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는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였다”라면서 “그래도 말로만 믿음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 수립에 바로 착수했다”라고 말했다. 모두 4개의 액션플랜을 준비했고 각각 그 임무를 맡길 책임자를 정했다. CEO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첫 번째 미션. 대내외적인 복구 계획 선언 및 수립. 일단 불타지 않은 맞은편 별도의 건물에 ‘워룸(War Room)’을 만들었다. 피트니스 센터와 카페가 있는 바로 그 건물. 작전 지휘 본부였다. 우선 전 세계 200여 개 고객사에 편지를 보냈다. 필요한 경우 콘퍼런스 콜을 했다. 직원들에게 스피치를 한 것과 같은 내용을 고객 버전으로 손질했다.
“6개월, 길어야 9개월 정도면 공장이 재가동된다. 1년이면 새로운 공장이 지어진다. 우리는 약속을 지킬 것이다. 당장은 다른 회사 제품을 쓸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면 미리 말해주겠다. 적어도 두 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된 상황을 알려주겠다.”
결국 비츠로셀은 정확히 1년 만에 돌아왔다. 그가 1년의 시간을 정한 데는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고객들이 기다리는 데도 한계가 있습니다. 1년이 지나면 그 뒤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고객을 붙잡기 위한 골든타임을 1년으로 본 겁니다. 우리의 경쟁사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고객을 만드는 데는 10년이고 15년이고 걸립니다. 그런데 잃는 데는 그리 오랜 기간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두 번째 미션은 공장 부지 계약. 현재 당진에 ‘찜’해뒀던 땅을 구입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가꾸는 작업. 그리고 별도의 공장을 하나 구입했는데 과거 리튬일차전지를 생산하던 기업이 사업을 접고 매물로 내놓았던 곳. 급한 대로 제품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화재가 난 다음 달인 5월에 바로 계약을 맺었다. 경기도 평택시 청북에 소재한 공장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이윤공 총무인사팀장은 “대부분 직원들이 기존 공장 근처인 예산에 거주했는데 여기까지 출퇴근하려면 1시간 30분이 걸렸다”라면서 “오전 6시에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9시가 넘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한다.
세 번째 미션은 임대공장 계약. 이 프로젝트도 이 팀장 담당이었다. 두 개의 공장을 빌렸다. 평택 오성면에 있는 140평 규모의 작은 중소기업 공장과 충남 당진 면천면에 있는 340평 규모의 공장이었다.
공장을 섭외했다고 해서 바로 제품이 나오는 건 아니다. 여기에 설비를 집어넣어야 한다. 공장을 세팅하는 일. 네 번째 미션이었다. 이걸 담당한 분이 당시 생산기술 담당 임원이었던 김종표 상무. 그는 “화재로 모든 자료가 소실됐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을 진행했다”라면서 “약 20개 협력업체에 사정사정해서 생산 장비를 서둘러 보내달라고 했다”라고 말한다.
“이들 업체들이 우리 것만 만드는 건 아니잖아요. 삼성SDI, LG엔솔 장비도 만듭니다. 한 기업은 우리 것을 일찍 만들어 주느라 삼성 납기를 놓쳤습니다. 삼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았지요.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나중에 우리가 계획보다 더 많은 주문을 주면서 보상을 해줬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건 공장 건물 자체였다. 완벽한 드라이(Dry) 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습도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가장 중요한 원재료인 리튬이 부식되기 때문. 임대공장은 물론 같은 업종이라 건물 자체는 손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던 청북공장마저도 원점에서 시작해야만 했다.
김 상무는 1년간의 고된 작업을 마친 뒤 병을 얻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장 대표가 극구 만류했지만 소용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인마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면서 더 이상 회사를 다니기 어려웠다.
은퇴 후 그는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을 실현했다. 수채화였다. 붓을 잡은 그는 전국 규모 대회에 출품해 입상할 만큼 솜씨를 뽐냈다. 그렇게 그린 작품 가운데 47점을 비츠로셀에 기증했다. 지금은 건강을 되찾아 활기찬 얼굴로 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의 한 리튬일차전지 제조업체 공장에서 불이 났다. 사고 시간은 오전 10시 31분이었다. 공장 2층에 쌓아놓았던 배터리셀 하나에 불이 붙으면서 주변으로 확산돼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사망 23명, 부상 8명. 총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장승국 대표는 이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현장을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이었는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다음 날 다시 한 번 안전에 대한 총점검에 들어갔다. 당진 스마트캠퍼스를 총지휘하는 이정도 제조본부장(전무)과 환경안전을 담당하는 강주하 부장에게 긴급 명령을 하달한다. “우리 공장에 존재하는 모든 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이에 따른 예방조치를 취하라”고. 이렇게 해서 17일간 총 141건의 아이템이 발굴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게 안전이었다.
가장 크게 바꾼 건 골든타임을 없앤 것.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다 보니 곳곳에 배터리가 적재된 장소가 있다. 지도에 그 장소를 빨간 원으로 표시하고 모든 직원이 숙지하도록 한다. 이 지역에서 불이 나면 “불이야”라고 세 번 외치고 무조건 대피한다. 장 대표는 “우리 회사 안전의 제1 원칙은 인명피해 방지”라며 “괜히 불 끌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바닥에 형광으로 표시한 안전 표시줄을 따라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배터리 제조 회사에 화재의 골든타임은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회사에 화재의 골든타임은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사실 비츠로셀은 화재 후 1년이 지난 2018년 4월 20일 새로 마련한 당진 스마트캠퍼스로 이주하면서 안전에 관한 한 엄청난 투자를 단행했다. 지난달 취재차 현장을 방문했는데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공장 건물에 두 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나 하나 다치면 재해율은 100%.’
‘위험은 예고 없이 오지만 안전은 예습으로 옵니다.’
공장 안을 둘러보면 그야말로 안전에 관한 구호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정신 사나울 정도다.
‘우리 일터의 안전은 나의 손에 달려 있다’, ‘안전은 행복한 일터의 최우선 전제조건’, ‘SAFETY FIRST’, ‘1. 나의 안전 2. 우리 동료들의 안전 3. 우리 회사 자산의 안전’, ‘안전 사고 방지 적용 설비’, ‘중량물 취급 주의’, ‘운전 중 개방 금지, 커버를 열기 전 장비를 정지하시오’, ‘끼임 사고 예방 이것만은 꼭 지켜주세요’, ‘적재된 배터리에 불이 났다면 불이야!(×3) 크게 외치며 즉시 대피’ 등등.
이뿐만이 아니다. 안전게시판이라는 걸 별도로 두고 여기에 매달 발행하는 ‘안전신문’과 공지사항, 작업 환경 측정 결과, 회사 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회의 결과, 안전보건 조직도 등을 붙여놨다.
이정도 전무는 “스마트캠퍼스는 안전한 공장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설계됐다고도 볼 수 있다”라며 “공장 설계는 물론 직원들이 출근하면 오전 8시부터 5분간 안전 교육을 할 정도로 몸으로 실천한다”라고 말한다.
먼저 공장 설계 부문. 핵심은 작업장은 모두 단층이다. 2층이란 게 없다. 강주하 부장은 “2층에서 일하다 화재 발생하면 대피할 방법이 없다”라며 “위험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는 작업장은 1층에 위치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작업장별 대피로는 최소 2~3개 확보, 정전 발생 대비 벽과 바닥에 비상구 방향으로 야광 유도선 설치, 자동 비상 조명등(개구리등) 설치, 유독가스에 질식하지 않도록 손수건 비치 등등.
강 부장은 “배터리가 적재된 곳은 초동대응 없이 무조건 대피할 구역으로 빨간 원으로 표시해 뒀다면 까만원 표시는 초동대응 후 골든타임을 놓치면 대피하는 구역이고 녹색 원은 일단 대피 후 보호구 착용 후 대응하고 골든타임을 놓치면 다시 대피하는 구역으로 구분했다”라며 “이런 걸 매달 훈련으로 숙지한다”라고 강조한다.
올해 입사 11년 차인 생산 2부의 김선애 사원. 그녀는 불이 나자 근처 집에서 차를 몰고 공장으로 왔다고 한다. “폭죽 터뜨리는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내 일터에서 불이 난 거예요. 다들 모여 있다고 하기에 저도 달려가 봤습니다. 밤새 불타는 걸 지켜보자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옆에 있던 어떤 부장이 울먹이면서 그러는 거예요. ‘저기 내 새끼 탄다’고. 그렇게 모두가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대비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매일 아침 5분간 하는 안전 교육이 즐겁습니다. 구호 외치고 스트레칭을 하거든요. 그러면 일도 잘되고요.”
이 전무는 “회사는 안전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각오로 적극적인 투자를 단행했다”라면서 “전체 매출액의 2.5%가량이 안전 분야 투자”라고 말했다.
장 대표가 밤새 불타는 공장을 지켜보며 가장 먼저 챙긴 것도 사람의 안전이었다. 그는 서너 차례 비상연락망을 돌려 연락이 닿지 않는 임직원이 있는지 계속 확인했다. 현장에서 마주치는 임직원들을 끌어안고는 말과 눈빛으로 “우리는 반드시 다시 살아난다. 살아날 것”이라고 다독이며 전의(戰意)를 불태웠다.
2017년 비츠로셀은 화재로 공장을 잃었다. 7년 뒤 경기 화성의 리튬전지 공장 화재를 보면서 다시 확인한 것은 하나였다. “공장은 다시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다시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손현덕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