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주인공인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초상화가 대신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바치겠다고 맹세한다.
늙지 않고 싶은 인류의 욕망은 항상 존재했었지만,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의학과 과학 기술 발달로 인해 일부나마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안티에이징(항노화)이다.
노화는 신체 장기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암, 자가면역질환 등 각종 노인성 질환을 유발한다. 최근 의학의 발전으로 사람의 기대수명은 점점 늘고 있으며 노인 인구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기대수명에 비해 실제로 건강하게 산 기간인 ‘건강수명’은 수년째 그대로다. 2020년 기준 국내 기대수명은 83.5세이지만 건강수명은 66.3세다. 이런 격차는 의료비 급증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노인 건강보험 진료비는 전체 의료비의 43%로 37조원에 달한다. 2025년에는 6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 기관인 P&S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글로벌 항노화 시장은 2020년 1944억달러(약 234조원)에서 매년 8.6%씩 성장해 2030년에는 4228억달러(약 508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항노화는 미용기술, 화장품 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늦출 수 있는 질병 혹은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국제보건기구 WHO도 2018년 ICD-11(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11)의 질병 통계 분류에서 노화에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등 노화를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에 포함시킨 바 있다. 항노화 치료는 인간의 건강한 수명 연장을 위해 다양한 메커니즘을 활용해 노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줄이거나 역노화에 초점을 맞춘 의학 분야로 꼽힌다.
특히 2020년 출간된 <노화의 종말(원제 Lifespan: Why We Age and Why We Don’t Have To)>은 항노화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지폈다. 하버드대 의대에서 30년간 노화와 유전을 연구한 저자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노화는 질병이며, 다른 여러 질병과 마찬가지로 노화 역시 치료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싱클레어 교수에 따르면, 노화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는 우리 염색체에 있는 텔로미어(telomere·말단 소체)라는 DNA 입자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부분을 감싸는 골무 모양인데, 세포 분화를 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길이가 점점 짧아진다. 다시 말해 텔로미어가 짧아지면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텔로미어의 길이를 계속 길게 유지할 수 있다면, 노화 방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학계 일부에선 노화를 질병으로 보는 관점 자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우현 덕성여대 약학과 교수는 “특정 세포에서 발생하는 암과 달리 모든 세포에 전반적·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노화와는 전혀 다르다”라면서 ‘노화=질병’ 주장을 반박했다. 적절한 식습관과 운동과 명상 등으로 노화를 늦추는 일은 가능하지만, 나이를 거꾸로 돌리는 역노화는 불가능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2호 (2023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