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가죽을 활용해 가방을 생산해 고가에 판매하는 명품기업 샤넬은 몇 해 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10%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수백만유로를 추가로 더 내겠다’라는 조건으로 6억유로(8200억원) 규모 ‘ESG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추후 밝혀진 사실은 당시 샤넬이 이미 그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를 달성한 상태였음이 회사 내부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이미 목표를 달성한 사실을 숨기고 친환경 명분으로 채권을 발행해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거짓 공시를 한 것이다. 전형적인 그린워싱(Green Washing) 사례로 꼽힌다.
그린워싱이란 녹색(Green)과 세탁(Washing)의 합성어로, 실제로는 친환경 경영과 거리가 멀지만 비슷한 것처럼 홍보하는 행위, 즉 ‘친환경 이미지로 세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ESG가 기업의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기업의 자금 확보에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자리잡아 가면서 그린워싱 사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환경보호에 신경을 쓰는 소비자들이 ‘친환경’이라 쓰인 제품을 구매하며 죄책감을 줄이고자 하는 심리를 이용한 새로운 그린워싱 마케팅을 악용하는 기업들의 행태에 다양한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미국 내 소비자나 환경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그린워싱 기업에 대응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ESG 관련 3000여 건의 소송 중 ‘그린워싱-환경’ 관련 소송 건수는 1467건으로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는 비영리기구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화석연료 기업 셸(Shell)의 잘못된 라벨링에 대해 벌금 부과를 요구한 것이다. 위트니스는 “셸은 연간 지출의 12%를 재생에너지 및 에너지 솔루션 부문에 지출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전체의 1.5%만이 태양광 및 풍력 발전에 지출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코카콜라는 2018∼2021년 4년 연속으로 환경운동 ‘플라스틱에서 벗어나기(BFFP)’가 선정한 최대 플라스틱 오염원으로 꼽히기도 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친숙하게 접하는 브랜드들도 그린워싱을 이유로 소송에 휘말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코카콜라는 플라스틱 쓰레기 반출을 묵인해 소비자보호절차법(CPPA)을 위반한 혐의로 2021년 제소되기도 했다. 코카콜라는 그간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 또는 재활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음료 용기를 만든다고 마케팅해 왔다. 그러나 정작 코카콜라의 플라스틱병 자체가 오염의 주범이라는 것을 드러내지는 않고 폐기물을 재활용한다는 것만 강조함으로써 소비자들이 본질을 보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그린워싱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는 친환경 종이 빨대를 도입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액체에 쉽게 녹지 않도록 플라스틱 소재를 활용해 빨대 내부를 코팅 처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 코리아 관계자는 “현재 스타벅스 코리아 종이 빨대에 사용되는 코딩 방법은 아크릴 수지 코팅”이라며 “폴리에틸렌에 비해 물에 잘 녹는다”라고 해명했다.
스타벅스가 지난 2021년 9월 50주년과 세계 커피의 날 등을 기념해 출시한 ‘리유저블컵’도 마찬가지로 비판받고 있다.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리유저블컵도 플라스틱인 만큼, 환경단체 등을 중심으로 플라스틱을 줄이겠다는 메시지를 내세우면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양산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당시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국정감사에 불려가기도 했다.
그린워싱에 대한 피해 사례가 늘어나자 각국 정부와 글로벌 단체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열린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 그린워싱 관련 기준을 발표했다. COP27 보고서에는 탄소 중립과 관련해 정부나 기업의 활동이 실제 친환경적인지, 그린워싱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제시됐다. 탄소 배출 관련 단기·중기·장기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야 한다.
앞서 영국은 지난 2021년 소비자보호법에 근거해 친환경 마케팅 지침인 ‘녹색 주장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기업이 제품 및 서비스에 관해서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하고 명확할 것, 중요한 정보를 빠뜨리지 않을 것, 근거를 통해 뒷받침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지침은 광고, 라벨, 포장지, 제품명 등 제품에 대한 모든 정보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투자사들의 그린워싱도 규제 대상에 오른다. SEC는 2022년부터 그린워싱 문제를 더욱 자세히 검토할 것이란 방침을 밝히며 ‘오해의 소지가 있는 펀드명 규제’ ‘세부 ESG 공개를 요구하기 위해 펀드 감시 방안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환경 관련 표시·광고 심사지침’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를 진행했다. 친환경 위장 표시·광고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가이드라인’을 공표한 셈이다.
공정위는 “이번 개정을 통해 소비자의 합리적인 구매·선택을 방해하는 그린워싱 사례가 줄어들고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과 전원회의 의결 등 절차를 거쳐 개정안을 확정·시행할 예정이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