서 350여 점의 수준 높은 공예 작품 전시를 진행했다. 특히 잠실 롯데갤러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최고급 갤러리로 변신했다. 공예트렌드페어, 밀라노 디자인위크에서 예술감독을 맡은 강신재 소장이 전시 기획과 공간 연출에 참여하기도 했다. 김영애 롯데쇼핑 아트콘텐츠실장은 “한국의 공예가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한국의 미(美)’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전시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2020년부터 문화콘텐츠팀을 운영하며 연 2회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전시·판매하는 ‘아트뮤지엄’을 진행 중이다. 전국 6개 점포에 ‘갤러리H(Gallery H)’를 운영하고 더현대닷컴을 통해서도 400여 개의 예술작품을 판매 중이다. 서울 시내 백화점의 전시 관련 관계자는 “국내 미술 시장의 성장 요인과 백화점의 갤러리 운영은 비슷한 점이 많다”며 “고가의 제품을 파는 공간이란 점부터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까지 유사해 앞으로도 문화·예술을 접목한 콘텐츠 발굴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낙관적 접근은 위험
그런가 하면 올 상반기 미술 시장은 이미 불황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보고서도 눈에 띈다. 최근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가 발행한 ‘상반기 국내외 미술 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경매사들의 구매 방향은 블루칩 작가의 작품으로 돌아섰고, 잦은 거래를 통해 빠르게 가격이 상승한 동시대 신진작가군의 가격 상승치는 지켜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센터 측은 보고서를 통해 “이미 올 1월 불황의 초입 단계에 이르렀다”며 “호황으로 보이는 경매사들의 매출 총액을 들여다보면 소수 저명인사의 컬렉션 경매로 최고 매출 기록이 달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경매 시장에 대해선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열린 경매에 매번 여러 점 출품됐던 고(故) 김창열 화백의 작품들은 1년을 버티지 못했다”고 밝혔다.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국내 화단의 거장 고 김 화백의 작품은 지난해 2분기 국내 경매 낙찰 총액이 60억원을 넘겼지만, 올해 2분기에는 10억원대로 낮아졌다.
고 김창열 화백의 'Composition with Water Drops'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측은 “1년 반의 짧았던 호황 시장은 끝이 나고, 한껏 가격이 오른 작품들이 엄격한 잣대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술 시장의 호황 주기는 평균적으로 10년”이라며 “다시 호황이 찾아왔을 때 투자 포트폴리오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소장품을 다시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는 기회를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상화폐 폭락과 주가 하락, 금리 인상 등의 여파는 미술 시장도 피해갈 수 없다”며 “하반기 미술 시장을 무조건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