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크린(살균표백), 설거지용 스펀지(스펀지+수세미), 믹스커피(김태희)’
어느 일요일 오후에 처가 동네 슈퍼에 가서 사오라며, 친절하게(?) 아내가 쪽지에 적어준 물품들이었다. ‘옥시크린’은 ‘크리넥스’처럼 상품명이 카테고리 대명사처럼 쓰이는 경우다. 표백제라는 카테고리로 출발을 했는데, 이후 표백 이외에도 세분화된 특성을 지닌 제품들이 계속 출시되었다. 그래서 옥시크린 중에서도 살균과 표백이라는 두 가지 기능이 확실하게 표시된 제품을 사오라는 얘기였다. 설거지용 스펀지는 한쪽이 스펀지이고 다른 쪽은 까끌까끌한 수세미로 된 것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았다. 아내도 그 정도까지는 알아서 사오겠거니 생각했는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믹스커피에서는 꼭 김태희 얼굴이 나와 있는 것을 사야한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자신 있게 김태희가 나온 믹스커피 제품의 브랜드명까지 얘기해 주었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지 집을 나서려는데, 이렇게 덧붙였다.
“김태희가 아니라 강동원이 나온 것을 사와도 돼.”
동네 슈퍼에 가서 쪽지에 쓰인 순서대로 물품을 구입했다. 임무를 쉽게 수행해 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커피 판매대로 갔다. 제품 종류가 너무 많아 당황스러웠다. 특히나 믹스커피는 연예인들의 얼굴 사진이 박힌 제품들이 줄이어 있었다. 김태희 사진이 보이지 않아서 더더욱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강동원의 사진이 있는 제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매대 선반에서 뽑아들고 뒤를 보니 김태희 사진이 있었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뿌듯한 심정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김태희 사오라고 했더니 유이를 사오다니’
다음 날 점심시간에 위와 같은 문자메시지가 왔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가 전날의 믹스커피 생각이 나서 나름 반박을 했다. “강동원이잖아?” 기다렸다는 듯이 답이 왔다. “주원이거든.” 사소한 심부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면서 꼬리를 내리고 변명 겸 답신을 했다. “왜들 그렇게 비슷한거야!” 아내가 그래도 위로에 가까운 문자를 보냈다. “그러게. 그래도 광고회사 다니면서 구별해야지. 요거 한번 먹어봐야지. 맛도 비슷한지”하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개선책을 제시했다. “앞으로 종종 심부름 시킬게.”
개인이 겪은 사례이기는 하지만 소위 스타마케팅 관련하여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준다. 먼저 스타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 준다. 아내는 믹스커피의 브랜드는 알지 못하고, ‘김태희 믹스커피’로 기억했다. 나는 브랜드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막상 동네 슈퍼의 커피 판매대에 가서는 브랜드를 찾지 않고 포장에 나와 있는 유명 스타들의 얼굴만 가지고 제품을 골랐다. 믹스커피와 같은 일상적으로 음용하거나 사용하는 제품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고가품으로 분류되는 대형가전제품으로 냉장고도 무작정 ‘이승기 냉장고’를 달라고 하는 소비자들이 꽤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제품의 특성이나 브랜드의 성격을 떠나 소비자가 기억하고 환기하는데 스타가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타를 광고에 쓰고, 홍보대사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맡기는 가장 큰 이유는 유명한 인물도 특정한 제품을 쓰니까 따라하도록 만들고, 보증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다.
원숭이들은 초콜릿을 좋아한단다. 원숭이가 카카오나무의 열매를 빨아먹는 것을 보고 그것을 채취한 데서 초콜릿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어느 동물원에서 원숭이들을 가지고 실험을 했다. 비닐봉지로 낱개 포장을 한 초콜릿 캔디를 양동이에 가득 담아 서로 떨어져 사는 두 그룹의 원숭이무리에게 가지고 갔다. 한쪽은 무리의 대장 노릇을 하는 원숭이 앞에 포장 초콜릿이 담긴 양동이를 갖다 놓았고, 다른 무리는 평범하거나 약간 두드러지지 않은 원숭이 앞에 두었다고 한다. 포장된 초콜릿은 원숭이들에게는 낯선 것인지라 선뜻 손을 대지 않았다.
손을 댄 이후도 비닐 포장을 뜯는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대장 원숭이와 평범한 원숭이 모두 포장된 초콜릿을 만지고 궁리를 하다가 포장을 뜯었고,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도 따라서 먹기 시작했다. 대장 원숭이 쪽은 30분 만에 초콜릿을 모두 먹어 치웠는데, 평범한 원숭이 쪽은 2시간이 지나도 초콜릿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실험이 <설득의 심리학>에도 나와 있다. 계급의 하단에 속하는 어린 원숭이에게 캐러멜을 먹게 한 후, 그 캐러멜을 다른 원숭이들도 받아들여 먹는데 걸리는 시간을 봤단다. 1년 반이 지나도 원숭이 무리의 51%만이 그 맛을 받아들였다. 대장 원숭이에게는 밀가루 음식을 먹였다.
그러자 처음으로 밀가루 음식을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4시간 만에 집단 전체가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권위의 법칙’이라고 했다.
이미지를 입히는 스타
대중문화의 시대에 스타들이 바로 그런 대장 원숭이가 갖는 것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 황상민 교수의 책 <대통령과 루이비통>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침 일곱 시. ‘과학적’으로 만든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디오스 냉장고 문을 열고, 서울우유를 꺼낸다. 뚜레쥬르 곡물 빵에 치즈를 얹어 아침으로 먹는다. 세탁기로 빤 셔츠를 입고 집을 나선다. 주유소에 들러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다. 맥심 커피를 한잔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황상민 교수가 책에 쓴 대로 보통 사람의 평범한 하루 생활을 기술한 것 같다. 브랜드들이 언급되지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위의 기술을 아래와 같이 바꾸면 느낌이 달라진다.
아침 일곱 시. 이선균이 선택한 ‘과학적’인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김태희처럼 사랑스럽게 디오스 냉장고 문을 열고, 송중기가 마시는 서울우유를 꺼낸다. 뚜레쥬르 곡물 빵에 치즈를 얹어 원빈의 미소와 함께 먹는다. “버블버블~” 한가인의 트롬 세탁기가 빨아준 셔츠를 입고 집을 나선다. 아이유가 강추한 주유소에 들러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다. 완전대세 하정우가 공형진에게 타주는 맥심 커피를 한잔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하나 잘못된 것은 지적하자. 한가인은 트롬이 아닌 삼성 하우젠 모델이었다. ‘버블버블’이란 용어와 특성으로 광고를 만든 것을 기억한다. 거기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한가인 세탁기’ 달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바로 앞의 스타들 이름을 뺀 기술과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 황상민 교수가 책에서 얘기한 ‘트렌디하고 제법 쿨해’ 보이고, ‘좀 사는 1인 가구’ 같아 보인다는 데 완전히 부정하기 힘들다. 확실히 스타들이 주는 후광효과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그게 정말 세게 작용한다. 스타를 어떻게 광고에 쓸 수 있도록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게 광고회사의 경쟁력 중의 아주 중요한 하나로 인정이 되는 게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스타들을 광고에 활용하는 비율이 높고, 한국은 그중에서도 유독 높은 편이다. 왜 한국에서 대중 스타들을 광고에 활용하는 비율이 높을까?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은 ‘Communication-intensive’한 사회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현대의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많은 정보가 사람들 사이에 훨씬 빠르게 공유되는 사회란 뜻이다. 그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자신의 정보를 각인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권위와 상징성을 지닌 스타를 채용하게 된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스타를 활용하는 추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광고의 유명 스타들, 약일까 독일까
미국 현지 일자로 2월 3일에 진행된 슈퍼볼은 잘 알려진 것처럼 광고비가 가장 비싼 최대의 광고 이벤트이기도 하다. 특히 연초에 벌어지기 때문에 그 해의 광고 흐름을 예상할 수도 있는데, 올해 슈퍼볼 광고의 특징 중의 하나로 전례 없이 많은 스타들의 출연이 손꼽히고 있다.
전통적으로 유명 스타들을 쓰지 않았던 벤츠 광고에 슈퍼모델인 케이트 업튼, 인기 가수이자 배우인 어셔, 우리에게는 영화 <플래툰>으로 잘 알려진 윌렘 데포 등 다양한 방면의 스타들이 출동했다. 샌드위치전문 패스트푸드 체인인 서브웨이(Subway)는 오랜 동안 대변인 역할을 해 ‘서브웨이 가이(Subway guy)’로 알려진 자레드 포글 이외에 미식축구 스타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쿼터백을 맡고 있는 로버트 그리핀 3세를 비롯한 다수의 스포츠 스타들을 등장시켰다. 삼성 광고에도 세 명의 유명 코미디언들이 출연했으며, 현역 최고의 농구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는 광고에 선을 보인 기기의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명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 광고들의 평가는 기대와 달리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슈퍼볼 광고를 평가하는 기관들이 무척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전통이 있는 게 바로 유에스에이 투데이 신문의 애드미터(Admeter)이다. 작년까지 전문가 패널 위주로 조사하다가, 올해는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조사로 바꾸었다.
광고의 효과나 수준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지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위에서 얘기한 유명 스타들이 등장한 광고들은 하나도 애드미터 평가에서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물론 유명인들이 출연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광고들도 있었다.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는 미국의 농부들을 응원한다는 닷지 램(RAM) 트럭과 미국의 영웅으로 해외 파병 군인들을 그린 지프(Jeep) 광고를 각각 3위와 5위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램 광고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라디오 보도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폴 하비가, 지프 광고에는 ‘토크쇼의 여왕’으로 불리며 자신의 미디어 제국을 일군 오프라 윈프리가 출연했다. 그들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만이 내레이션으로 나왔다. 유명 스타들의 활용 측면에서 이번 슈퍼볼 광고들과 그에 대한 평가가 주는 시사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효과와 평가 여부와 관계없이 유명 스타들을 등장시키는 광고들이 많아질 것이다. 정보 창구가 늘어나고, 정보의 양 자체도 증가한다.
곧 소비자들에게 외쳐대는 소음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좀 더 큰 소리를 내는 손쉬운 방편으로 유명 스타들을 기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다. 둘째, 제한된 부분에서의 유명 스타 활용이 차라리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램 트럭 광고의 폴 하비는 2009년에 세상을 떴다.
광고에서는 그가 생전에 전미농업협회에서 한 연설을 내보냈는데, 독특한 음성과 억양이 우익보수적인 성향이 겹쳐지면서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 메시지와 잘 어울렸다.
오프라 윈프리 역시 미국적인 가치의 대변자이자 수호자로서 목소리만으로 제값을 했다. 삼성의 르브론 제임스도 2분짜리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 기기 화면으로만 나타났으나 2분 내내 등장한 다른 스타들보다 더욱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유명 스타들은 자신들이 바로 브랜드다. 그들이 등장하는 광고는 어떤 의미에서 기업과 인물의 공동 브랜드 마케팅의 성격을 띤다. 한 브랜드가 압도를 하면 공동 브랜드의 의미가 퇴색된다. 서로 덜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Key point
스타를 광고에 쓰고, 홍보대사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맡기는 가장 큰 이유는 유명한 인물도 특정한 제품을 쓰니까 따라하도록 만들고, 보증하는 효과를 거두기 위함이다.