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순수 한국 스타트업 미미박스가 시리즈 A와 B를 통해 2950만달러(약 33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국내외 유수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를 받아 큰 관심을 모았다.
내심 잘됐다 싶었다. 평소 하형석 미미박스 대표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투자 유치를 계기로 그의 구체적인 생각을 듣고 싶었다.
하 대표는 경영학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화장품 사업을 해야겠다는 야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대회부터 시작해 스파크랩스, Y컴비네이터 등 실리콘밸리에서 인큐베이팅을 받으면서 성공의 DNA를 이식받을 수 있었다. 하 대표는 모바일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바로 실천하면서 회사를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미미박스에 투자한 굿워터 캐피털(Goodwater Capital)의 에릭 김 등 벤처캐피털리스트(VC)들이 회사 운영에 대해 큰 조언을 하기도 했다. VC들은 회사 방향을 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미국 실리콘밸리 생태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미미박스가 야후의 공동 창업자이자 중국 알리바바의 2대 주주인 제리양을 비롯해 비트코인계의 큰손으로 통하는 윙클보스 형제, 전 디즈니 및 갭(Gap)의 최고경영자(CEO) 폴 프레슬러, 구글 초기 투자자 바비 야즈다니, 드롭박스의 1호 투자자 페즈먼 노자드 등으로부터 33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Y컴비네이터, 스파크랩스 등을 통해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진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 대표는 지난 4월 14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콘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서 “Y컴비네이터에 들어간 것이 미래를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서 그는 실리콘밸리 생태계에 진입하면 한·중·일 스타트업이라도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화할 수 있는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지금 한국에도 알토스밴처, 스파크랩, 트랜스링크캐피털, 빅베이슨캐피털 등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VC가 있는 만큼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 서둘러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실을 내서 도전하기보다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를 타깃으로 해도 충분히 글로벌 진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미박스는 뷰티 박스다. 본인은 화장품을 애용하나?
사실 개인적으론 화장품을 많이 쓰지 않는 편이다. 로션도 잘 안 바른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부터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 써봤다. 예전에 패션 업계에서 일했는데 이때부터 관심을 가졌다.
미미박스 사업 모델이 계속 바뀌고 있다.
미미박스를 시작할 때 처음부터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뷰티 상품을 온라인에서 하자는 큰 그림만 있었다. 이것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계속 고민했다. 지금은 코스맥스와 협력해 화장품 제조에 직접 뛰어들었다. 지금은 박스 비즈니스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남성이나 아기 카테고리도 생겼다 없어졌다 하고 있다. 계속 회사를 성장시킬 방안만 고민하고 있다.
미미박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콘퍼런스 등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언론도 찾아가는 편이 아니다.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만약 미미박스 앱에서 장바구니의 결제 비중이 떨어졌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내부적으로 이 고민을 해결하는 데 온힘을 쏟는다. 외부 미팅은 일주일에 한두 건 정도 밖에 없다. 저녁 약속도 거의 하지 않는다. 회사에 내가 있어서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와이어드 2015 인터뷰에서 “마크 주커버그가 우리 시대 대통령”이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주커버그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은 박근혜 대통령 못지않다는 얘기였다. 온라인의 자아가 실제 자아와 거의 같거나 더 젊을수록 그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본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도 얘기 시간은 길지 않고, 친구들도 계속 휴대폰을 만진다. 실제 만나는 동안 공감하는 시간은 50% 정도라고 생각한다. 온라인과 모바일에서는 공감도가 오히려 높아진다.
화장품 분야에서 지금 아모레퍼시픽이 1등이다. 하지만 10년 후에도 1등을 한다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쏟는 데에서 결제가 이루어진다. 거기에 승리 브랜드가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단연 모바일이다. 아모레퍼시픽이 모바일 1등인가? 아니다.
현재 모바일 시대에서 성공 여부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는 시간 관리다. 어떤 시간을 점령하느냐가 키 메트릭이다. 화장품 유통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공간은 모바일이다. 모바일에서 승자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회사를 모바일 중심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지난해 5월 모바일 결제 비중은 2.8%에 불과했다. 하지만 11월에는 80%까지 올라갔다. 지금은 모바일 결제가 대부분이다. 지난해에 많은 노력을 했다. 우선, 모바일 팀장을 개발부사장으로 삼았고, 회사 내부에서 웹 접속을 차단했다. 직원 대부분이 인터넷을 하는데, 정작 모바일 앱에서 오류가 나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PC 인터넷을 막았다. 지금은 풀었다. 모바일 결제 비중을 80%대로 유지한 이후부터다. 더 이상 안 올라가더라. 고객 일부는 아직도 웹에서 한다. 매출액 변화는 없었다.
모바일 전환에 성공한 후에 보니 고객 연령층이 낮아진 것을 발견했다. 연령이 낮은 소비자일수록 웹보다 앱을 선호한다. 그런데 아직도 모바일 앱이 뭔지 잘 모르겠다. 1만4000개, 1만5000개의 물건을 앱에서 어떻게 보여주지? 나는 아직도 모바일에 대해 완벽한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코스맥스랑 제휴, 화장품 제조에 나섰는데 이 부분은 완전 다른 영역이다. 잘할 수 있나?
잘할 수 없는 영역이긴 하다. 화장품 제조에 나선 것은 미미박스 초창기에 타사 브랜드 화장품을 판매해 보니 브랜드와 고객 격차가 크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객은 분홍색을 원하는데 브랜드에서는 갈색을 낸다. 그러다가 뒤늦은 1년 6개월 후에야 분홍색을 낸다. 이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선정 과정부터 트렌드가 뭔지 데이터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데이터에 근거한 방식으로 제품을 출시했는데 2만5000개가 40분 만에 품절됐다. 한국 신기록이다.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새 회장품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후 코스맥스와 관계가 돈독해졌다. 제형이나 색상 등에 대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R&D 하는 사람들이 있다. 브랜드 매니저도 있다. 디자인도 스스로 하고 있다.
모바일이 앞으로 경쟁 구도를 바꾼다고 보나?
지금도 앞으로도 모바일을 품는 회사가 절대적으로 승리할 것이다. 미미박스는 전체 안드로이드 쇼핑 분야에서 20위고 뷰티에서는 모바일 절대 강자다. 미미박스는 신세계몰의 온라인 뷰티보다 모바일 거래액에서 앞선다. 결국 브랜드냐 유통이냐가 이슈인데, 모바일에서는 이 두 가지가 접목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전쟁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미박스는 명동에 진출 안 하나? 오프라인 매장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명동으로 나갈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모바일에서 이기면 다른 데서 이긴다. 브랜드 경쟁력을 앞지르는 데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유통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포와 인천에 물류센터를 4500평 규모로 지었다. 이 시설을 갖추는 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모바일이나 물류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을 위해서다. 중국에서 미미박스는 통할 것 같다. 중국은 지금 3G 환경이다. LTE 환경이 갖춰졌을 때 커머스 점프할 것이다. 중국인 전체 인구 중 화장 인구는 10% 정도다. 나머지 인구도 앞으로 화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유통되는 화장품의 80%는 가짜다. 진짜 시장으로 바뀔 것이다. 이 큰 그림 중심에 K뷰티가 있다.
600개 이상의 한국 파트너들에게 글로벌 팀이 없고, 글로벌 역량도 없다. 우리는 파트너가 돼 줄 수 있다. 한 번에 모바일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미미박스의 유튜버 마케팅도 눈여겨봤다.
단순한 접근이었다. 유튜브는 새로운 할리우드다. 지금 우리에게 누군가가 할리우드 배우와 같이 하겠느냐고 제안한다면 “하지 않겠다”고 답하겠다. 성장하는 유튜버와 같이 일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젊은 친구들은 유튜버에게 화장을 배우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뷰티만 해도 너무 많다. 한 분야만 잘하면 될 것 같다. 한국이란 브랜드가 이렇게 센 적이 없었다. 앞으로 성장할 회사가 많다. 우리는 하나일 뿐이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만 미미박스 100개가 나올 수 있다. 홈쇼핑이 역신장하고 있다고 한다. 모바일도 훨씬 더 잘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모바일 서비스는 별로다. 고객들은 지갑 열 준비가 돼 있는데 회사들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고객의 이동이 기존 회사들이 준비한 것보다 빨랐다.
미미박스 같은 회사 100개가 나올 수 있다고 했는데 ‘미미박스’란 회사를 어떻게 규정하나?
생각을 시작하는 포인트가 모바일이란 뜻이다. 예를 들어 화장품 만들 때 제품 측면에서 볼 때 품질은 에스티로더보다 더 좋아야 한다. 서비스는 신세계보다 좋아야 한다. 90일 환불도 보장해야 한다. 화장품을 다 써도 3개월 후에 무료 환불이 가능하다. 모바일 앱 경험도 훌륭해야 한다.
오프라인 스토어를 진행할 계획이 있긴 하다. 하지만 화장품은 팔지 않을 것이다. 무료로 화장해 주는 매장이다. 앱을 통해서 15명씩 예약을 받는다. 고객들이 제품을 사느냐 안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모바일은 콘텐츠나 커머스 양쪽이 커져야 한다. 창업자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중국은 한국보다 성장세가 빠르다. 혁신이 어려운 것이지 해외 확장은 더 쉽다.
이번에 투자 유치 과정도 궁금하다.
투자자들이 커피 마시는 30분 동안 투자를 결정했다. 어떤 투자 결정이나 몇 시간을 넘어간 적 없다고 한다. 나는 돈을 구하러 다닌 적이 없다. 첫 1년은 엔지니어가 없었다. 100원 팔아서 10원 남기자는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왜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 330억원 투자받는 회사는 많지 않을까”라고 의문이 드는데, 준비가 안 돼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창업 오디션 대회 나가서 수상하면서 회사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이 전세계에서 스타트업하기 제일 좋은 나라다. 한국인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이고, 재능이 풍부하다. 인프라 비용, 택배, 사무실 비용도 저렴하다. 우리나라의 창업 열풍을 보면 정부나 기업에서 이렇게까지 신경 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예산 들여서 인재를 1명이라도 발굴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2012~2013년에 1000만원 받았다. 수혜자다.
회사 분위기가 좋아 보인다. 회사 게시판에 “젊은이들을 믿어라(Trust the young)”라고 새겨진 문구가 눈길을 끈다. 무슨 뜻인가?
회의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들의 말을 믿으라는 뜻이다. 회의 중에 결론이 나지 않을 때는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의 결정에 따른다. 우리는 93년생이 가장 적다. 그리고 직급이 높을수록 회사 출입문에 가깝게 자리가 있고 막내일수록 안으로 들어간다. 일반 회사와 거꾸로 돼 있다. 직급이 높을수록 소통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가 수평조직을 지향하는 회사는 아니다.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는 팀이다. 하지만 대화에 있어서 최대한 투명하게 결정한다. 나는 환경이 사람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난 태생이 게으르다. 그래서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미팅을 잡는다. 그래야 전날 늦게까지 밖에서 놀지 않는다. 미미박스 내에도 회사 문화를 만들 때 환경적 요소를 더 지향했다. “너가 잘못했어”라고 하기보다는 이 사람이 결정하는 환경은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개인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팀으로 문화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어디서 일하나(Where to play)”가 “어떻게 일하나(How to play)”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대표로서 소통은 어떻게 하나?
나는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저장하지 않는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연락 안 받기로 유명하다. 하루에 이메일 200~300통이 오는데 답을 제대로 못한다.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 있다. 한때 주 7일을 근무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고, 무슨 일을 할지 잘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녁 약속을 잘 안 한다. 대표도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사업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순간적이었다. 시간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주 금요일에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큰 식탁을 마련하고 팀별로 돌아가면서 밥을 먹는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직 가구도 못 사고 있다. 대신 큰 식탁을 사서 더 많은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서 사람들과 대화하고 즐기는 자리를 갖고 싶었다. 외부에서 하면 경제적 부담도 크다. 집에서 즐기는 것이 재미있다.
회사는 5배 성장하는데 나는 5배 성장하지 못한다. 지금 이렇게 한다고 해서 갑자기 하버드 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