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과연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 예술이나 문학 등 고도의 창작의 영역은 성역으로 여겨졌다. 생성형 AI가 등장한 이후 이러한 신화는 보기 좋게 깨졌다. 인간 최후의 보루였던 창의성의 영역을 대체하는 생성형 AI는 그림, 텍스트, 코딩, 음악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완벽하진 않아도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즉각적으로 내놓는다. 결과물은 단순히 일회성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으로 출판되거나 디지털 아트로 인정받아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제이슨 앨런은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AI 프로그램인 미드저니를 통해 생성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출품해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AI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분야가 있을 것이란 고정관념이 부서지듯 생성형 AI는 다양한 산업계에 파괴적 혁신으로 다가오고 있다.
2016년 알파고 쇼크 이후 전 세계는 AI와 딥러닝의 가능성에 눈을 뜨고 기계와 인간 간 역할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다만 AI 기술을 지닌 기업들이 다양한 산업에 접목해 상업화까지 연결하는 데에는 요원했다. 6년이 지나 오픈AI가 개발한 챗GPT가 등장하기 전까지 AI와 알파고는 서서히 잊혔다. 그러다 최근 AI는 21세기 골드러시에 비유될 정도로 관심이 높아져 상업화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봉장인 챗GPT는 비교적 손쉽게 기존 서비스 모델과 결합할 수 있어 수익 창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모습이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어떻게 산업과 접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가치체계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생성형 AI의 가치사슬은 크게 ‘파운데이션 모델’ ‘애플리케이션’, 클라우드와 반도체 등 ‘인프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파운데이션 모델은 AI 서비스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원재료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파운데이션 모델의 기본적인 수익모델은 사용자의 월 구독 서비스가 있다. 오픈AI는 출시 두 달 만에 월 20달러(약 2만6000원) 유료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고 향후 월 구독료 40달러(약 5만2000원) 모델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의 이미지 생성형 AI 서비스인 달리(DALL-E) 역시 부분 유료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두 번째로 생성형 AI를 활용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할 수 있다. 앞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API 형태로 받아 목적에 맞는 변형(Fine-tune)을 통해 서비스를 고도화시키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마지막으로 컴퓨팅 파워 및 서비스를 위한 인프라의 영역이다. 클라우드 API를 제공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등의 빅테크 기업이나 인공지능 트레이닝 및 훈련을 위한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 등이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B2B를 통해 생성형 AI를 서비스화한 기업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소셜미디어(SNS) 스냅챗을 운영하는 스냅은 지난달 챗GPT를 적용한 챗봇 ‘마이AI’를 선보였다. 마이AI는 스냅챗의 유료 구독 서비스 ‘스냅챗 플러스’가 제공하는 기능 중 하나로 월 3.99달러를 내면 이용자는 마이AI 챗봇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스냅 측은 마이AI가 간단한 퀴즈를 맞히거나 친구에게 어떤 선물을 보낼지에 대한 조언을 주고 어떤 메뉴로 저녁 식사를 준비할지 등을 마치 사람 친구처럼 알려준다.
미국의 신선식품 제공업체 인스타카트 역시 챗GPT API를 구매해 자사 앱을 고도화하고 있다. 앱 이용자가 ‘아이들에게 먹일 만한 건강한 점심 메뉴는 뭘까’ ‘쉽게 만들 수 있는 점심 메뉴는 뭐가 있을까?’ 등의 정해진 답이 없는 질문을 이용자가 던지면 AI가 빠르게 답변을 주는 식이다.
챗GPT만을 활용한 서비스로 창업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바로 인공지능 기반으로 소셜미디어, 광고, 이메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언어 콘텐츠를 생성해주는 사업모델을 지닌 재스퍼AI(Jasper Ai)다. 재스퍼AI는 50개 이상 템플릿을 제공하며, 인식하는 24개의 언어를 인식하고 29개의 언어로 산출할 수 있어 세계 시장에서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유료 구독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재스퍼AI는 기업가치 15억달러(약 2조원)를 인정받았다.
기존 이미지를 판매하던 기업들도 생성형 AI 시장에 참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AI를 통해 개인도 이미지를 자유롭게 생성할 수 있다면, 스톡 이미지를 판매하는 기업에는 부정적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지를 비롯해 동영상, 음원 등의 미디어 자산을 유료로 제공하는 플랫폼 ‘셔터스톡’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셔터스톡은 최근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API 달리(DALL-E)와 LG의 엑사원(EXAONE) 기반으로 텍스트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능을 공개했다. 단순 이미지 생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편집 도구에 연결해 생성된 이미지의 추가 편집도 지원한다. 이 외에 셔터스톡은 메타플랫폼스와도 파트너십을 통해 자사의 미디어 라이브러리를 인공지능 모델 학습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기업들도 생성형 AI 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네이버는 올해 AI 음성인식 기술을 적용해 사용자 녹음 파일의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클로바노트’를 유료화할 방침이다. 현재 시범 서비스 중으로 매달 무료 이용 시간 300분을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브레인은 올 1분기 내 AI ‘칼로’를 활용한 이미지 생성 애플리케이션 ‘비^디스커버’의 전문가 버전을 유료로 출시할 예정이다. 비^디스커버는 사용자가 입력한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서비스로 지난해 10월 중순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출시 4달 만에 200만 장 이상을 변환했다. 이 외에 두 회사 모두 AI 기술을 활용한 한국어 특화 AI 챗봇 서비스인 ‘서치GPT’와 ‘코챗GPT’(가명)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중한 삼성증권 연구원은 “생성형 AI는 자율주행차처럼 까다롭지도(안전에 직결), 메타버스처럼 모호하지도, 블록체인처럼 복잡하지도 않다”라며 “우리가 일상생활에 활용하던 것들을 더욱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로 고도화된 엑셀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라고 대중화에 단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내다봤다.
생성형 AI는 기존에 사람의 노력이 필요했던 고객 응대부터 비즈니스 자료 생성, 법적 문서 검토, 콘텐츠 생성, 복잡한 코딩까지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준다. 이는 생산성의 측면에서는 인간의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에 이바지할 것이란 기대감과 ‘화이트칼라(White -collar)’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공존하고 있다.
챗GPT가 상위 10%의 성적으로 의사 및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하나의 방증이다. 단순 응대부터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는 전문직까지 생성형 AI가 다양한 비즈니스에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것이란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부동산 중개인들이 챗GPT를 활용하여 매물에 대한 설명글을 작성하거나 법률적인 문서를 준비하는 등, 비즈니스에서는 이미 챗GPT를 활용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벤처캐피털은 생성형 AI 솔루션에 17억달러 이상을 투자했으며, 대부분 신약 개발과 소프트웨어 코딩 플랫폼 분야로 유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이언 버크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챗GPT 같은 초기 기반 모델은 창작 작업을 보조하는 생성형 AI의 역량에 중점을 두지만 2025년이면 이미 신약 및 신소재의 30%가 생성형 AI 기법을 사용해 체계적으로 개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도 조사에 따르면, 새로운 약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8억달러에 달했다. 생성형 AI는 이미 신약 개발에 사용되고 있는데, 제약업계는 비용과 시간 모두를 크게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활용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소재 관리 분야에서 생성형 AI는 특정 물리적 속성을 가진 완전히 새로운 소재를 설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이런 신소재 설계는 자동차나 항공, 국방, 의료, 전자, 에너지 산업에 상당한 이점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역설계(Inverse Design)라 불리는 기법을 통해 현재 에너지나 운송 분야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전도성이 좋고 부식도 되지 않는 소재나 자력이 강한 소재를 찾아낼 수도 있다.
생성형 AI는 강화 학습을 사용해 반도체 설계의 부품 배치를 최적화할 수 있다. 가트너에 따르면, 칩 개발 주기를 주 단위에 시간 단위로 단축할 수 있다. 브라이언 버크 가트너 애널리스트는 “챗GPT는 멋지지만, 시작에 불과하다”라며 “보다 고도화된 연구 분야에 생성형 AI가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