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 대장아파트인 ‘래미안 원베일리’의 거래가격이 최근 3.3㎡(평)당 2억원을 돌파해 화제다. 지난해 12월 래미안 원베일리 28층 전용면적 133㎡가 106억원에 거래됐다. 3.3㎡당 2억6000만원 넘게 거래된 셈. 국내 공동주택 거래 사상 3.3㎡ 기준으로 최고가를 기록한 셈이다.
서울 서초·강남 아파트 단지는 평균 3.3㎡당 거래가격이 1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해 서초구 아파트 평균 3.3㎡당 가격은 9285만원, 강남구는 9145만원을 기록했다. ‘아크로 리버파크’가 평당 1억원 거래를 돌파한지 6년 만에 서울 강남권 전체가 ‘평당 1억원 아파트’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서울 아파트 매물이 쌓이고 있지만, ‘부촌’은 나홀로 호황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50억원 이상 초고가 394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초고가 주택은 명품 시장처럼 가격이 상승할수록 오히려 수요가 더 붙는 ‘베블런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50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 거래는 394건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전년 151건과 비교해도 2.6배 늘어난 수치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1년 156건보다도 두 배 이상 많다.
지역 쏠림 현상도 두드러졌다. 전체 84%가 강남구(207건)과 서초구(123건)에 집중됐다. 용산구(38건)와 성동구(19건), 영등포구(6건), 송파구(1건)가 뒤를 이었다. 이들 6개 구를 제외한 서울 나머지 지역에서는 지난해 50억원 이상 거래가 단 한 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100억원을 넘어서는 아파트 거래도 지난해 21건이나 됐다. 이 중 9건의 거래가 용산구에서 이뤄졌다. 200억원 이상 거래는 2건이었는데, 용산구 한남동의 ‘나인원한남’이었다.
초고가 주택 거래는 명품 시장처럼 가격이 오를수록 오히려 수요가 더붙는 ‘베를런 효과’로 인해 거래 가격도 신고가 체결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고가 월세 수요가 늘자 부자들 사이에선 고가 주택이 꼬마빌딩 등 상업용 부동산 대체재로 투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초고가 거래 증가와 함께 서울 신저가(역대 최저 가격) 거래도 증가하는 추세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매매된 아파트 중 3.2%가 신저가로 거래됐다.
이는 2023년 2월(3.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서울 아파트 신저가 비중은 2022년 9월 7.4%에서 하락해 지난해 7월 0.5%까지 떨어졌으나 최근 다시 상승세를 보인다.
서울 곳곳에서 심화하고 있는 이른바 ‘스테어폴라(계단형 양극화)’ 현상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스테어폴라란 ‘계단’과 ‘양극화’의 합성어다. 아파트 가격별로 ‘급지’가 촘촘히 나뉘어져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는 물론 같은 서울 내에서도 구별로 격차가 벌어지는 추세다. 마치 대학교 배치표처럼 서울 아파트의 등급을 나눈 ‘아파트 등급표’까지 등장했다.
50억원 이상에 거래되는 초고가 아파트들의 주된 조건으로는 ▲한강변 황금벨트 ▲강남 8학군 ▲재건축·재개발 강세 지역▲하이엔드 신축 설계 등이 꼽힌다. 특히 서울에서는 아크로서울포레스트, 래미안첼리투스처럼 한강을 낀 아이코닉한 주거 단지가 부촌의 요건이라는 분석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강남, 용산, 성수 모두 한강변에 자리잡고 있다”며 “넓고 화려한 건물은 기본이고, 조망권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우수한 교육환경도 핵심 조건이다. ‘래미안 원베일리’ ‘아크로리버파크’ 등 재건축 사업으로 명실상부한 부촌으로 자리잡은 ‘서초구 반포동’이 대표적인 예다.
윤향미 유안타증권 GWM 반포센터장은 “반포동은 사립 초등학교 통학을 위한 셔틀버스 이용이 용이하고, 강남 8학군 중·고등학교가 밀집해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자녀 학군 때문에 전·월세 아파트로 인기가 많지만 향후 재건축으로 더 많은 수익이 기대되는 만큼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 중후반 사업가·전문직 종사자들의 매매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김영옥 압구정VIP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압구정은 전국에서 돈 번 사람들이 오려고 하니까 다른 곳에 비해 가격이 내릴 때도 조금 내리는 등 투자 가치도 좋아 선호한다”고 말했다.
한남동, 청담동 등에 위치한 최고급 하이엔드 주택들은 초고득층의 수요를 맞춘 설계가 인기를 좌우한다고 한다. 금고 역할을 할 수 있는 주택 내 비밀공간을 마련하거나, 파출부와 동선을 분리할 수 있도록 집을 설계를 하는 식이다. 갤러리 수장고와 위탁판매 서비스 등도 제공된다.
지난해 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래미안 원베일리 내 컨벤션센터. 주말 오후 3시부터 원베일리 입주민을 부모로 둔 미혼 남녀 60명이 속속 모였다. 아파트 입주 1주년을 맞아 열린 원베일리 미혼 자녀 단체 미팅 자리였다.
이들은 1대1 미팅, 그림으로 알아보는 이상형 찾기 등 간단한 게임 등을 통해 서로를 알아나갔다. 저녁시간이 되자 뷔페와 와인파티가 열렸다. 3·4차로 이어진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자체적으로 회장과 부회장 등을 선출한 뒤 모임을 지속해나가기로 했다.
한국 대표 부촌으로 자리 잡은 반포동의 ‘그들만의 리그’로 일컬어지는 ‘원베일리결혼회(원결회)’의 장면이다. 원베일리에 입주한 이들이 미혼 자녀들의 단체미팅을 지원하기 위해 생겨난 모임이다. 반포맘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 이제는 래미안 퍼스티지, 아크로 리버파크 입주민까지 참여하는 ‘반포 대표 결혼회’로 자리잡았다. 최근 결혼식장을 예약한 1호 커플에 이어 2호 커플까지 나왔다고 한다. ‘30대 30’ 단체미팅도 진행했다고 한다.
회원들조차 가벼운 소모임으로 시작한 원결회의 급성장에 놀라워하는 눈치다. 원결회 회원인 중년 여성 A씨는 “아파트 입주민들끼리 자녀 결혼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다 ‘원결회’가 만들어졌다”며 “처음에는 ‘우리 딸이 28세인데, 그쪽 아들과 만나보게 하는 거 어때’라며 회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덧 회원만 30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녀 미팅 주선 외에도 신혼집 마련 세미나, 투자 교육 세미나 등을 함께 들으며 ‘고급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원결회’가 이 같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원베일리 특유의 ‘아파트 모임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입주민들은 이들끼리 모인 SNS 채팅방을 통해 입주 1년 만에 이웃사촌보다도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고 말한다. 채팅방에서 유기농 채소를 공동구매할 이웃을 수시로 찾고, 오늘 저녁 테니스를 함께 칠 사람을 구하면서 생긴 ‘수많은 소모임’을 통해 ‘그들만의 교류’가 활성화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베일리 입주민들을 드러내고 적극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하이엔드 주택 분양업체들은 분양 단계에서부터 ‘입주민 거르기’에 나서고 있다. 강남구 삼성동에 들어서는 라브르27, 도산공원 바로 앞에 짓는 더피크도산은 분양 문의를 할 때부터 자산이나 사회적 신분을 인증받아야 상담이 가능하다. 이들은 기자의 분양 상담 문의에 “명함이나 소득 및 자산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달라”며 “회사의 승낙을 받아야 상담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과거 부촌이라고 하면 옆집은 교수님댁, 뒷집은 회장님댁 같은 식으로 ‘알음알음’ 알게 되는 자연스러운 커뮤니티였던 반면 지금은 래미안 원베일리처럼 ‘실질적 커뮤니티’로 변모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밖에서 보는 시선이 냉랭할 수 있지만 이웃 간 교류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란 측면에서 마냥 부정적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VVIP급 고소득자가 한곳에 모여 있다 보니 생활편의 인프라스트럭처도 집중되고 있다.
원베일리 스퀘어에는 오프라인 매장이 대형 거점화되는 경향 속에서도 6개 증권사의 VIP 자산관리 점포가 들어섰다. 전국 주요 은행 PB센터 위치를 보면 ‘강남3구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77개 PB센터 중 서울에 위치한 게 60개다. 이 중 절반을 상회하는 38개 PB센터가 강남3구에 몰려 있다. 은행들도 VIP 고객 유치를 위해 이 같은 부촌 아파트 상가에 PB센터를 입점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같은 동네에서도 신축 고급 아파트와 구축 아파트 간 빈부 격차나 생활 인프라 격차가 커지는 현상이 심화되는 중이다. 입주민과 비입 주민 사이에 선을 긋고,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하며 부동산을 통해 조성된 사회적 양극화가 소통의 단절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정치적 성향 차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무나 살 수 없는’ 서울 핵심지 부동산과 ‘누구나 살 수 있는’ 주식은 진입장벽부터 다르다. 부자 아파트를 구입하려면 최소 수십억원 이상의 현금이 필요하다. ‘부동산 불패’가 지속되는 대한민국에서 계층 이동이 쉽지 않은 이유다. 부동산 자산 격차가 세대 간·지역 간 양극화로 확대되면서 사회적 이동성이 크게 저하되는 것은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매일경제와 부동산R114의 분석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15곳에서 주택 가격이 2014년 강남구 평단가(3.3㎡당 2912만원)를 넘어섰다. 2014년 3.3㎡당 가격이 각각 1629만원, 1688만원이었던 성동구와 마포구는 2024년 각각 4680만원, 4322만원으로 10년 전 강남구 수준을 뛰어넘었다.
연소득 1위와 25위 자치구 간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연소득 1위는 용산구로 1억 5379만원을 기록한 반면, 25위인 강북구는 6527만원으로 양측 격차는 8852만원에 달했다. 3년 전인 2021년 연소득 1위였던 강남구(1억 4125만원)와 최하위였던 강북구(6284만원) 간 격차 7841만원에서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한국의 부동산 쏠림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4년 3월 말 기준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 4022만원, 부채는 9128만원으로 집계됐다.
주목할 점은 가계자산 중 부동산 등 실물자산 비중이 75.2%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동산 자산 격차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가계자산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구매를 위한 가계부채가 증가하자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면서 가계 차원의 위험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위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