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난관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 고통과 난관에서 지혜를 얻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라 부르고 그들의 곡진(曲盡)한 서사에 감동한다. 대(大)위기를 극복한 기업 앞에 우리는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이고 그들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한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에 그런 대표적 사례가 바로 리튬일차전지를 만드는 비츠로셀이다.
2017년 4월 21일 충남 예산군에 있는 비츠로셀 공장. 대부분 직원들이 퇴근하고 당직 근무자만 남은 금요일 밤이었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출하할 배터리 제품을 사무동에 쌓아놓았다. 9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정확한 원인이 규명된 것은 아니나 누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쨌든 불씨가 배터리로 옮겨붙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쾅’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사무동 1층 제품 포장실에 설치한 CCTV가 시간을 기록했다. 22시 52분 30초.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배터리는 총알로 변한다. 이 동네 용어로 비산(飛散)한다고 표현한다. 날아가면서 흩어지는 배터리가 공장 옆 카페 유리창을 뚫었고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경비원은 소화기를 들고 포장실 불길을 진화하려 했으나 번지는 불길을 도저히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찰 내사 결과보고서에 기재된 시간이 2분. 그 불길은 공장 옆에 위치한 삼신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목격된다. 적지 않은 비츠로셀 직원들도 이곳에 거주했다. 예산소방서 전화통에 불이 난다. 경비원, 직원, 이웃 주민들이 119로 거의 동시간대에 전화를 걸었다. 접수 시간은 22시 54분. 화재 진압은 신속했다. 소방대원이 현장에 출동한 시간은 23시 07분. 신고를 받은 뒤 13분 만이었다. 그러나 진압한다고 진압될 화재가 아니었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을 파악하고는 인근 5개 소방서에 지원을 요청했다. 홍성, 당진, 서산, 아산, 천안서북 소방서가 곧바로 출동했다. 이렇게 소방에 나선 인력이 총 327명. 소방대 261명을 포함해 경찰 8명, 예산군청, 한전, 화학물질 안전원 등 유관기관 58명이 출동했고 44대의 소방장비가 동원됐다.
배터리 공장 화재라는 것이 그렇다. 주변으로 옮겨붙지만 않는다면 불은 순식간에 진압된다. 배터리 그 자체가 폭탄이나 다름없어 순식간에 공장을 다 태우기 때문이다. 더더욱 공장 내부에는 인화성이 강한 원·부자재가 많아 여기에 불이 붙으면 불길을 잡을 재간이 없다.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관들이 쉴 틈 없이 물탱크에 물을 호스로 뿌려댔지만 사실상 화재가 다른 곳으로 옮겨붙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주민과 직원 들은 모두 공장이 시뻘겋게 불타는 걸 지켜봐야 했다. 다음 날 새벽 4시 47분까지 그렇게 공장은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생산설비가 다 녹아 엿가락처럼 변했다.
필자가 비츠로셀 사고 소식을 안 건 화재 발생 1년이 지나서였다.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모이는 어떤 자리에서 사회자가 화재 참사를 딛고 일어선 장승국 대표에게 소감을 밝힐 기회를 줬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추가 취재를 했고 이를 바탕으로 <비츠로셀 화재 그 후 1년>이란 글을 썼다. 2018년 4월 17일자 매일경제신문에 <손현덕 칼럼>으로 실렸다.
사실 비츠로셀 화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년 반 전인 2015년 10월 6일에도 폐전지 보관 창고에서 큰 불이 난 적이 있다. 쇳조각 파편 등이 동네 마을까지 튀어 주민들이 공장을 옮기라고 아우성을 쳤다. 장 대표는 “분명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며 후회막급이었다.
“그 사고 이후 우리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크고 작은 사고를 겪을 때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폐전지 보관 방식을 바꾸고, 소방·방화 설비를 보강하고, 적치 기준을 강화하는 등 나름대로 대비하고 개선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건물의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건물 배치, 사무동과 공장 각 동 간 거리가 처음 설계 당시의 기준으로 고정되어 있다 보니 설비나 운영 기준을 계속 보완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지요. 부지도 5500평 정도로 작은 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과수원 아파트 등이 있어 사고가 날 경우 불안 요인이 컸습니다. 과수원 땅을 매입해 넓히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몇 년을 주인과 줄다리기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회사는 계속 성장했고 그래서 사업 확장 및 안전 등을 고려해 부지 이전을 고려하고 있던 참에 불이 난 겁니다.”
그러나 앞으로가 중요했다. 다행히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공장장이 잔불을 정리하다 손등에 경미한 화상을 입은 것이 전부였다. 장 대표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됐다.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엄청난 화재였습니다. 생산설비의 95%가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하룻밤 자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잃은 줄 알았는데, 정작 잃은 것은 하드웨어뿐이었습니다. 사람은 그대로였고, 기술도 그대로였습니다. 고객과 투자자도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소프트웨어였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돌이켜보면 전 세계 어떤 기업도 쉽게 해내지 못할 일을 해낸 셈입니다.”
토요일 아침까지 마지막 잔불이 정리되는 걸 지켜본 그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핵심 간부들과 복구 계획을 세우며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이틀 뒤 월요일이었다. 전 직원 앞에서 회사의 미래를 이야기하겠다고 약속한 날이었다. 최고경영자인 자신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거나 직원들에게 회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비츠로셀의 미래도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 그의 머릿속은 그 생각으로 가득했다.
악몽 같은 주말이 지나고 첫 월요일이 밝았다. 오전에 해외에서 찾아온 주요 거래처 고객이 한사코 면담을 요청해 그를 만나고 다시 예산으로 내려갔다. 아침에 제법 쌀쌀했던 날씨는 오후가 되자 전형적인 봄 날씨로 변했다. 높고 맑은 하늘에는 흰 구름이 떠 있었다.
공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별도의 건물이 하나 있었다. 도로 건너편에 있어 화재를 피할 수 있었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피트니스 센터와 카페,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건물 뒤편에는 약 500평 남짓한 공터가 있다. 공단 지역이었지만 공터 앞에는 모내기를 앞둔 논이 얕은 물을 머금은 채 거대한 거울처럼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그 위로는 높다란 송전탑 사이를 잇는 345kV 고압선이 길게 뻗어 있었다. 건물과 공터 사이에 우뚝 선 단풍나무 앞에서 장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후 2시였다. 250여 명의 직원들이 숨을 죽인 채 그의 입을 바라봤다.
“우리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여러분은 다치지 않았고, 나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자금이 있고, 기술이 있습니다. 고객이 있고, 그 고객의 신뢰도 있습니다. 자신 없는 사람은 회사를 떠나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을 내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1년 안에 회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데, 왜 여러분을 내보내겠습니까. 화재를 막을 골든타임은 놓쳤지만 복구의 골든타임은 놓치지 않겠습니다. 불이 났을 때 나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복구의 모든 순간에는 가장 앞에서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스피치 도중 작은 사고가 하나 터졌다. 장 대표 바로 앞에 있던 여직원 한 명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품질경영팀에 근무하는 김미소 사원이었다. 1주일 전부터 장염 증세가 있었는데 주말에 화재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갑자기 어지럼증이 생기고 의식을 잃었다고 한다. 다행히 맨땅에 넘어지지 않고 머리가 옆의 직원 신발에 닿아 불상사를 면했다. 김 사원은 “갑자기 대표님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다음은 전혀 기억이 없었다”라면서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라고 한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