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부터 메타버스까지 토큰 이코노미가 뜬다] 게임하며 돈 버는 ‘P2E’ 플랫폼 구축·코인 발행 각축전
김병수 기자
입력 : 2022.04.04 15:03:07
수정 : 2022.04.04 15:03:35
게임하면서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 P2E(Play to Earn)는 ‘토큰 이코노미’의 대표 격이다. 게임에 쓰이는 돈을 가상화폐로 전환해 게임 내 경제활동이 실물경제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암호화 기술이 적용된 NFT(대체불가능토큰) 역시 게임 내 아이템과 부동산을 가상자산으로 만들어 거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내에선 사행성을 이유로 아직 본격적인 출시가 힘들지만, 해외에선 액시인피니티(Axie Infinity) 등 800개 이상의 P2E 게임이 서비스 중이다. 액시인피니티는 NFT 거래액이 40억달러에 육박한다.
토큰 이코노미에서 게임의 중요성이 커진 이유는 팬데믹을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주류 산업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비대면 사회가 고착되면서 집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데다 메타버스가 차세대 기술 겸 플랫폼으로 떠오르면서 게임이 최적화된 콘텐츠로 각광받게 된 것이다. 그러자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구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빅테크들도 유명 게임사를 인수하거나 새 게임 서비스 플랫폼을 출시하는 등 저마다의 전략으로 게임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이 지난 1월 신작 발표회에서 블록체인 게임을 발표하고 있다.
P2E 게임은 토큰 이코노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용자는 게임을 플레이해 재화(게임 아이템)를 얻은 후 재화를 토큰으로 교환할 수 있다. 교환한 토큰은 상장된 거래소에서 현금화가 가능하다. 또한 토큰을 이용해 이용자 간에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도 있다. 이에 이용자 간 자발적인 경제 생태계 형성이 가능하다.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게임사들에게 토큰 이코노미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토큰 이코노미와 블록체인 생태계가 어떻게 구성됐고 얼마나 정교한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게임 재화의 가치, 게임 재화와 토큰의 교환 비율, 토큰의 가치, 토큰의 거래소 상장, 토큰의 수요와 공급 등 다양한 요소들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이상적인 토큰 이코노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촘촘한 토큰 생태계 뒷받침돼야
국내에서도 주요 게임사들이 가상자산(암호화폐)을 앞세워 신규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P2E 방식으로 변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게임의 본질인 재미와 함께 수익이라는 당근을 게임 이용자에게 안겨주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위메이드, 컴투스,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네오위즈 등 다수의 게임사들이 관련 시장에 뛰어들었다. 게임사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 토큰 이코노미를 구축하고 생태계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중심의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르면서 국내 게임사들은 새로운 수익모델 활로 찾기에 고심 중이었다. 이용자들은 게임하며 돈을 벌 수 있고, 게임사는 사용자 저변을 확대하고 아이템 거래소를 운용하며 광고나 수수료 수익도 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은 지난 1월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는 넷마블이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화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신작 라인업 20개 중 70% 이상에 블록체인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외 출시 예정인 ‘모두의 마블: 메타월드’는 넷마블의 히트작인 부동산 거래 게임 ‘모두의 마블’에 NFT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게임 내 부동산을 NFT로 사고팔 수 있게 만들었다. 넷마블은 더 나아가 게임 경제와 연결된 자체 가상화폐 발행과 상장(ICO)까지 고려하고 있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코인 리워드는 게임 사용자의 몰입도를 높여 사용자 평균 매출(ARPU) 상승과 게임 지속성을 높이는 새로운 수익모델로 주목 받고 있다. 매출처 다변화에 따른 기업가치 상승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게입 업체 ICO 통해 자금 마련 ‘논란’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사행성을 우려로 블록체인 게임의 등급 분류를 확정하지 않고 있어 논란도 지속되고 있다.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한 가상화폐를 팔아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인수·합병(M&A)에 나서겠다고 공식화하면서부터다. 특히 위메이드는 회사가 발행한 가상화폐(위믹스)를 예고 없이 대량으로 처분해 투자자들을 골탕 먹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받았다. 이에 대해 위메이드 측은 위믹스 유동화 정책(보유한 위믹스를 시장에 매도한 것)은 위믹스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고 해명했다. 향후 위믹스 가격 변동을 촉발할 주요 내용을 공시하고 위믹스 가치를 올리기 위해 위믹스 코인을 소각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가상화폐 매도를 확보한 재원을 P2E 생태계 확장과 선점에 공격적으로 재투자해 증시에 상장된 회사의 가치와 코인 가치 모두를 끌어올리겠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엇갈린다. 자금을 확보해 플랫폼 영향력을 확대하면 장기적으로 코인 가치도 올릴 수 있다는 게 찬성 쪽 의견이다. 반면 투자자 보호 미흡과 규제 가능성 등은 상당한 리스크이고 시장에 혼란을 주는 행위라는 반론도 있다. 업계에서는 증시에 상장하는 기업공개(IPO)보다 자금 확보가 수월한 ICO를 ‘화수분’으로 활용하는 회사가 더 생겨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는 가상화폐 발행 주체가 부당한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이유로 ICO가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 가상화폐를 발행해 국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 위탁판매 형태로 상장하는 우회 전략을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발주자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컴투스와 넷마블은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코인(토큰)을 시장에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도 발표했다. 같은 맥락에서 그동안 다수의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토큰 이코노미를 외쳤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확률형 아이템 과대 과금 논란을 극복하지도 못한 채 블록체인 신사업에만 치중하면서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한 블록체인 사업은 이미 ‘레드오션화’돼간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가상화폐 발행 경쟁이다. 카카오게임즈(보라), 위메이드(위믹스), 컴투스(C2X), 넷마블(넷마블코인), 네오위즈(네오핀토큰) 등이 현재까지 코인을 발행했거나 발행할 예정이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가상화폐공개(ICO)에 나선 이유는 게임을 통해 메타버스, NFT 등 ‘토큰 경제’를 구현하고 이를 플랫폼 사업모델로 만들기 위해서다. 단순히 게임을 공급하는 공급자가 아니라 게임판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계를 만들어 P2E와 메타버스 생태계의 구글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플랫폼 시장은 승자 독식의 원칙이 가장 확실한 사업 분야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패자가 발행한 코인은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결국 시장의 성패는 양질의 콘텐츠(게임)와 안정적 플랫폼(가상화폐)에 달려 있고, 이 분야에서 게임사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태 동양대학교 교수는 “게임사들이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블록체인, NFT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데 무작정 나서고 있다. 코인 매도나 물량에 대한 변동이 있다면 주식처럼 알리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수 명지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최근 게임사들이 경제성을 통한 재미를 준다고 강변하더라도 결국은 본질적인 재미 요소를 벗어나 경제활동을 위한 노동으로 흘러갈 수 있다”면서 “(토큰과 결합돼) 재화의 가치 역시 더 떨어지면 노동의 강도도 점점 더 강해지게 되고 게임사들의 얘기와는 달리 제로섬(zero-sum)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