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시달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서늘한 칼바람이 목을 위협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옷깃을 여밀 때가 되면 투자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배당주다. 올해는 특히 이벤트가 다양하다. 정부의 밸류업 지수 발표와 주주환원에 대한 업계와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며 배당 확대에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물론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되며 예·적금 금리가 떨어져 상대적으로 배당주 투자자금 유입도 진행되고 있다.
10월부터 배당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달콤한 배당수익률 외에 주가 상승 추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거 상장사들의 배당기준일은 12월 말에 몰려있었기 때문에 매년 10월부터 배당주가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배당기준일을 내년 1~2분기로 늦출 수 있게 됐다. 현대차, KB금융, 삼성화재 등 100여 곳이 배당기준일을 이사회에서 정하는 날로 정했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상법의 유권해석이 변경되면서, 2023년 결산 배당부터는 배당기준일을 12월 말에서 주주총회 이후로 미룰 수 있게 됐다”라며 “투자자로서는 배당금이 결정되기 전에 배당받는 투자자가 결정되는 순서가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더 이상 깜깜이 배당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도록 개선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즉 12월이 아닌 1분기로 배당기준일을 미룰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해당 종목들은 12월 배당기준일을 노리고 투자자금이 유입되며 상승 추세가 나타나던 추세에서 벗어난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배당기준일을 늦춘 기업이 많은데도 올해 연말을 앞두고 증권가가 배당주를 주목하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난달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한 영향이 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 금리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이자소득이 줄면서 배당소득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 9월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성장주가 강세를 보였지만, 장기적으로 시장 금리 하락 구간에서는 배당주의 성과가 (성장주보다)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배당수익률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난 1년 배당금을 기준으로 한 코스피200의 배당수익률은 2.1%로, 과거 10년 평균인 1.8%를 약간 넘어서는 수준이다. 코스피로 범위를 넓히면 올해 배당수익률은 1.9%로, 아직 2%가 되지 않는다. 부족한 주주환원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지수를 발표하는 등 주주환원에 열을 올리며 올 연말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최근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종목들의 배당수익률 수준이 여전히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100개 종목의 배당수익률은 평균 2.2%로 집계됐다. 이는 코스피200 지수에 포함되는 종목들의 평균 배당수익률(2.3%)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렇게 배당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선정 기준에 배당 ‘수익률’에 자사주소각 ‘규모’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는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의 주주환원 기준을 ‘최근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을 실시한 기업’으로만 정의하고 있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2년 동안 배당과 자사주 소각이라는 ‘이벤트’가 있었는지로 분류하다 보니 배당수익률이 0.1%인 기업과 5%인 기업이 모두 포함될 수 있었다”라며 “자사주 소각도 마찬가지로 주주환원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 요소의 변별력이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 발표 이후 지수에 들어가지 못한 일부 종목들은 오히려 편입된 종목보다 더 배당 매력이 뛰어난 종목이 많다. 금융주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와 통신주 SK텔레콤과 KT 등이 대표적이다.
KB금융은 업계 최초로 배당총액 기준 분기 균등 배당으로 미국처럼 분기 배당주로서 자리잡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4대 금융지주 중 최고의 총주주환원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총주주환원율은 배당과 자사주까지 포함한 주주환원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올해는 총주주환원율이 40% 대로 올라설 전망이다.
홍예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부터 보여준 총액 기준 균등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확대 같은 밸류업 중장기 계획은 주주환원율 확대와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나금융의 주주환원율 추정치 역시 37.1% 수준으로 준수한 편이다. 올 3분기 예상 순익은 1조 256억원으로, 1년 새 6.5%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하나금융의 배당수익률은 8일 기준 5.52%로 KB금융(3.51%) 보다 현 주가 수준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배당 수익성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통신주들의 배당 매력은 이미 외국인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 최근 외국인의 통신주 매수세가 강화되면서 보유 한도에 거의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은 정부가 외국인의 주식 보유 비중을 49%까지 제한하는 업종이다. 코스콤에 따르면 10월 17일 KT 주식을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 비율은 48.26%다. 이 비율이 48%를 넘어선 건 2019년 12월 이후 4년 10개월만이다. SK텔레콤도 외국인 비율이 42.64%를 기록하며 연고점이 임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해 현금배당수익률의 경우 KT와 SK텔레콤이 각각 5.7%, 7.07%를 기록했다. 통상 연말 결산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강한 배당 성향 기대감이 주가에 먼저 반영된다. 지난해 상법 개정으로 배당기준일을 내년 1~2분기로 늦출 수 있게 됐지만, 전통적으로 10월부터 강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 기업 밸류업 통합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배당수익률 1위 기업은 예스코홀딩스(26.52%)로 나타났다. 예스코홀딩스는 LS그룹 내 소그룹 형태로 자리한 예스코 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주사 특성에 맞게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다. 구체적으로 LS그룹 소유주 중 고(故) 구태회·구두회 명예회장 일가가 지분 40%가량을 보유 중인 기업이다. 자체 투자비나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적은 기업의 특성과 주주 구성의 영향으로 예스코홀딩스는 배당에 후한 편이다. 예스코홀딩스는 올 4월 결산 배당으로 총 117억원을 지급했다. 이외에 예스코홀딩스는 지난해 4월 중 특별배당 명목으로 분기 배당을 시행해 총 256억원을 집행했다. 이에 따라 예스코홀딩스는 지난해 총 373억원 규모의 배당을 시행하게 됐다. 직전 해인 2022년 예스코홀딩스가 배당금으로 책정한 금액은 총 107억원이었다. 1년 새 배당금 규모가 248.6% 확대됐다.
기간을 늘려봐도 그간 예스코홀딩스는 배당금 규모를 꾸준히 늘려왔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는 매년 63억원을 지급했고, 2010년 들어서는 64억~76억원 규모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배당금 규모의 확대세가 본격화된 것은 2019년부터다. 당시 75억원이었던 총 배당금은 매년 늘어났고, 그 결과 2022년에는 106억원을 배당에 쓰며 처음으로 ‘100억원’ 선을 넘겼다.
이처럼 예스코홀딩스가 주주환원을 강화한 배경에는 지배구조의 변화가 있다. 예스코홀딩스는 지난 2018년 도시가스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 뒤 남은 존속법인이다. 기존 예스코였던 사명을 예스코홀딩스로 변경한 뒤 지주회사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다만 올해도 배당금이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예스코홀딩스의 배당을 대폭 끌어올린 배경에는 자회사인 한성피씨건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분양 총액만 4000억원이 넘는 고양 덕은 분양 사업을 마무리하며 한성피씨건설은 2022년 말부터 예스코홀딩스에 지급하는 배당금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예스코홀딩스에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점은 배당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8월 예스코홀딩스 국내 고배당주로 꼽히는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에 700억원을 출자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예스코홀딩스는 당시 투자목적을 “배당을 통한 안정적인 수익 확보”라고 밝혔다. 또한 회사가 사업 호조로 발생한 성과를 주주들에게 나누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 자체로는 희망적이다.
예스코홀딩스 측은 “앞으로 일시적 수익이나 초과 투자성과가 발생하면 그 일부를 재원으로 분기 배당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거래소 기업 밸류업 통합정보 기준 지난해 배당수익률 2위는 에이블씨엔씨로 21.08%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많은 중간배당을 집행한 이유도 있지만 지배구조에도 원인이 있어 당분간 고배당이 기대되는 종목으로 꼽힌다. 올해로 설립 24년 차가 넘은 에이블씨엔씨는 2000년 국내 최초 브랜드숍 ‘미샤’를 론칭했다. 미샤는 4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애경산업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로드숍 매장 수가 줄어들면서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앞서 사모펀드 운용사 IMM PE(프라이빗에쿼티)는 2017년 SPC(특수목적법인) 리프앤바인을 통해 에이블씨엔씨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 때 IMM PE도 에이블씨엔씨를 매각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매각을 철회했다. 에이블씨엔씨가 지난해 매출 2736억원으로 실적 반등에 성공하면서 향후 방향성을 지켜보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 자체 현금 창출력을 초과한 배당 정책을 내놓고 있다. 에이블씨엔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약 425억원을 지급했다. 지난해 에이블씨엔씨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217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보다 2배 가까이 되는 금액을 주주환원 정책 자금으로 투입한 것이다. 이는 IMM PE가 배당을 통해 엑시트 자금을 마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IMM PE는 중간배당 및 결산 배당을 통해 288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에이블씨엔씨는 올 상반기 긍정적인 실적을 기록하며 배당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다. 에이블씨엔씨는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5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매출은 657억원으로 11.9% 줄어들었다. 상반기 기준 누적 영업이익은 103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32%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14억원의 90%에 육박하는 실적이다. 에이블씨앤씨 측은 상반기에 전년 연간 실적을 이미 상당 부분 달성한 것이라며 저수익성 면세 채널 의존도를 대폭 낮추면서 매출이 줄었지만, 브랜드별 전략적 마케팅 활동으로 추가 채널을 선택하면서 수익성은 대폭 개선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배당수익률 3위에 오른 인화정공은 제조업을 주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크게 선박엔진부품사업과 금속성형기계제조사업, 금속구조재사업 등 3가지 사업으로 구분된다. 2018년부터 줄곧 배당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가 올해 돌연 이례적인 규모의 배당에 나섰다. 배당금 지급을 결정한 지난 2월 당시 기준으로 시가배당률이 19.1%이였는데, 주가가 많이 상승한 현재도 배당수익률이 높은 편이다.
한편 인화정공은 최근 100억원 규모의 자기주식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해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올 연말 배당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또한 지난해 인화정공은 자본준비금 감액 배당을 통해 비과세 배당을 제공해 15.4%의 배당소득세를 면제받은 종목 중 하나다. 이익잉여금을 감액해 자본준비금을 재원으로 만들었을 때는 배당소득에는 포함되지 않아 비과세 대상이다. 순이익으로 배당할 때 배당소득세가 부과되는 것과 다르게 완전 비과세이다.
인화정공은 올해도 CB 전환으로 생긴 주식발행초과금을 자본잉여금화해 또 비과세 배당을 계획 중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